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다면

• 포스코가 1월28일 주주총회를 개최합니다. 이번 주총은 지주사 전환을 위해 포스코를 물적분할하는 내용이 안건으로 상정됩니다.

• 분할안이 통과하려면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발행주식 수의 3분의 1 이상이 분할에 찬성해야 합니다. 캐스팅보터는 대주주인 국민연금과 미국 시티은행, 블랙록 등이지만 소액주주들의 표심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 이번 주총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지주사 전환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이른바 '올 오어 나씽'의 게임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는데요.

• 포스코가 100년 기업으로 가기 위해서는 철강사의 정체성을 바꿔야 합니다. 지주사 전환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죠.

'100년 기업의 조건(케빈 케네디 지음)'이라는 저서에 따르면 세계 기업들의 평균 수명은 13년이라고 합니다. 약 80% 기업은 30년 안에 사라진다고 합니다. 경영학의 대가들도 의견이 비슷합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피터 드러커는 "1등 기업이라고 해도 30년 후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글로벌 IT 기업인 시스코에서 20여년 동안 최고경영자를 지낸 존 체임버스 전 회장은 은퇴를 앞두고 "현존하는 기업 중 40%는 10년 이내 사라질 것"이라고 다소 무서운 관측을 내놓았었죠.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팬데믹 등 인류는 생존에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어제와 같은 일상을 지속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죠. 기업 또한 생존에 대한 위기를 더욱 실감하고 있을 것입니다. 인류의 생존이 위기에 몰린다면 기업은 영속할 수 있을까요.

이 때문에 '100년 기업'이라는 말은 탈탄소 시대를 맞은 오늘날 무의미해졌습니다. 기업들은 더욱 빠르게 생겨나고, 더욱 빠르게 사라질 것이죠. 화석연료에 기반한 내연기관 차량이 지고, 전기차가 급부상하면서 테슬라(Tesla)가 세계 최고의 자동차 기업이 된 게 한 예입니다.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한화로 1270조원에 달합니다. 자동차 명가 GM과 포드보다 12배 큽니다. 이렇듯 기업을 둘러싼 외부 환경이 변하면서 시장은 빠르게 파괴되고 재편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 중 어느 누구도 내일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됐죠.

▲ (사진=포스코)
▲ (사진=포스코)

이런 점에서 포스코그룹의 지주사 전환은 예견됐던 일입니다. 포스코의 역대 회장들은 2000년대 이후 '비철강'을 강조해 왔습니다. 이구택 회장과 정준양 회장, 권오준 회장 등 포스코의 전임 회장들은 임기 동안 비철강 사업을 육성해 '100년 기업의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했었죠. 철강 산업은 글로벌 경기에 따라 좌우돼 비철강 사업을 육성해 포스코가 꾸준히 성장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수 년에 걸쳐 포스코는 철강 사업 외에도 건설과 무역, 에너지 등 비철강 사업을 키웠습니다. 그 결과 그룹 전체 매출에서 철강사업의 비중은 49%까지 낮아졌습니다. 2010년 철강 사업의 매출은 97%에 달했는데, 10년 동안 포스코의 사업구조가 '천지개벽'했죠.

그럼에도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는 항상 사업회사인 포스코가 있었습니다. 사업회사인 포스코가 △2차전지 소재(포스코케미칼) △건설(포스코건설) △무역(포스코인터내셔널) △에너지(포스코에너지) 등을 지배하는 구조였습니다. 이들 사업에 필요한 투자도 사업회사인 포스코가 관장했습니다.

2018년 취임한 최정우 회장 체제에서 포스코는 한단계 더 도약을 준비했습니다. 그는 권오준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아 2차전지 소재 사업을 포스코의 핵심 사업으로 키우겠다고 밝혔습니다. 포스코케미칼을 2030년 세계 1위 배터리 소재회사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밝혔습니다. 포스코케미칼은 경쟁사인 에코프로비엠에 비해 뒤늦게 양극재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포스코그룹은 자본력과 글로벌 원료회사와의 SCM에 힘입어 포스코케미칼을 빠른 속도로 키웠습니다. 최정우 회장은 수소를 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키워 다가올 '수소 경제' 시대 포스코를 리딩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비전을 밝혔습니다. 2050년 500만톤의 수소를 생산해 30조원의 매출을 올리겠다고 밝혔죠.

수소와 배터리 소재. 탈탄소 시대에 주목받는 소재들입니다. 수소는 모빌리티와 산업시설을 움직일 청정 에너지원이며, 양극재와 음극재는 '그린 모빌리티'의 핵심 소재입니다. 그런데 이 사업들은 철과 무관한 사업입니다. 철광석을 환원해 쇳물을 뽑아내고, 이렇게 생산된 열연으로 냉연 등 철강재를 만드는 사업과 무관하죠.

그런데 포스코그룹은 지배구조를 지금과 같이 유지하면서 철강회사인 포스코가 모든 사업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포스코는 상장사인 까닭에 미중 무역전쟁과 브라질 댐 붕괴 사태, 호주와 중국 갈등 등 각종 '악재'에 영향을 받습니다. 철강사업이 쇳물 생산에 필요한 모든 원료를 수입하는 탓에 '외생 변수'가 많은 탓이죠.

게다가 철강산업은 발전업과 석유화학 산업과 함께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산업으로 분류됩니다. 수소 환원제철 이전까지 해결되지 않을 '악재'가 생긴 것이죠.

이런 점 때문에 포스코그룹의 지주사 전환은 보다 일찍 추진됐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포스코가 '주인없는 회사'로 운영되면서 지주사 전환을 필두로 한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기 어려웠었죠. 임기제 CEO가 그룹 지배구조의 틀을 바꾸기에는 쉽지 않은 게 이유였습니다.

▲ 포스코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지주사 전환 및 분할 안건을 통과했다.(사진=금융감독원)
▲ 포스코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지주사 전환 및 분할 안건을 통과했다.(사진=금융감독원)
      
포스코그룹은 "수차례 지주사 전환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과거 경험하지 못한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현 시점이 경영구조 재편에 최적"이라며 "지주사 체제로 전환해 사업별 전문성을 강화하고, 기업가치를 제고해 그룹의 지속 가능한 성장 발판을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지주사 전환의 배경을 알 수 있는 대목이죠.

포스코의 지주사 전환을 관통하는 세가지 키워드가 있습니다. 첫째, 디커플링(Decoupling)이다. 둘째, 프로패셔널리즘(Professionalism)이며, 셋째, 위기(Crisis)입니다.

디커플링 또는 디스럽션(disruption) 현상은 탈레스 S. 테이셰이라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고안한 경영학 이론입니다. 그는 "오늘날 시장 파괴의 핵심인 디커플링이 제품과 기술 차원이 아닌 고객의 가치사슬 차원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기존 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고객 가치사슬을 명확히 파악하고 그 안에서 혁신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디스럽션(Disruption)'은 업계의 참가자들 사이에서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시장 점유율의 변화라는 의미입니다. 시장은 고객이 원하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에 따라 빠르게 바뀝니다. 과거 핸드폰 시장을 주름잡던 '노키아(Nokia)'와 디지털 카메라 시장의 강자인 '올림푸스(Olympus)'가 디지털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잊혀진 회사가 된 게 한 예입니다.

'B2B'인 철강산업이 고객으로 인해 파괴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포스코는 최근 1고로가 종풍을 맞이해 현재 5기의 고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쇳물 생산량은 세계 6위(생산량 4058만톤)입니다. 만약 포스코의 고객인 테슬라 등이 친환경 철강재를 요구하게 돼 납품 관계를 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기후온난화가 더욱 극심해져 쇳물 생산을 어쩔 수 없이 줄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포스코는 심각한 영향을 입게 될 것입니다.

철강산업을 기반으로 한 포스코의 지배구조와 사업 모델은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탄소배출을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은 오늘날 생존의 위험에 몰려 있습니다. 포스코가 말한 '혁명적인 변화(Revolutionary change)'는 사실일 것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철강산업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게 새로운 콘트럴타워가 필요해진 것은 분명합니다. 지주사 전환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겠죠.

지주사 전환의 큰 장점은 R&D와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포스코홀딩스가 비철강 사업의 투자를 주도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죠. 그룹의 기업자치가 고루 높아질 수 있도록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 전략을 짤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에는 그룹의 투자 자원이 포스코에 쏠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장사인 포스코가 지배구조상 정점에 있었기 때문이죠. 현대차그룹이 투자 재원을 현대차에 집중적으로 배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죠.

포스코홀딩스 체제에서는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탈탄소 시대를 맞은 포스코그룹의 길은 '지주사 전환'이 맞습니다. 지주사로 전환해 모든 계열회사들이 전문성을 갖춰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장 가능성이 보이지 않거나 탄소중립에 역행할 수 있는 계열회사들은 구조조정해야 합니다. 사업 구조조정을 하는 것도 지주사 체제가 편리하죠.

올해 창립 53주년을 맞은 포스코는 앞으로 50년을 '지주사 체제'로 이을 계획입니다. 임기제 CEO인 최정우 회장이 지주사 전환이라는 '용단'을 내렸기 때문이죠. 최 회장은 왜 지주사 체제라는 카드를 꺼냈을까요.

정문기 포스코 이사회 의장은 지난해 최정우 회장의 연임을 승인한 이유로 "그룹 내 사업의 안정적이고 균형적인 성장적인 기반을 구축한 점과 2차전지 소재 등 신성장 동력을 발굴한 점"을 꼽았습니다. 최정우 회장은 2기 경영 방향을 '혁신과 성장'으로 정했습니다. 경영 관리에 있어 체질을 개선하고 전 영역에 있어 양적인 성장과 질적인 성장을 모두 달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어디에도 지주사 전환을 통해 지배구조를 혁신하겠다는 설명은 없습니다. 만약 최 회장이 연임을 준비하면서 지주사 전환 계획을 미리 마련했다고 가정해보죠. 최 회장은 1983년 포스코에 입사해 38년을 근무하면서 가장 이상적인 지배구조는 지주사 체제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최 회장은 2023년 퇴임 후 지주사 전환을 성사시킨 CEO로 자신의 업적을 남기고 싶었을 수 있죠. 지금까지 2000년 포스코가 민영화된 이래 지배구조를 바꾼 CEO는 없기 때문이죠.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긴 CEO로 자신의 2기를 마무리하고 싶다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포스코의 지주사 전환이 '올 오어 나씽'의 게임이듯 주주총회 후 파장은 적지 않을 것입니다. 주총을 통과한다면 지주사 행위제한 요건에 어긋나지 않도록 자회사 및 손자회사, 증손회사들을 정비해야 합니다. 사외이사로 구성된 CEO후보추천위원회는 포스코홀딩스 회장만 선임하게 되는 만큼 정관도 바꿔야 합니다.

만약 주총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어떨까요. CEO인 최정우 회장의 2기는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만약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반대한다면 파장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내년 3월에는 대통령선거가 있습니다. 포스코는 최대주주가 국민연금인 탓에 정치권의 '외풍'을 가장 많이 받는 기업입니다. 지금까지 포스코는 정권교체 후 예외없이 CEO가 바뀌었습니다.

박태준 초대회장부터 권오준 회장까지 8명의 CEO가 정권교체 등으로 바뀌었죠. 민영화 이후 4명의 CEO가 정권이 바뀐 후 사퇴했습니다. 만약 물적분할 안건이 내달 주총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최 회장의 잔여 임기는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 포스코의 소액주주들은 '화살'을 CEO에게 돌릴테니까요. 포스코그룹의 최종책임자는 최정우 회장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포스코의 미래를 좌우할 '공'은 이미 던져졌습니다.

생각해 볼 문제

• 주총은 한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주총 결과를 예단할 수 없지만 한가지는 분명합니다. 포스코그룹에 지주사가 더 적합하다는 것이죠. 지주사의 장점 때문만은 아닙니다. 비철강과 탈탄소 두가지 과제를 모두 풀어야 하는 포스코그룹에게 지주사가 더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포스코그룹의 비철강 사업 중 '글로벌리'한 사업이 몇 개나 있는지 생각해 보죠.

• 포스코의 최대주주는 9.75% 지분을 갖고 있는 국민연금공단입니다. 약 850만주를 갖고 있죠. 공단은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이죠. 내달 있을 주총에서 국민연금공단의 결정은 정치적인 걸까요. 비정치적인 걸까요. 국민연금공단에게  중요한 건 단기적인 주주가치일까요. 아니면 기간산업을 맡고 있는 포스코그룹의 미래일까요.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