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벨로퍼2.0'의 일환으로 <고수를 찾아서>란 시리즈를 기획했다. 제목만 보고 강호를 누비는 '무림고수'를 떠올리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고수를 찾아서>는 '필살기'로 중무장한 개발자가 아니라, SW개발에 대한 애정과 문제의식을 끌어안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요즘은 SW개발을 '노가다'에 비유한다. 그러나 여전히 SW개발에 대한 비전을 품고, 알고 있는 것들을 다른 이들과 기꺼이 공유하려는 개발자들이 이 땅에 살고 있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다.
앞으로 블로터닷넷은 정기적으로 고수들을 만나 그들의 삶과 생각을 글로 풀어낼 계획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개발자 세계의 진솔한 모습을 가급적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다. 첫번째 찾아간 고수는 허광남씨. GS홈쇼핑 프리랜서 과장이다. 웹개발이 '주특기'인 허 과장은 대학 졸업성적이 C학점, 남들보다 한학기 많은 9학기를 다닌 끝에 졸업장을 받아들었다. 취미는 독서와 게임, 전공은 전자공학이다.
지금은 국내 개발자 세계에서 '이클립스'와 웹개발 전문가로 손꼽히며 세계적인 SW귄위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살아간다. 퇴근 시간은 밤 12시가 보통. 그러나 좋은 아빠가 되겠다는 약속은 지금도 유효하다.
1막, "돈안내고 게임을 하고 싶었다"

허광남 과장과 프로그래밍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83년 '베이직'으로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허 과장은 중학교에 가서는 '세계적인 SW권위자가 되고 싶다'는 발칙한(?) 꿈을 꾸게된다. 그 때를 떠올리는 그의 표정은 과거에 대한 향수가 진하게 풍겨나온다.
"학교 끝나면 밤 11시까지 학원가서 프로그래밍을 배웠어요. 중학교 다닐 때 중등부 소프트웨어 경진대회에 나가 입상을 했는데, 당시 춘천에서는 대학생보다 컴퓨터 잘하는 학생이란 말까지 들었습니다."(웃음)
프로그래밍에 재미를 느꼈고 소질도 좀 있었나 보다. 그렇다면 대학은 프로그래밍을 다루는 전산학과를 가는게 맞지 않았을까? 프로그래밍에 대한 이론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을테니... 그러나 그는 전산학대신 전자공학과로 진로를 결정하게 된다.
"컴퓨터를 직접 설계하고 만들고 싶어 전자공학과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커리큘럼에 제대로 적응은 못한 것 같아요. 실리콘과 반도체를 갖고 회로 만드는 것도 어려웠고 특히 공업수학은 '쥐약'이었습니다."
허 과장과 전자공학과의 거리감은 그의 성적이 말해주고 있다. 그의 졸업성적은 C학점. 그것도 남들보다 한학기를 더 다녀 힘겹게 얻어낸 성적표다. '전공은 아니다 싶은 생각'에 허 과장은 군복무를 마친뒤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는 과거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더구나 당시는 웹이 대중화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그저 생각에 그쳤을 뿐, 진로를 정하지 못한 그는 98년 인하대학교를 졸업후 1년간 PC방에서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게 된다. 진정한 사회인으로의 출발은 미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반백수'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주위의 압력(특히 여자친구)을 견디지 못한 허 과장은 결국 삼성SDS 멀티캠퍼스에 들어가 프로그래밍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교육을 끝낸 뒤 태평양제약에 입사, 월급쟁이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품어왔던 프로그래머 인생은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다시 시작됐다.
2막, 웹개발자의 길로 들어서다
허 과장이 사회 생활을 시작하던 때는 이른바 '닷컴 열풍'이 한창이던 시절이다. 당시 인터넷은 거부할 수 없는 '절대진리'였고 거기에 올라타지 못하는 사람은 낙오자란 '주홍글씨'가 찍힐 정도였다. 닷컴열풍은 얼마 지나지 않아 '거품'으로 판명났지만 허 과장으로 하여금 진로를 다시한번 고민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태평양제약에서 했던 일은 프로그래머보다는 웹마스터에 가까웠습니다. 이런 가운데 닷컴 열풍이 불어닥쳤어요. 직접 웹프로그램을 짜보고 싶다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두고 웹에이전시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거기에 길이 있을 것 같았거든요. 기업 환경은 어차피 웹으로 넘어갈테고 그렇다면 웹개발에 대한 수요는 많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닷컴 열풍을 계기로 허 과장은 웹개발자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그 길을 계속 걷고 있다. 물론 명함은 몇번 바뀌었지만...
허광남 과장은 웹에이전시를 나온 뒤 2003년부터 2년간 인피언컨설팅에서 삼성생명 CRM 유지보수 업무를 담당했고 2005년부터 지금까지는 GS홈쇼핑에서 프리랜서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근무했던 회사는 달랐지만 웹개발이란 한 우물을 파다보니 전문성도 많이 붙었다. 이름도 꽤 알려졌다. 자바 커뮤니티에서는 어느덧 '유명인사'로 대접받는 그다. 책도 2권이나 썼다. 올해는 자바 개발 플랫폼 '이클립스'에 대한 책을 써 볼 예정이다. 지금까지 결과만 놓고 보면 허 과장은 프로그래머의 길을 택한 자신의 결정이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허광남 과장이 몸담고 있는 GS홈쇼핑은 지하철 2호선 문래역 근처에 있다. 밤 12시 25분이 지하철 막차시간이다. 그는 이 시간에 퇴근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출근은 오전 9시를 지키는 편이다. 근무시간만 놓고보면 편한 일은 아닐 것 같은데, 그는 재미도 있고 미래에 대한 비전도 갖고 있단다.
"일이 힘들더라도 내가 짠 프로그램이 잘 돌아가면 짜릿해져요. 쇼핑몰 이벤트를 위한 선착순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동시에 1만명이 한꺼번에 접속했는데도 죽지 않으면 '내가 한건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러나 만족도로 따지자면 아직 100%는 아니다. 굳이 점수를 매기자면 한 80점 정도. 부족한 20점은 아직 돈많은 개발자가 아니라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SW를 개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만 해결되면 '당근' 100점이다.

이에 대한 고민은 꽤 길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세는 받아들여야 했고 이것은 '노력하면 살길은 있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허광남 과장은 2000년초부터 자신의 이름을 내건 웹사이트(왼쪽 사진)를 운영해오고 있다. 개발자들을 위한 정보 공유 공간인데, 자기 계발과 인적 네트워크를 넓히는데 크게 도움이 됐다고 한다. 강윤신, 박용우, 변종석, 양수열, 옥상훈, 이창신, 노재춘, 이태상, 박재성, 이원영... 허 과장과 연결된 대표적인 지인 네트워크다.
곧 시작될 인생의 제3막을 위하여...
허광남 과장은 마흔살 이후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원하는 환경에서 SW를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다. 마흔살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3년. 그러나 진로는 결정되지 않았다. 방향만 대충 잡고 있을 뿐이다.
"누가 만들라고 해서 만드는게 아니라 정말이지 제가 원하는 SW를 개발하고 싶어요. 지난해말부터는 교수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됩니다. 직장생활을 해본 교수도 필요로 하지 않을까요?(웃음)"
말그대로 허 과장에게는 '인생의 3막'을 향해 가야할 길이 아직 남아 있다.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는 두고봐야 겠지만 직업 만족도 100%를 위해 부족한 20%를 채우는 길을 걷고 싶어하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다음은 허 과장이 개발자가 되고 싶은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그는 우선 영어를 강조한다. "자바든 닷넷이든 프로그래밍에서 커다란 문제중 하나가 한글화입니다. 어쩔수 없이 영어는 해야되요. 인터넷을 통해 다른나라 프로그래머들과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서라도 영어는 필요합니다. 세계적인 프로그래머를 꿈꾼다면 영어는 기본적인 소양이라 생각해요."
논리적인 사고도 프로그래머라면 갖춰야할 능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수학을 열심히 하라는 게 허 과장의 조언이다. "자료 구조, 알고리즘, 로지컬에 대해 알아야 컴퓨터한테 일을 제대로 시킬 수 있죠. 수학이라는게 패턴을 찾아내 그것을 함수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잖아요. 프로그래머라면 수학을 잘해야 되요."
마지막 당부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허 과장에게 커뮤니케이션은 팀 개발을 의미한다. "혼자서 개발하는게 아니라 공동으로 하는 것이라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합니다. 책에 보면 '프로젝트팀 안에 사람들이 말을 걸었을때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건성건성 대답하는 이가 있다면 그 프로젝트는 위험하다'는 말이 있어요. 문제가 생기면 말이 없어지게 됩니다."
개발자를 주제로한 허광남 과장의 일문일답

요즘에 SW개발은 '노가다'란 말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백발을 드날리는 백전노장의 SW개발자가 나올 수 없는 환경이라는 말도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초로 컴퓨터가 나온게 1946년이니 올해로 환갑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컴퓨터 역사는 81년 삼보컴퓨터 아닙니까?(웃음) 이제 20살 조금 넘었을 뿐이에요. 60년된 미국과 단순 비교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나라도 시간이 지나면 제임스 고슬링, 리차드 스톨만같은 개발자가 나올 수 있다고 봐요.
쉬지도 않고 주말도 없이 일하는 소위 '월화수목금금금'에 대한 생각은?
야근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는 않는 편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힘들면 얘기하면 되는거고...개발자들끼리 만나면 이와 관련한 얘기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저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요즘 대학생들이 프로그래머를 기피하고 있다고 합니다.
컴퓨터 관련 학과에 미달자가 많다고 하는데, 온라인에서 하도 어렵다고 해서 그런것이 아닐까요?(웃음) 90년대생들이 프로그램 잘안하려고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 활약하는 이들은 대부분은 6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들에에요. 그 다음 세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뿐이지요. 다음 세대의 개발자는 지금보다 다른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개발자도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개인적인 커뮤니케이션 노하우는 무엇입니까?
처음 개발자란 직업을 선택할 때 '개발자는 남의 인생에 개입하지 않는 일'이란 생각이 있었어요. 그러나 하다보니 남의 인생에 개입하게 됩니다. 내가 프로그램을 잘못짜면 어떤 사람한테 피해를 입힐 수도 있는거에요. 개발자도 다른 사람과 엮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은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 경우도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면서 말이 좀 많아졌어요. 커뮤니케이션 노하우라면, 저는 일단 찾아가는 편입니다. 그 사람 주변 환경이 어떤지, 깔끔한 사람인지 수더분한 사람인지 보고 그사람 눈높이에 맞춰 프로그램을 짜려고 노력합니다. 같이 식사도 자주하구요. 영업 마인드도 키우려고 노력중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올리는데 필요하다고 봐요.
블로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티스토리에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블로그하는 개발자들은 오픈마인드가 강해요. 싫든 좋든 블로그를 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열려 있다는 것을 뜻하니까요. 그러나 아직은 블로그를 하지 않고 숨어지내는 실력자들이 휠씬 많습니다.
요즘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들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어떤 프로그래밍 언어를 유망하게 보시나요?
프로그래밍 언어도 문화의 한 단면입니다. 다양한 프로그래밍 언어가 나오고 있고, 앞으로도 그 흐름은 계속될 겁니다. 언어를 선택하는 것은 자동차를 살 때처럼 하면 됩니다. 맞는것을 고르면 되요. 내가 컴퓨터한테 일을 시키는게 결국 프로그래밍이니까요. 80년대에는 C를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저는 배이직을 했습니다. 대학교에서는 파스칼을 했고요.
오픈소스에 대한 입장은 무엇입니까?
하고싶은데 참여는 잘 못합니다. 오픈소스에 대한 생각은 '공짜다, 유료다'의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개인적으로 오픈소스는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한 개발자들의 커뮤니케이션 방법론이라고 봅니다. 메일링 리스트로 의사소통하고, 버전 컨트롤, 애플라케이션 관리, 버그 리포팅 등에 대해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장치가 있으니까요. 이런 것들은 우리나라 개발자들이 꼭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핵심 프로그래머 역량이란 것은 개발자 집단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뜻한다는 게 제 입장입니다. 오픈소스를 통해 이것을 훈련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오픈소스가 중요하다고 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