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애플 극장이 열렸다. 시선은 자연스레 '아이폰11'에 몰렸고, 언론은 으레 "혁신은 없었다"라는 오래된 레토릭을 쏟아냈다. 혁신 타령은 진부하지만 성장 동력을 잃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도 '카메라' 외에 다른 뾰족한 수를 보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그 카메라마저 겉으로 보기엔 경쟁사에서 내놓은 기능들과 크게 차별화되지 않는다. '인덕션'을 연상시키는 카메라 모듈의 디자인적인 차별화는 확실하지만 당장은 '호'보단 '불호'를 외치는 평이 많다. 나머지 기능과 디자인 전반은 2017년 출시된 '아이폰X'에 머물러 있다. 아이폰만 놓고 보면 그 어느 때보다 혁신이 부족한 한 해다. 예년처럼 ‘애플 망했다’는 곡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  | 인덕션을 연상시키는 ‘아이폰11 프로’의 트리플 카메라
▲ | 인덕션을 연상시키는 ‘아이폰11 프로’의 트리플 카메라

하지만 행사를 찬찬히 뜯어보면 애플의 시선은 '아이폰'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난 3월 행사부터 이번 9월 행사까지 올해 애플의 일관된 메시지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다. 애플은 최근 정체된 스마트폰 시장에서 판매량 확대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팔린 아이폰을 바탕으로 한 서비스 생태계 확장에 힘써왔다. 과포화된 스마트폰 시장에서 아이폰 장사만으로는 더는 먹고 살 수 없다는 계산이다. 아이폰을 그릇 삼아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내는 구조다.

서비스 그리고 서비스


애플은 9월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스티브 잡스 극장에서 '아이폰11'·'아이폰11 프로'·'아이폰11 프로 맥스', '애플워치5', '아이패드 7세대'를 발표했다. 하지만 하드웨어 제품보다 먼저 발표된 건 구독형 서비스 제품이다. 팀 쿡 애플 CEO는 지난 3월 행사에 이어 이번에도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의 통합'을 화두로 꺼내 발표를 시작했다.

▲  | 팀 쿡 애플 CEO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의 통합을 화두로 꺼냈다.
▲ | 팀 쿡 애플 CEO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의 통합을 화두로 꺼냈다.

가장 먼저 선보인 제품은 구독형 게임 서비스 '애플 아케이드'다. 지난 3월25일(현지시간) 발표된 애플 아케이드는 일정한 구독료를 내면 광고나 추가 구매 없이 100여 개 이상의 독점 게임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서비스다. 아이폰, 아이패드, 맥 등 애플 기기에서 최대 5명의 가족이 이용 가능하다. 이날 행사에서는 애플 아케이드에 참여하는 파트너사들의 게임 시연과 함께 처음으로 가격이 공개됐다. 월 6500원에 최대 5명이 계정을 공유할 수 있으며, 첫 달은 무료로 서비스를 체험할 수 있다. 9월20일(한국시간 기준) 한국을 포함한 150개국에 출시될 예정이다.

이어서 발표된 '애플TV 플러스'는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등과 경쟁할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다. 지난 3월 처음 공개됐다. 애플TV 플러스는 가격을 경쟁력으로 앞세웠다. 이날 발표된 가격은 월 4.99달러(약 6천원). 월 12.99달러(스탠다드 기준)인 넷플릭스의 반값도 안 되는 가격이다. 월 6.99달러인 디즈니 플러스보다도 저렴하다. 애플TV 플러스는 아이폰, 아이패드, 맥 등 애플 새 제품 구매자에게 1년간 무료로 제공된다.

그릇이 된 하드웨어


세 번째로 발표된 제품은 새 아이패드다. 아이패드 7세대는 최근 출시된 다른 아이패드 제품군과 마찬가지로 비용은 줄이고 경험을 넓히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성능은 높이되 이전 폼팩터를 최대한 재활용해 비용을 낮추는 방식이다. 전작과 비교해 9.7형에서 10.2형으로 화면 크기를 키웠지만, 기존 10.5형 ‘아이패드 프로 2세대’, ‘아이패드 에어 3세대’와 제품 크기가 동일하다. ‘스마트 키보드’ 액세서리도 그대로 쓸 수 있다. 새로운 기능이나 제품 설계에 힘쓰는 대신 최대한 기존 제품을 재활용하면서 비용을 낮춰 제품 사용 경험을 넓히고 이용자들을 서비스 생태계에 편입시키는 전략이다.

애플에 있어 하드웨어는 그릇에 불과하다. 애플은 기존에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통합성을 강조해왔지만, 서비스 사업을 강화하면서 하드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고 있다. 실제로 아이폰 매출은 최근 3분기 연속 하락세에 있다. 반면, 서비스 매출은 지속해서 최대 실적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애플은 서비스 사업을 2016년에서 2020년까지 두 배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팀 쿡 CEO는 현재 해당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순항 중이라고 올 초 밝혔다.

 

이날 아이패드 발표는 제품 자체보다 아이패드 위에서 돌아가는 ‘아이패드OS’ 경험과 애플 아케이드, 애플TV 플러스 서비스에 집중했다. <씨엔엔(CNN)>은 “애플이 구독 서비스에 초점을 맞춰 행사를 시작한 것은 애플의 초점 전환의 신호로 볼 수 있다”라며 “애플은 점점 증대하는 서비스 매출에 걸고 있고, 구독 서비스를 통해 아이폰 사업 매출의 매출 감소를 상쇄하려 한다”라고 애플의 전략 변화를 짚었다.

지난 3월 행사에서도 이러한 애플의 전략 변화를 읽을 수 있다. 3월25일(현지시간) 열린 애플 행사는 애플TV 플러스, 애플 아케이드 그리고 뉴스 및 잡지 구독 서비스 ‘애플 뉴스 플러스’ 등 서비스 발표로 꾸려졌다. 행사 직전에 ‘아이패드 에어’와 ‘아이패드 미니’, ‘아이맥’, ‘에어팟 2세대’ 등 하드웨어 제품이 조용히 발표된 것과 대조적이다.

당시 팀 쿡 CEO는 무대에 올라 “아이폰은 강력한 하드웨어고 iOS와 앱스토어 등 소프트웨어 환경을 갖고 있다. 그리고 아이클라우드를 비롯한 서비스들로 수많은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고, 기억과 경험이 공유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서비스는 애플에게 중요하고, 이를 통합하는 것은 우리가 잘하는 일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카메라 앞세운 아이폰의 버티기


이번에 발표된 아이폰11 시리즈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아이폰11’, ‘아이폰11 프로’, ‘아이폰11 프로 맥스’ 3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카메라다. 정사각형의 모듈 위에 얹힌 렌즈가 시선을 끈다. 애플은 아이폰11 시리즈 발표에서 카메라 기능 소개에 큰 비중을 뒀다. 반대로 말하면 카메라 외의 변화는 크지 않다. 디자인 역시 후면 카메라 모듈과 애플 로고의 위치 이동을 제외하면 거의 그대로다. 제품 전면만 봤을 때 전작과 구분하기 어렵다.

카메라와 함께 주목받은 부분은 가격이다. 아이폰11은 전작인 ‘아이폰XR’보다 50달러 싼 699달러(약 83만원), 아이폰11 프로와 아이폰11 프로 맥스는 ‘아이폰XS’·’아이폰XS 맥스’와 동일한 999달러(약 119만원), 1099달러(약 131만원)로 책정됐다. 고가 스마트폰 시장을 주도해온 애플의 행보를 봤을 때 이례적이다. <뉴욕타임스>는 아이폰11의 새로운 특징은 낮은 가격이라며 “애플이 비싼 가격만큼 새롭지 않은 기능 탓에 아이폰 교체를 미루던 이용자들을 낮아진 가격으로 유인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전반적인 디자인 유지는 비용을 절감시켜준다. 그리고 낮아진 가격은 아이폰 사용 경험을 늘려주거나 적어도 아이폰을 이탈하지 않도록 지대를 구축해준다. 아이폰이 서비스를 담는 그릇으로써 제 역할을 하게 한다. 스마트폰 성장이 멈춘 시대에 애플의 생존법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의 통합이다. 하지만 이 전략이 유효하려면 그릇 자체가 예뻐야 한다. 아이폰의 매력이 유지돼야 한다. 가격이 낮아져도 같은 제품을 답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신호라도 줘야 한다.

아이폰11 시리즈에서 카메라는 바로 이 역할을 한다. 디자인적인 호불호와 별개로 적어도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변화하는 애플의 전략 속에 아이폰11은 카메라와 가격을 앞세워 새로운 서비스를 담아낼 그릇 역할을 한다. 혁신이 없다는 비판 속에 애플은 서비스 사업의 성장을 바탕으로 꾸준히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아이폰은 서비스 사업의 근간이다. 카메라만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언제까지 끌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서비스로 애플의 사업 초점이 이동하는 전환기에 아이폰11은 일종의 버티기 제품이다. 다음 아이폰이 애플에 있어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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