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통신 기업으로 잘 알려진 KT가 블록체인 사업을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물론, 규모 면에서 아직 핵심 사업이라 볼 순 없으니 자주 부각되지 않는 것도 당연한데요. 그럼에도 해당 사업의 성장 가능성만큼은 당분간 주목해봐도 좋을 대목이 있습니다.

아마 2020년 KT 실적을 유심히 살펴본 분들이라면 KT 블록체인 사업 매출이 전년 대비 7배 성장했다는 내용의 발표를 기억하실 겁니다. 당시 KT는 "지자체 지역화폐 발행량 증가가 배경"이라고 설명했는데요. 실제 2020년은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디지털 전환(DX) 확산 및 정부의 재난지원금 지급 등 다양한 요인이 어우러지면서 지류(종이) 중심의 지역화폐 시스템이 대대적으로 디지털화된 원년으로 기록됩니다.

▲ 서울시 종로구 KT 이스트 사옥 (사진=KT)
▲ 서울시 종로구 KT 이스트 사옥 (사진=KT)

블록체인 기반 '지자체-DX' 전담팀 꾸린 KT
지난해 지역화폐 사업에서 재미를 본 KT는 올해 자사 블록체인 기반 지역화폐 플랫폼(착한페이)를 중심으로 새로운 '지자체-DX' 판을 짜고 있습니다. 현재 KT AI·DX융합사업부문에는 '지자체-DX 사업팀'이 활동하고 있을 만큼 사업적으로도 의욕이 보이죠. 이들의 목표는 단순한 디지털 지역화폐 유통을 넘어 플랫폼화를 통한 지자체 디지털 커뮤니티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먼저 KT 지자체-DX 사업의 물꼬를 트고 있는 착한페이 사업 현황을 볼까요. 착한페이는 현재 울산광역시, 세종시, 공주시, 김포시, 익산시, 칠곡군 등 6개 지자체 지역화폐 기반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울산페이', '여민전' 등 이름은 각기 다르고 지자체 상황에 맞춰 별도로 운영 중이죠.

활용률은 예상보다 높은 편입니다. 도입된 지 2년 남짓이지만 인구 112만명의 울산광역시 '울산페이' 누적회원은 7월 기준 38만명으로 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됩니다. 인구 36만명의 세종시 '여민전' 회원은 14만명으로 절반에 가깝고, 인구 10만명의 공주시에서는 약 3분의 2에 해당하는 7만5000명이 '공주페이' 사용자로 등록돼 있습니다.

KT는 착한페이의 경쟁력으로 편의성과 범용성을 꼽습니다. 지역화폐에 모바일 QR 결제를 최초로 도입한 플랫폼이고 체크카드 제휴를 통해 선불형 지역화폐에선 불가능한 후불교통 기능을 구현했죠. 택시 결제, 삼성페이 지원 등 가맹점 결제 외에도 일상 내 사용처가 다양한 편입니다.

▲ 디지털 지역화폐 발행, 유통 프로세스 (자료=KT)
▲ 디지털 지역화폐 발행, 유통 프로세스 (자료=KT)

착한페이, 시민참여형 지역화폐 플랫폼으로 확장
지역화폐 플랫폼이 단순히 결제 기능에만 머무른다면 지역 내 가맹점 수, 혜택 수준에 따라 사용률이 계속해서 변화할 겁니다. KT는 지역 커뮤니티화 전략으로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고 지자체도 착한페이 플랫폼을 통해 더 다양한 DX 기반 확보가 가능하도록 만들겠다는 방침입니다.

이런 구상은 기술적으로 착한페이가 블록체인 기반이기 때문에 가능한데요. 블록체인은 분산된 서버 환경에서 다수의 검증자를 거친 데이터만 투명하게 기록되며, 데이터 위·변조가 쉽지 않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를 신원 인증이나 디지털 신분증에 접목하는 DID(분산 아이디) 개념은 그동안 업계에서 활발히 연구돼 왔는데, KT는 착한페이에 DID 기반 모바일 시민증이 접목되면 이를 기반으로 지자체 공공 서비스 중심의 디지털 전환 움직임이 크게 확대될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신뢰할 수 있는 모바일 시민증으로 지역화폐 앱에서 지역 주민임을 입증할 수 있게 되면 이를 기반으로 주민들이 지역 현안에 대해 투표, 설문, 정책 제안을 할 수 있는 기능도 구현될 수 있습니다. 혹은 지역 내 소상공인이나 시정 홍보, 중고 거래, 재능 기부 등이 이뤄지는 커뮤니티 기반도 마련될 수 있죠.

이런 서비스가 기존 공공 앱과 다른 점은 연동된 지역화폐를 이용해 금전 형태의 보상이 손쉽게 제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존에는 공공 활동에 참여해도 별다른 보상이 없거나 보상 수령이 어려워 외면 받기 십상이었지만 지역화폐 플랫폼 내에서 이뤄지는 서비스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물론, 이에 대한 재원 편성은 지자체 몫이겠지만 탄소배출권 판매 등 지자체 부수입 등을 활용할 수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닙니다. 약간의 추가 예산이 들더라도 지자체 입장에선 시민들이 시정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역 경제의 선순환이 이뤄지도록 유도할 수 있다면 기회비용 차원에서 충분히 투자할 만한 가치가 만들어지는 셈이기도 하죠.

지역화폐를 이용한 정책 참여 인센티브의 사례론 '춘천시 소양에너지페이'가 있습니다. 이 역시 착한페이 기반의 지역화폐인데, 주민들이 주택에 신재생 에너지 발전설비를 설치하고 온실가스 감축 등에 참여할 경우 소양에너지페이가 지급되는 구조로 좋은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공공, 행정, 일상 내 다양한 지자체-DX 구현 도구로
지역화폐 플랫폼을 활용한 DX가 꼭 딱딱한 공공사업에만 적용되는 건 아닙니다. 결제 플랫폼이란 이점을 살리면 보다 일상에 가까운 공공 서비스 접목도 어렵지 않죠. 대표적으로 '배달'이 있습니다. 울산시는 이미 울산페이에 지역 배달 서비스인 '울산페달'을 연동해 지역화폐 앱에서 배달 주문부터 결제까지 가능하도록 만들어 운영 중입니다. 시가 운영하기에 중개 수수료나 결제 수수료도 없어 소상공인 친화 서비스로 분류되죠. 김포페이도 마찬가지입니다.
▲ 김포페이가 연동된 배달특급 앱 (자료=KT)
▲ 김포페이가 연동된 배달특급 앱 (자료=KT)

이처럼 올해 KT는 착한페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지자체-DX 사업을 전개해 나갈 계획입니다. 앞서 언급된 서비스 외에도 투표, 기부, 전자계약, 전자문서 관리 등 각종 지역 내 디지털 활동을 아우를 수 있는 플랫폼 겸 커뮤니티를 만들어 지자체-DX를 돕겠단 포부죠.

시기적으로 지역화폐 발행 규모가 매년 확대되는 추세이니 향후 지자체 고객, 사용자 확보도 순조로울 전망입니다. 김태우 KT 지자체DX사업팀장은 "현재 디지털화되지 않은 지역화폐를 쓰는 지역은 전체의 5% 미만"이라며 "올해 지역화폐 발행량은 보수적으로 판단해도 15조원 이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공개된 6개 지자체 외에도 여러 지자체가 KT와 사업을 논의 중인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미 지역화폐 운영의 성과가 곳곳에서 드러난 만큼, 도입 과정에 큰 어려움을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확대된 고객 기반은 곧 매출 확대로 이어지므로 올해도 KT 블록체인 사업의 경우 성장 곡선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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