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피터 코크레인 님. 저는 한국의 1인 미디어 뉴스공동체 <블로터닷넷>의 블로터 asadal이라고 합니다. 초면에 불쑥 이런 글을 올려서 어리둥절하지 않으셨나 모르겠습니다. 코크레인 님께서 4월23일자로 <실리콘닷컴>에 게재하신 '웹2.0은 실패할 운명이다?'란 칼럼을 보고 결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됐습니다. 바다 건너 병아리 블로터의 맹랑한 문제제기일지라도 너그러이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코크레인 님은 웹2.0의 문제를 2000년대 초반 전세계 닷컴열풍의 흥망과 연결지어 설명하고 계십니다. 잠시 말씀하신 대목을 짚어보겠습니다. 

Is web 2.0 doomed to fail?
▲ Is web 2.0 doomed to fail?
코크레인 님은 닷컴의 몰락 원인에 대해 인프라 관점에서 접근하고 계십니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탐욕이나 어리석음, 광적인 낙관주의, 심지어는 불명확한 변화모델에 대한 종교에 가까운 믿음 등을 원인으로 꼽았는데요. 코크레인 님은 그에 못지 않게 불만족스러운 광대역 접속환경을 원인으로 보고 계시는군요. 흔히 말하는 ADSL 말입니다. 닷컴 혁명은 초고속 통신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2000년 초반 각 가정에는 이런 광대역망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고, 그게 열풍을 꺼뜨리는 소방수가 되었다는 설명이군요.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런데 코크레인 님은 이런 실패의 그늘을 웹2.0이란 녀석에게서도 똑같이 발견했다고 이맛살을 찌푸리십니다. 세계 곳곳에서 웹2.0 컨퍼런스가 앞다퉈 열리고 마치 어떤 것이든 변화시킬 수 있는 큰 흐름처럼 받아들여지는 모습에서 '희미한 옛 실패의 추억'을 떠올리시는 모양입니다. 

님께서 제시하는 근거부터 독자분들께 알려드려야겠습니다. 그래야 저도 왜 님같이 저명한 분의 칼럼에 어줍잖게나마 이의를 제기하는지 설명할 수 있으니까요.

"절름발이 통신망이 문제"…웹2.0은 모래 위에 지은 집? 

코크레인 님은 '웹2.0 숙명론'의 근거로 네 가지를 들었습니다. 웹2.0의 4가지 대표적 경향이 마치 닷컴 중흥기처럼 거품으로 덮여 있다는 말씀인데요.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위치기반 서비스 : 양방향 통신이 필요한 위치기반 서비스가 어떤 식으로 구현될 지는 잘 모르겠다.



  • UCC의 물결 : 이를 지원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엄청나게 쏟아질 테지만, 확실한 수익모델은 보이지 않는다.



  • 수천명이 참여하는 롱테일 활동 : 실패할 게 확실하다. 천박한 시도에 그칠 거니까. 값진 경험은 될 거다. 테스트를 해봤다는 걸로 만족하라.



  • 양방향 작업 : 업로드와 다운로드 속도가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옛날식 엔터테인먼트 서비스에 젖은 통신사들이 ADSL을 보급해놓았다. ADSL로는 비디오 컨퍼런싱이나 의료용 애플리케이션 서비스에 제약이 많고, 홈비디오를 올리거나 실시간 다중접속 게임을 즐기기도 어렵다.



결론은 다시 부족한 인프라로 돌아옵니다. 웹2.0을 구현하려면 양방향 통신이 필수적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환경을 갖추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80년대 중반 시절을 그리워하며 FTTH같은 진정한 양방향 인프라를 구축하길 주저하는 기득권층을 향해 총구를 겨눕니다. '당신네들이 밥그릇을 챙기는동안 우리는 시장을 잃어버렸다'고 말입니다.

코크레인 님의 근심이 막연한 기우로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저같은 병아리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지금의 웹2.0 바람은 필요 이상으로 잔뜩 바람을 머금어 바늘만 살짝 갖다대도 금세 터질듯한 풍선처럼 위태로워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열풍의 끝자락을 잡고 잇속을 챙기려는 '웹2.0 나까마'들도 활개치고 있습니다. 현상만 본다면 90년대말 불어닥친 IT열풍과 흡사하다는 지적에도 공감합니다.

그렇지만 인프라를 잣대로 결말까지 똑같이 '실패할 운명'으로 진단하는 데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인프라의 중요성이야 백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모래밭에서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먼저 웹2.0 흐름에서 인프라가 차지하는 위치부터 짚어봐야 할 일입니다. 정말 '진정한 양방향 통신'이 없다면 웹2.0은 나락으로 떨어질 운명일 수밖에 없는 걸까요?

위치기반 서비스에 대해서는 저도 문외한이니만큼 따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님께서 말씀하시는 양방향 통신 인프라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잘 안되는 탓도 있습니다. 님의 관점에서 볼 때 GPS의 보급, 갈릴레오 프로젝트같은 차세대 GPS 인프라 구축 시동, 지상파 LBS 서비스, HSDPA나 와이브로같은 서비스가 기술적으로나 보급률 측면에서 아직 완성된 인프라라고 말씀드리기는 어렵겠습니다. 그렇다면 궁금해집니다. 코크레인 님께서 말씀하신 '진정한 인프라'는 언제쯤 완성되는 것인지요. 오히려 인프라 구축을 가로막는 진짜 걸림돌은 업체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나 정치적 선택의 문제가 아닐까요. 이 문제에 대해선 저도 버선목 뒤집듯 말씀드리기는 어려우니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인프라는 밥그릇일 뿐, 콘텐츠와 서비스를 주목하라 

코크레인 님은 통신사업자들이 이른바 '비대칭 통신망'에서 거둬들이는 수익에 연연해 양방향 통신서비스 구축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고 진단하셨습니다.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인프라 구축도 결국은 이윤추구를 극대화하는 정책에 따라 진행된다는 건 기업 입장에서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세상입니까.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미 구축한 통신망에 의지해 언제까지 달콤한 열매를 따먹을 수 있을까요. 

차세대 통신망을 선점하는 사업자가 경쟁에서 승리하는 시대입니다. 미래의 네트워크, 차세대 기술에 투자하는 건 기업의 기본 전략이자 상식입니다. 코크레인 님의 말씀대로 "80년대 중반의 절름발이 시절을 그리워하며 양방향 인프라 구축을 주저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곳 영국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이곳 한국땅에서 그런 통신사업자는 눈씻고 찾아봐도 안 보입니다. 영국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코크레인 님은 웹2.0이 실패할 이유로 부족한 인프라를 들면서 "웹2.0을 구현하려면 양방향 통신이 필수적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환경을 갖추지 않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이는 다소 단순화한 도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도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전세계 67억 인구 가운데 50억명은 아직도 PC 없이 살고 있습니다. 6명 중 5명은 기본적인 IT 인프라조차 갖고 있지 않다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세계 IT산업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운명이 아닐까요? 이런! 지금이라도 e메일을 버리고 편지봉투와 전보 사용을 적극 장려해야겠군요.

UCC와 롱테일 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UCC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새로운 물건은 아니라는 건 이미 공감대가 형성된 사실입니다. 90년대말 IT산업 1세대보다 생산자의 범위가 넓어지고 생태계가 보다 풍성해졌다는 점에서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겠죠. UCC를 지원하는 서비스도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코크레인 님의 말씀대로 확실한 수익모델이 아직까지 없는 것도 사실인 듯합니다. 서비스 업체가 듣는다면 화를 낼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UCC와 롱테일 비즈니스에 대해서는 이미 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논의와 연구가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이야말로 수익모델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불만족스럽지만 롱테일 비즈니스의 성공사례도 하나둘 나오고 있고요. 여기까지 나가면 얘기가 너무 확대되는군요. 오늘의 핵심 논의는 코크레인 님께서 지적하신 인프라의 문제인만큼, UCC와 롱테일 비즈니스에 대해서는 기회되는대로 이 공간을 통해 따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풍성하고 행복한 만찬은 맛있는 음식과 신선한 재료, 그리고 이를 더욱 맛깔나게 해주는 식기와 식당 분위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모자라지도, 지나치지도 않게 적절히 배치하는 요리사의 감각이 필수적이겠죠. 웹2.0의 성공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콘텐츠(음식)와 인프라(그릇) 그리고 사회적 생태계(분위기)가 조화를 이뤄야 모든 이들이 풍성한 만찬을 즐길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그런데 코크레인 님은 음식을 담는 그릇에 너무 집착하시는 건 아닌지요. 몇몇 밥그릇에 이가 빠졌다면, 음식맛으로 보완하면 될 일입니다. 새 밥그릇이 없다고 밥상을 엎는 건 너무 무모한 일 아닙니까.

코크레인 님께서는 브리티시텔레콤(BT)의 CTO를 비롯해 통신업계에서 38년간 몸담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누구보다도 통신업계의 사정에는 정통한 베테랑이실 텐데요. 그런 저명한 분의 현실 진단이 왠지 저같은 병아리의 눈에는 다소 현실과 괴리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제가 현상을 잘못 보고 있는 걸까요.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