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 이어 올해 일부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로 여론의 질타를 받던 카카오가 남궁훈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을 새로운 단독대표로 내정했다. 남궁 대표 내정자는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짚어보고 카카오의 단독대표 체제 전환이 갖는 의미와 회사의 과제에 대해 진단해본다.<편집자주>
악재 속에서 카카오가 꺼내든 ‘수장 교체’ 카드는 새 판을 짜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에 따라 공동대표 체제였던 카카오를 홀로 이끌게 된 남궁훈 카카오 대표 내정자는 땅에 떨어진 카카오의 신뢰 회복과 동시에 ‘먹거리’를 발굴해야 한다는 무거운 사명을 떠안게 됐다.
ESG경영 또 강화?...‘진정성’ 보여줘야
“사회가 카카오에 기대하는 역할에 부응하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큰 책임감을 가지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전념하겠다.” 남궁훈 대표가 지난 20일 페이스북에 남긴 말이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도 이날 임직원을 대상으로 글을 올려 “카카오가 쌓아온 신뢰를 잃고 있는 것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회복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일지 고민을 거듭했다”고 고백하고, “미래 비전과 포용적 성장을 고민하는 ESG 경영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카카오게임즈에 이어 지난해 카카오뱅크·페이가 ‘상장 대박’을 터뜨리면서 고공행진하던 카카오 주가는 문어발식(式) 확장, 골목상권 침탈 등 잇따른 악재로 내리막을 걷게 됐다. 새 대표로 내정됐던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가 임원들과 단체로 주식을 매각, 총 878억원의 차익을 챙겨 주가 급락을 초래한 이른바 ‘주식 먹튀’ 논란이 정점을 찍었다. 여론이 들끓자 류 대표는 자진 사퇴를 택했다. 연임이 확정됐던 여민수 공동대표도 퇴장하게 됐다. 카카오페이 경영진 8명 가운데 3명은 사퇴하고, 남은 임원 5명은 매각한 주식을 재매입해 사태를 수습할 예정이지만 땅에 떨어진 카카오의 대내·외적 신뢰를 회복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 사진=남궁훈 대표 내정자
▲ 사진=남궁훈 대표 내정자

문제는 일련의 논란에 앞서서도 카카오가 ESG경영을 강조해왔다는 데 있다. 카카오는 지난해 1월12일 이사회 안에 ESG위원회를 신설하고, 같은 달 △인권경영선언문 △증오발언 근절원칙 △기업지배구조헌장 등을 제정했다. 이외에도 2023년 준공을 목표로 친환경 데이터센터 설립에 나서고, SK텔레콤과 공동으로 ESG펀드를 조성하는 한편 김범수 의장이 ESG위원장을 직접 맡으면서 ESG경영을 적극 홍보해왔다. 김 의장은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약속까지 내걸었다. 실제로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은 지난해 카카오의 종합 ESG등급을 A로 평가했다.

등급은 합격점을 받았지만 조직 안팎으로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카카오만의 방식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쓰겠다. 파트너·크루·정보기술(IT)생태계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겠다”던 카카오의 선언이 무색하게 직원들은 고용노동부에 청원을 제기했고, 조사 결과 초과근무를 비롯해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 등 6개 항목의 무더기 위반이 드러나 빈축을 샀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무리한 유료화를 시도하다 택시·대리업계와 갈등을 빚었다. 김 의장의 개인투자회사인 케이큐브홀딩스에 대한 의혹도 터져 나왔다. ‘알맹이’가 빠진 ESG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남궁 대표가 ESG경영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려면 이용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의 상생·책임경영 대책을 내놓는 게 급선무다. 올해 조성하겠다고 밝힌 3000억원의 상생기금이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일례로 카카오보다 앞서 ‘골목대장’이란 비판을 받았던 네이버는 전략을 수정해 상생자금을 출연하는 한편, 입점수수료 없는 ‘스마트스토어’를 선보였다. 중소상공인(SME)을 겨냥한 스마트스토어는 빠르게 성장해 네이버를 ‘쇼핑공룡’으로 키우는 데 일조했다. 상생을 성장동력 삼아 몸집을 키운 사례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하진 않았지만, 카카오도 골목상권과 상생할 수 있는 사업을 만들어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엔터·모빌리티 상장도 숙제
자회사 관리도 숙제다. 업계에선 카카오가 위기에 빠지게 된 이유로 그룹의 성장을 위해 보장했던 독립경영 체제가 각자도생(各自圖生)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꼽는다. 기업공개(IPO)에 열을 올리던 자회사들이 터뜨린 리스크가 카카오의 뇌관이 됐다는 분석이다. 남궁 대표도 “(카카오모빌리티로) 택시산업을 더 편하게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편해진 것 못지않게 부작용도 발생했다”면서 “해당 법인은 아직 적자고, 사회 전체에도 아쉬움이 남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다시 새로운 땅을 개척하는 관점에서 모든 사업 전략을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업 방향을 조율한다고 해도 논란거리는 남아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모빌리티의 상장이 계획돼 있어서다. 당초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올해 2분기 안에 상장예비심사를 신청하고, 하반기 상장이 목표였다. 택시·대리업계와의 갈등,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일으켰던 카카오모빌리티도 주관사 선정을 진행하고 있었으나 일련의 논란으로 상장 시점이 불투명해진 상태다. 다만 지난해 카카오뱅크·페이가 불과 3개월 간격으로 증시에 입성해 ‘쪼개기 상장’이라는 지적을 받은 데다가 카카오페이에서 터진 ‘주식 먹튀’ 사태로 세간의 시선도 곱지 않다. 카카오는 현재 전체 계열사에 사회공헌계획을 마련, 본사에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새롭게 카카오를 이끌 남궁훈 센터장에게 그룹 전체의 신뢰를 회복하는 막중한 임무가 맡겨진 셈이다.

▲ 2018년부터 카톡 중심의 ‘톡비즈’ 사업을 전개해온 카카오의 사업방향은 남궁 대표 취임을 기점으로 크게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사진=카카오)
▲ 2018년부터 카톡 중심의 ‘톡비즈’ 사업을 전개해온 카카오의 사업방향은 남궁 대표 취임을 기점으로 크게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사진=카카오)
골목·한국 말고 메타버스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신사업 발굴이다. 여민수·조수용 카카오 공동대표는 광고·마케팅이 주특기였다. 이들은 4500만명 이상이 이용하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에 주목했다. 카톡 채팅목록에 광고를 달고, 판매자들을 유치하는 등 카톡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모델을 붙여 나갔다. 상품·서비스·콘텐츠도 구독 형태로 제공해 이용자들을 카톡 안에 ‘락인(Lock in·묶어두기)’시켜 본체를 키우는 전략이었다. 카카오는 지난 3분기 매출 1조7408억원, 영업이익 1682억원을 기록하면서 역대 최고 실적을 찍었다. 우수한 성적표를 손에 쥐었지만 국내에서만 문어발로 사업을 확장하는 기업이라는 부정적인 인식도 뒤따랐다.

남궁 대표는 카카오에서 ‘내수용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떼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기존처럼 전통적인 사업 영역의 디지털화(化)를 꾀하기보다는 새롭게 나타난 사업에 뛰어든다는 포부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그는 “우리는 새로운 가상의 땅을 카카오톡이라는 지인 기반의 텍스트로 강력하게 구성했지만 이는 국내로 한정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고백했다. 카톡의 특장점이었던 ‘지인기반’을 통해 성장을 이뤘지만, 한국인끼리 이용하는 서비스로 한정돼 시장을 확장하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를 품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게임통’인 그가 낙점한 카카오의 새로운 먹거리는 ‘메타버스(Metaverse·3차원 가상세계)’다. 남궁 대표는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을 맡게 된 지난해부터 카카오의 성장동력으로 메타버스 사업을 검토해왔다. 남궁 대표는 “(메타버스는) 가장 사회적 요구에 가깝고 현재 카카오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도전”이라며 “우리 시대의 화성, 무궁무진한 땅 메타버스를 개척하는 메타포밍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역설했다.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대표 직속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미래이니셔티브센터에 선임했던 인사들을 이곳에 배치해 신사업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다만 구체적인 사업 계획은 알려지지 않았다. 아직 ‘뜬구름’으로 여겨지는 메타버스로 카카오를 다시 띄울 수 있을까. 남궁훈 대표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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