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7일, 애플 CEO인 스티브잡스의 'DRM을 없애자'는 제안은 전세계를 들썩이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파이낸셜 타임즈>는 스티브 잡스의 돌발제안 다음날인 2월8일부터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한 달이 조금 지난 3월10일 오전 6시45분(현지시각)을 기준으로 정확히 6400명이 설문에 응답했는데요. '음원업체들이 DRM을 버려야 한다고 보십니까'란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98%가 '그렇다'고 대답했군요. 압도적인 비율입니다.
이런 류의 설문조사가 대개 그렇듯, 이용자에게 이로운 방향의 응답이 많이 나오게 마련인데요. 그럼에도 음반사들을 압박하는 효과는 거둘 듯하네요. 국내에서도 우연찮게 같은 날 벅스가 DRM을 적용하지 않은 '무제한 다운로드 상품'을 내놓아 맞불을 놓은 바 있습니다.
저작권자의 권리가 보호돼야 한다는 데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렇지만 DRM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DRM은 말하자면 '기술적 보호조치'입니다. 기술이 통제하기 시작하면 합법적인 이용자의 권한까지 가로막을 소지가 다분합니다. 예컨대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저작물이라 하더라도 DRM이 걸려 있을 경우 이용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DVD 지역코드' 때문에 외국에서 DVD 타이틀을 구입해 와도 한국에서 볼 수 없다면 어떡하란 말입니까.
그렇지만 DRM을 푸느냐 고수하느냐는 결국 저작권자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사회적 동의가 '압력'은 될 수 있으나, 저작권자의 권리까지 무단으로 침해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도 '옆구리 찌르기'일 뿐 '강제철거'는 아니란 뜻입니다.

먼저 CCL에 대한 기본적인 오해부터 풀어보겠습니다. CCL은 저작권과는 별개의 권리일까요? 아닙니다. CCL은 저작권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는 규약입니다. 법이 정한 저작권의 범위 안에서 남들이 저작물을 합법적으로 쓸 수 있도록 널리 알려주는 표시입니다. 이른바 '폼 나라고' 붙여놓는 딱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왜 굳이 남들에게 널리 알려야 할까요. 나는 내 저작물을 굳이 혼자 쓰고 싶지 않고 여럿과 나눠쓰고픈 사람이 있을 겁니다. 어떤 학자는 자신이 쓴 논문을 다른 사람들이 내려받아 읽길 원할 테고요. 자신이 작곡한 곡을 누군가 가져다 샘플링해 쓰길 바라는 작곡가도 있을 겁니다. 물론 두 경우 모두 원저작자가 누군지는 명확히 밝혀야 한다는 조건에서요.
그렇지만 해당 저작물에 아무런 표시가 없다면 이를 보거나 가져다 쓰고 싶어도 주저하게 마련입니다. 혹시 나중에 저작권자가 문제삼지 않을까 하고요. 그래서 저작권자는 CCL을 표시합니다. '내가 정한 조건만 지키면 마음대로 가져다 써도 좋다'고 미리 알려주는 것이죠. 이용자는 안심하고 퍼가거나 공유할 수 있어서 좋고요. 저작권자도 사람들이 저작물을 공유함으로써 자기 글을 홍보하거나 실력을 알릴 수 있으니 만족할 것입니다.
'CCL을 붙여놓았는데 누군가 내 저작물을 마구 퍼가 불법적인 용도로 쓴다면 어떡하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되묻고 싶습니다. CCL을 안 붙인다면 다른 사람들이 마음대로 퍼가지 않을까요? 저작권자가 온갖 기술을 동원해 저작물을 꽁꽁 묶어둔다면 혹 가능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인터넷 공간에선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기본적인 사실을 잊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CCL을 달든 안 달든, 저작권자의 권리는 엄연히 존재합니다. 다만 CCL은 법이 보장하는 저작권을 100% 손에 쥐고 있는 게 아니라, 정해진 조건을 따른다는 전제로 저작물 이용을 허락하는 표시입니다. 내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작곡한 순간, 그 창작물은 법에 의해 자동으로 내게 저작권을 부여합니다. 굳이 다른 사람이 보지도, 듣지도, 읽지도 못하게 하지는 않을 거라면, 아니 누군가 내 저작물을 마음대로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가져다 퍼뜨리길 바란다면 '이런 이런 조건만 지켜준다면 내 저작물을 가져다 써도 좋다'고 미리 알려주는 것도 좋은 방법 아닐까요. 이렇게 상대가 안심하고 쓸 수 있도록 내 저작물 이용 조건을 미리 알려주는 '사전공지'가 바로 CCL입니다.
요즘 블로그를 돌아다니다보면 '저작물을 지키기 위해 CCL을 달았다가 오히려 낭패를 당할 수 있다'는 인식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요.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CCL도 엄연히 저작권 표시입니다. CCL을 단다고 해서 누구나 자신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퍼가거다 동의 없이 내용을 변경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저작권자가 그걸 허용했을 경우에 한해서입니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있겠죠. 만약 CCL 조건을 '원저작자 표시'(BY)만 달았을 경우, 상대방은 원저작자만 표시하면 해당 저작물을 마음대로 퍼가거나 내용을 변경해도 법적으로 문제삼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원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금지'(BY-NC-ND) 조건을 달았을 땐, 무단으로 내용을 변경하거나 상업적 용도로 쓸 경우 똑같이 법에 의해 처벌받습니다.
오히려 CCL은 자신의 저작권을 보다 확실히 지키는 방편이 됩니다. 저작물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시했기 때문에, 분쟁이 발생했을 때 보다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죠. 꼭 이런 식의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CCL을 다는 것은 아니지만, 'CCL을 달았다가 오히려 곤란해질 수도 있다'는 건 잘못된 이해입니다. CCL은 한 마디로 '도입한다고 해서 손해볼 게 없는 규약'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CCL은 저작권을 꽁꽁 손에 쥐고 배타적으로 행사하려는 사람에게까지 도입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저작권을 온전히 행사하고픈 사람은 지금처럼 'All Rights Reserved'를 고수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내가 쓴 글임을 명확히 표시해준다면 다른 블로거들이 마음대로 퍼가도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CCL을 달아주는 게 좋겠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보다 명확히 하면서, 내 저작물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기고 느끼길 원하신다면.
아, 아시죠? CCL은 공식적으로 DRM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DRM을 적용한 저작물에는 CCL을 달 수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