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자연계의 물질순환과 물질생산을 일으키며, 모든 생명이 살아가는 근원이 되는 원동력이다. 더불어 내가 가장 즐겨 읽는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서 도(道)의 속성을 이야기할 때, 비유되기도 한다. 특히 『도덕경』을 관통하는 ‘무위(無爲)와 빔(空)’사상을 함축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순수한 물은 ‘무색·무미·무취’이기에 더욱 과학적 설득력을 더한다 할 수 있다.




내가 『도덕경』을 읽고 얻은 핵심은 세 가지로 空의 道, 자연의 음양사상, 물의 겸양이 그것이다.




첫 번째, 무소유의 도를 버트란트 러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유없는 생산, 자기주장없는 행동, 지배없는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제1장 “성인은 내가 그를 자라게 한다고 간섭함이 없고, 잘 생성시키면서도 그 생성의 열매를 소유함이 없고, 잘 되어가도록 하면서도 그것에 기대지 않는다. 공이 이루어져도 그 공속에 살지 않는다. 대지 오로지 그 속에 살지 아니하니 영원히 살리라.”(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夫唯弗居, 是而不去.)




인간의 모든 고민과 번뇌, 이기는 바로 소유, 지배, 간섭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욕심이 없는 것이 바로 무소유로 석가가 말하는 해탈이 아닌가 한다. 모든 존재의 쓰임은 비어있음(空, 虛)로 인해 생기는 것이다. 그릇이 비워져 있어야 밥과 음식을 담을 수 있듯, “있음의 이로움은 없음의 쓰임이 있다.”(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이러한 가르침의 내면에는 인간만사새옹마(人間萬事塞翁馬)라는 동양인의 원숙한 虛의 가르침을 느낄 수 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문구 중 하나인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의 ‘채찍과 당근’식의 대가형 노력은 그 수단과 과정에 이미 소유와 지배, 간섭이 생기기 때문에 有爲이며 不正이 되는 것이다. 마음을 버리고 살 때, 진정한 道를 행할 수 있다.




두 번째, 노자철학 중 내가 가장 마음에 든 것은 바로 생명사상이다. 생명은 물과 불로, 물은 생명의 질(質)이요, 불은 생명의 힘이다. 땅의 물이 하늘로 기화(陽化)되어 올라가면 陰雨로 결(結)되어 다시 땅으로 떨어진다. 다시 땅은 음우를 받아 생명을 잉태시킨다. 이러한 물의 신진대사는 곧 호메오스타시스(항상성, 中庸)이요, 전지구적 호흡의 역동적 실체인 것이다. 인간으로 비유하면 음우가 남자의 사정으로 상징되는 남성적 행위이며, 땅은 곧 그 정액을 받아들이는 성스러운 여성의 자궁이 될 것이다. 그 자궁이 태반이 되어 생겨난 생명을 만물(萬物)이라 부르니, 만물의 아버지는 곧 하늘이요, 어머니는 땅이다. 자연을 파괴하고 훼손하는 것은 곧 자궁내부의 생명의 質을 파괴하는 행위로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에 대한 낙퇴행위로 비취질 수 있다.




세 번째, 물의 자기 낮춤(謙讓)은 내가 가장 수신해야할 덕목이다. 늘 아래로 흐르며, 가다 바위를 만나도 다투지 아니한다. 또한 바위의 자리를 차지하려 하지도 않는다. 점잖게 스쳐 지나갈 뿐이다. 가는 곳마다 이롭지 아니한 곳이 없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요, 힘의 원천이다. 늘 높은 것을 깎고 낮은 것을 돋아준다. 물은 고귀한 신성함이다. 더불어 나만이 깨끗하고 고고하다며 떠들어대는 이 세상에 물은 똘레랑스 포용의 의미를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노자는 말한다. "너 자신을 먼저 흐르게 만들라! 그리고 자신의 흐림으로 탁류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탁류 그 자체를 가라 앉혀라! 그리하면 너와 네 주변이 같이 깨끗함을 얻으리라!" 정말이지 이토록 정신이 확! 번쩍였던 때가 또 있을까 싶은데, 나만 깨끗하고 고고해서도 아니되며 그럴 수도 없다. 세상의 소외받는 사람들을 돕고 내가 함께 하려면 내 안위를 챙긴 후 안정적으로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이 되어 함께 싸울 때, 세상은 밝아지고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자명한 진리를 얻게 됐다. 이는 곳 자기를 들어내지 아니함이요, 겸양(謙讓)이라.




이러한 노자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은 과학적 특성들로부터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첫째, 물은 녹는점과 끊는 점이 0℃에서 100℃까지로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 온도범위가 넓다.


둘째, 밀도는 4℃에서 최대이며, 그 이상에서는 온도 상승에 따라 감소한다. 물이 얼면 밀도가 감소하고 얼음은 물에 뜬다. 호수의 표면이 얼면 밀도가 큰물은 밑으로 가라앉으므로 수중의 생물이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셋째, 표면장력은 액체 중에서 최대이다. 표면장력으로 토양 중에 물을 축적하여 키가 100m가 넘는 나무 꼭대기까지 뿌리로부터 이동할 수 있다.


넷째, 유전율(誘電率)은 액체 중에서 최대이다. 전해질은 천연수 중에 있는 많은 물질을 용해시켜 물질순환에 큰 역할을 담당한다. 생체 내에서는 영양소 등이 물에 용해되어 흡수·운반 및 배출된다.




덧붙임 :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 부디 물 흐르듯 잘 되었으면 좋겠다. 한번 발을 담근 시냇물에 다시 발을 담그고 있을 수 없듯 내 자신도 늘 변화하며 깨끗한 아름다움을 영원토록 간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얼마 전 광릉수목원 뒤편 장기생태계연구지역에서 아직도 얼음이 녹지 않는 차가운 시냇물에 손을 담그고 낙엽이 녹아들 듯 나도 자연의 일부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던 찰라, 문득 『도덕경』 제7장의 ‘上善若水’라는 단어가 뇌리에 떠올라 글을 적어 본다.




『도덕경』- 제 7 장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상선약수 수선리만물이부쟁)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처중인지소오 고기어도)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居善地 心善淵 (거선지 심선연)


살 때는 낮은 땅에 처하기를 잘하고, 마음 쓸 때는 그윽한 마음가짐을 잘하고,




與善仁 言善信 (여선인 언선신)


벗을 사귈 때는 어질기를 잘하고, 말할 때는 믿음직하기를 잘하고,




正善治 事善能 (정선치 사선능)


다스릴 때는 질서있게 하기를 잘하고, 일할 때는 능력있기를 잘하고,




動善時 (동선시)


움직일 때는 바른 때를 타기 잘한다.




夫唯不爭 故無尤 (부유부쟁 고무우)


대저 오로지 다투지 아니하니 허물이 없어라.




서금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symbio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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