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소니라는 회사는 아직도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로 다가온다.

휴대용 오디오 플레이어 워크맨이 그랬고 레코드판을 대체한 CD 또한 소니다움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던가? 천하를 호령하던 소니는 요즘 IT업계에서 그 영향력을 상실해 나가고 있다.

가전 분야에서는 삼성전자에 밀렸고 개인용 기기쪽에서는 스티브 잡스가 이끄는 애플에 주도권을 넘겼다.

비디오 게임 콘솔 분야서도 마이크로소프트(MS)와 닌텐도의 거센 도전앞에 흔들리는 모습이다.

70~80년대 전세계적으로 신드롬을 몰고다니며 지지않은 제국이 될 듯 했던 소니.

이 회사는 어쩌다가 시장 지배력을 경쟁사에 넘겨주게 됐을까? IT를 다루는 입장에서 이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소니 바이오 사업부에서 근무하다 퇴사한 미야자키 타쿠마가 쓴 <소니침몰>은 이에 대해 어느정도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소니 출신 한 직원이 '친정의 부활'을 꿈꾸며 외친 내부 고발 성격으로 잘나가던 소니가 어떤 이유로 급격하게 흔들리게 됐는지를 다양한 관점에서 제시하고 있다. 한 사람의 견해에 객관적이다란 꼬리표를 달아주기는 뭐함에도 불구하고 소니안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비교적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저자는 전성기를 구가하던 소니에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에 대해 기업 문화의 변화를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연구개발을 숭상하던 기업 문화가 사라지고 매출지상주의, 주가근본주의가 그 자리를 대체하면서 소니의 몰락은 스타트를 끊었다는 것이다.


"소니는 자신의 강점인 기술은 존중하는 사풍을 잃어버리고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걷게된 것이다. 소니는 꿈을 가진 사람들이 회사와 조직의 후원을 받으며 하고싶은 일을 찾아서 사내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잘나가던 소니에는 이런 문화가 깊숙히 베어있었다. 당시만 해도 '기술에 대한 타협은 고객에 대한 모욕'이라는 생각이 강했던 소니였다. 유쾌한 이상공장 건설이란 슬로건이 지배했던 시기였다.

소니가 기술에 대해 얼마나 자부심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일화 하나. 소니는 바이오 PC 사업이 승승장구할 당시 회사 브랜드에 상처가 생길까봐 인텔 인사이드란 로고도 PC에 달지 않았다. 브랜드 파워를 지키기 위해 인텔이 주는  마케팅 지원금도 과감하게 포기한 것이다.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소니만이 줄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던 기업 문화가 시장에서 소니가 독보적인 브랜드 파워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였다는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소니의 성공을 이끌었던 기술을 중시하는 문화는 왜 단기성과주의, 매출지상주의, 주가근본주의에 자리를 넘겨주게 됐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관료주의의 확산과 경영진의 오판을 꼽고 있다. '안전빵'에 올인하는 임원들이 늘어면서도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새로운 것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문화에 제동이 걸렸다는 것이다.

"모든 매니저들의 의견 일치를 보인 상품중에서 죽이는 것이 있을리 없다. 4번타자에게 보내기번트를 주문하는 듯한 결론이 내려진다. 이것은 정책이나 비전을 관철시키는 아티스트로 계속 남는쪽을 선택한 애플과 아티스트의 혼을 상실하고 샐러리맨으로 남은 소니의 차이를 보여준다."


저자는 소니는 현장에서 근무하는 우수하고 열정을 가진 인재가 많지만  위로가면 갈수록 한심한 사람 뿐이라며 관료체계의 상층부를 차지하는 임원들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내민다. 소니가 진정으로 부활을 꿈꾼다면 의욕없는 경영진을 전원 해고하는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서슴치 않는다. 결국 저자는 단기성과보다는 엔지니어의 신념을 중시하는 기업 문화를 회복하는 것만이 소니가 과거의 영광을 재연할 수 있는 길이라고 부르짖고 있는 셈이다.

이 대목에서 궁금해진다. 소니는 왜 매출지상주의와 주가근본주의에 빠져 버렸을까?

저자는 한때 세계적인 경영자로 통하던 이데이 노부유키 전 CEO의 판단 미스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소니의 강점은 제조업인데, 이데이 CEO를 비롯한 경영진이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등 애매모호한 말로 주가를 올리는데 재미를 붙이는 바람에 기술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데이 전 CEO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지는 않는다. 그로서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었다는게 이유다.

밖에 많이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소니는 이데이에 앞서 소니 지휘봉을 잡았던 오가 노리오 회장 시절, 콜롬비아 영화사를 인수하면서 엄청난 부채를 떠안게 된다. '콘텐츠와 하드웨어의 결합', '소니! 할리우드를 폭격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소니의 영화 콘텐츠 사업은 내부적으로는 암세포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여기에 발목이 잡힌 이데이는 주가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고, 이것은 소니의 최대 강점인 엔지니어들의 열정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소니침몰>을 읽으면서 난 사용자들 사이에서 아이콘으로 부상한 애플과 구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두 회사는 혁신자의 이미지가 강한 곳이다. 소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기술 존중의 문화와 비슷한 냄새가 풍기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방이 쉬워진 시대,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게 기업 경쟁력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소니의 영혼을 훔쳐간 매출지상주의와 주가근본주의가 다른 기업들까지도 뒤흔들고 있는 요즘, 소니의 붕괴 원인을 파헤친 <소니침몰>은 현재 보다는 미래를 꿈꾸는 기업 경영자와 투자자들에게 의미있는 메시지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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