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에릭의 관중동원력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5월29일부터 31일까지 SBS 주최로 서울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서울디지털포럼 2007'(SDF 2007) 둘째날. 에릭 슈미트 구글 CEO의 특별연설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호텔 입구는 아침부터 북적거렸습니다. 나름 서둘러 길을 나섰지만, 특별연설이 시작한 지 5분쯤 지나서야 겨우 기자실 문턱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SDF 2007의 모든 행사는 호텔 곳곳에 걸린 대형 TV 화면을 통해 생중계되었습니다. 덕분에 특별연설 장소에 직접 가지 않고도 기자실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며 인터넷 제국 황제 CEO의 연설을 생생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행운입니다.


에릭 슈미트 회장의 연설은 특별히 지상파 TV를 통해 생중계됐습니다. 보신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슈미트 회장은 구글의 검색 철학과 자신들이 그리는 미래를 소개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 CEO의 방한소식에 무언가 '깜짝선물'을 기대했던 취재진이나 업계 관련자라면, 무난하고 평이한 연설에 다소 실망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릭 슈미트 구글 CEO
▲ 에릭 슈미트 구글 CEO


40여분에 걸친 에릭 슈미트 회장의 연설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 한국은 인터넷 서비스의 실험실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수십년간 인터넷 리더 역할을 할 것이다. 초고속 인터넷은 컴퓨터의 구조를 바꿔놓을 것이다. 모든 것을 서버에 올려놓고 관리할 수 있다. 은행에 돈을 맡겨두거나 신용카드를 쓰는 것과 같다. 모든 정보를 구글 서버에 올려놓고 관리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유비쿼터스, 브로드밴드, 유무선이 필요하다. 새로운 컴퓨팅 모델이 나오는 것이다.





  • 광고의 가치가 커지고 있다. 광고가 개인에게 가치를 주는 정보가 되는 시대가 된다. 앞으로는 광고도 등급을 매길 수 있는 콘텐츠다. 광고는 7800억달러 규모를 가진 대형 비즈니스다. 광고의 수는 줄어들 지 모르나, 각 광고가 개인에게 주는 의미는 더욱 커진다.





  • 검색은 더 나아질 수 있다. 사람들이 매일 할 만 한 일들을 제시할 수 있도록 발전할 것이다. 구글은 지난주 유니버셜 서치를 내놓았다. 오디오, 비디오 등 다양한 콘텐츠를 한 페이지에 통합해 보여주는 서비스다. 검색은 더 정교해져야 한다. 패리스(Paris)라고 하면 사람들은 패리스 힐튼을 말하는 건지 프랑스 파리를 말하는 건지 알 수 없다. 결국 여러분이 최고의 전문가다. 아이구글은 구글 가젯이란 애플리케이션으로 최적의 검색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개인이 가진 체험은 PC 뿐 아니라 휴대폰같은 모바일 기기를 통해 커뮤니케이션한다. 앞으로는 둘 이상의 네트워크에 동시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 구글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지속적인 혁신 ▲사용자의 관점을 가장 중요시함 ▲파트너십을 통한 생태계 구축 등이다.



에릭 슈미트 회장 특별연설
▲ 에릭 슈미트 회장 특별연설
행사장에는 유명 인사들도 상당수 참석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해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등 올 한해 한국 정치사를 뜨겁게 달굴 인물들이 대거 얼굴을 비췄습니다. 특히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슈미트 회장의 연설이 끝난후 문답시간에 "구글을 비롯한 포털사이트의 정보통제력이 커지면서 인터넷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소지는 없는가"라는 질문을 유창한 영어로 던져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슈미트 회장은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의사결정을 돕는 것이 민주주의를 앞당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재치 있게 화답했습니다.


스트리트 뷰=구글 지도+거리사진


에릭 슈미트 회장은 특별연설 도중 새로운 서비스를 깜짝 공개했습니다. '구글 스트리트 뷰'란 서비스인데요. 구글 맵스(지도)와 구글 어스(위성사진)에 실제 거리사진을 결합한 매시업 서비스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구글 맵스에서 실제 길거리 사진들을 볼 수 있는 서비스인데요. 우선은 미국 주요도시를 중심으로 거리사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에릭 슈미트 회장은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모든 길거리 사진을 찍어서 구글 맵스나 구글 어스에서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진은 단순히 정지된 화면이 아닙니다. 360도 회전이 가능하고요. 길거리 모습을 비롯해 도로 방향이나 표지판, 심지어는 주차 가능 여부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구글은 앞으로 이런 이미지를 전세계 도시들을 대상으로 확장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에릭 슈미트 회장은 "전세계 사용자의 관계를 발전시켜 지도뿐 아니라 실제 길거리의 하일라이트를 볼 수 있게 되면 그 힘은 강력할 것"이라고 기대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이 서비스는 특별연설 청중들로부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특별연설이 끝난 뒤에는 기자들을 대상으로 1시간여에 걸쳐 별도의 기자간담회가 열렸습니다. 구글코리아의 국내시장 공략법이 주요 관심사였는데요. 그 첫 신호탄으로 구글은 한글페이지를 위한 새로운 사용자 화면(User Interface)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국형 구글=서비스 바로가기+애니메이션 이미지


구글이 특정언어 페이지를 위해 사용자 화면을 바꾸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한마디로 '사건'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겠습니다. 여기에는 한국 포털서비스의 특수한 환경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구글의 고민이 묻어납니다. 

변경 전
▲ 변경 전

                                          

변경 후
▲ 변경 후


새로운 구글 한글화면의 핵심은 서비스 바로가기 메뉴와 이미지 버튼입니다. 먼저, 검색창 위에 텍스트 형태로 걸려 있던 주요 서비스 메뉴를 이미지 버튼으로 새단장했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자주 쓰는 7가지 구글 서비스를 검색창 밑에 애니메이션 이미지로 덧붙였습니다. G메일, 토크, 캘린더, 노트, 툴바, 데스크톱, 피카사 등입니다. 각 메뉴에 마우스를 올려놓으면 관련 이미지가 애니메이션 형태로 뜨고, 이를 클릭하면 해당 서비스로 바로 이동합니다.


겉보기엔 그저 초기화면을 조금 더 예쁘게 꾸민 것이라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엔 구글의 웹 철학을 위반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묻어 있습니다. 구글은 시작페이지를 화려하게 꾸미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 대신 PC나 휴대폰, PDA 등 어떤 기기에서도 구글 서비스를 문제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접근성'을 중요시합니다. 화려한 플래시나 동영상을 없애고 텍스트 중심으로 심플하게 꾸미는 이유는 페이지가 빨리 뜨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간결하고 심플한 사용자 화면과 빠른 로딩속도.' 이것이 구글이 늘 강조하는 웹 철학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한글페이지만을 위한 애니메이션 이미지와 바로가기 버튼은 나름 놀랄만한 선물이 아닐까요.



에릭 슈미트 회장의 방한은 '구글코리아 원년'과 맞물려 많은 관심을 모았습니다. 구글의 국내시장 공략이 본격화되는 신호탄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이날 모인 구름같은 청중과 유명인사들이 이를 에둘러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눈높이가 지나치게 높았던 탓일까요. 구글의 한국시장 현지화 전략같은 핵심 의문에 대해서는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뀐 사용자 화면이 구글코리아의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행사가 끝난 지금도 포만감은 들지 않는 느낌입니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