정부가 유료방송 시장에서 '선계약후공급'이 원칙이라고 가이드라인에 명시했지만 구체적인 시행 시점은 못박지 못했다.

현재 유료방송 시장에서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들이 KT·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등 IPTV와 지역별 케이블TV에게 먼저 콘텐츠를 공급한 후 계약을 맺는 선공급후계약 방식이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계약을 사후에 맺다보니 PP들은 향후 투자나 사업계획을 세우는데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에 PP들은 계약을 먼저 맺고 콘텐츠를 공급하는 선계약후공급 방식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유료방송사들은 선계약후공급을 하려면 콘텐츠 대가의 산출 기준 명확화와 중소 PP와의 상생 등이 함께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유료방송사들은 특히 덩치가 큰 PP와는 프로그램 사용료를 놓고 갈등을 겪었다. 지난해 LG헬로비전과 티캐스트는 FOX 채널 종료 여부에 대해 분쟁을 겪었고 딜라이브와 CJ ENM은 콘텐츠 대가를 놓고 충돌했다. CJ ENM은 올해는 IPTV 3사와 갈등을 겪었다.

이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콘텐츠 대가를 비롯한 채널의 계약·평가·종료·개편 등에 대해 방송업계가 합의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 위해 '유료방송 상생 협의체'(이하 협의체)를 꾸리고 유료방송사, PP들과 함께 30차례 이상의 회의를 거쳐 '유료방송 시장 채널계약 및 콘텐츠 공급 절차 등에 관한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 오용수 과기정통부 방송진흥정책관이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유료방송 상생협의체 개최' 사전 브리핑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현준 기자)
▲ 오용수 과기정통부 방송진흥정책관이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유료방송 상생협의체 개최' 사전 브리핑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현준 기자)

정부는 2022년 하반기 시행 희망…IPTV "대형 PP·채널 끼워팔기 규제도 검토해야"
과기정통부와 방통위가 29일 공개한 가이드라인은 채널의 기존 계약기간 만료 후 계약은 계약기간 만료 전일까지 체결하도록 하는 선계약후공급 원칙을 명시했다. 하지만 선계약후공급의 구체적인 시행 시점에 대해서는 '2023년 계약부터는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며 명확히 하지는 못했다. 오용수 과기정통부 방송진흥정책관은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콘텐츠의 가치 중심으로 평가와 대가 산정을 할 경우 중소 PP를 어떻게 보호할지에 대해 방통위와 논의도 필요하다"며 "내년 하반기부터라도 선계약이 이뤄지고 상반기 공백에 대해서는 전년도 계약을 연장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시행되는 것이 정부의 희망사항"이라고 말했다.

선계약후공급의 명문화에 대해 IPTV에서는 대형 PP에 대한 견제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PP의 이익에 기반한 계약 지연 행위 등으로 선계약이 현실화되지 못한 측면도 있다"며 "계약과 동시에 채널 개편에 반영해야 하는 점을 대형 PP가 이용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규제도 추가로 검토돼야 현실적인 사업 반영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이드라인에는 평가 하위 10%의 채널에 대해서는 계약을 종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기존에 유료방송사들은 PP들의 콘텐츠는 평가하고 있지만 낮은 점수를 받은 채널을 퇴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협의체는 2년 연속으로 평가결과 채널군 내 하위 10%에 해당하는 채널이 평균점수 이하이거나 채널군 내 채널 수가 10개 미만일 경우, 평가결과 최하위 평가를 받은 곳 중 하나의 조건을 만족할 경우, 유료방송사가 재계약을 보류할 수 있도록 했다. 재계약 보류대상인 채널은 추가 검토후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가이드라인에 대해 IPTV에서는 환영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IPTV 업계 관계자는 "낮은 평가를 받은 채널의 계약종료에 대한 기준이 생긴 것을 환영한다"며 "다만 PP들의 채널 끼워팔기 관행에 대해서도 개선이 필요한데 이 부분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가이드라인 실효성 있을까…선공급후계약 금지 법안은 계류중
정부가 마련하는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보니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항상 제기된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법제화로 가기 전 과기정통부가 업계와 함께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국회에 양해를 구한 후 나온 결과물이다. 현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필모 의원과 국민의힘 정희용·황보승희 의원은 선공급후계약을 금지행위로 규정하는 방송법과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과방위는 최근 열린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2소위)에서 해당 법안들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오 정책관은 "현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으니 입법에 대해 제고해달라고 과방위에 의견을 드렸다"며 "국회도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적용되는 과정에서 여의치 않다고 판단한다면 법안을 논의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협의체는 선계약후공급·하위 10% 채널 퇴출 등이 담긴 채널계약 및 콘텐츠 공급 절차 가이드라인 외에 채널 평가 절차와 방법을 마련한 'PP평가 기준 및 절차 표준안'과 정기개편, 수시개편 관련 내용이 담긴 '이용약관 신고 및 수리 절차에 관한 지침'도 공개했다. PP평가 표준안과 이용약관 지침은 2022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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