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뜨는 해가 있으면 지는 해가 있기 마련인 법이다. 이는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예외가 없다. 한때 무소불위의 권좌에 올라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것 같던 기업도 어느 순간 후발주자들에 밀려 그들을 힘겹게 뒤쫒는 신세가 되거나 아예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때 인터넷 업계의 맹주로 군림하던 야후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너, 야후하니?(Do You Yahoo!)"라는 슬로건은 ‘검색은 곧 야후’라는 자신감의 표현이자, 감히 토를 달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었던 때가 있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2000년대 초기까지 야후의 전성시대는 영원할 듯 보였다.
회사 설립 이후 10년이 조금 지난 2007년 6월, 야후의 창업자 제리 양이 CEO로 복귀했다. 긴급 구원투수로 창업자가 경영일선으로 돌아온 것이다. 현재 야후에는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여전히 야후는 세계 최대의 포털 자리에 앉아있다. 직원 1만 2,000여 명, 연 매출 60억 달러의 거인이다. 하지만 실적 부진의 늪에 빠져있다는 게 문제다.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인수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무엇보다 강력한 도전자 구글에게 사실상 주도권을 넘겨준 상황이다. 주주들의 압력이 거세지면서 CEO 교체라는, 그것도 창업자 복귀라는 카드까지 던진 것이다.
스탠포드 대학의 젊은 대학원생 제리 양, 데이비드 필로 두 사람이 1995년 설립한 야후는 비슷한 시기의 경쟁 포털인 MSN, 라이코스, 익사이트 등을 제치고 최고의 포털로 떠올랐다. 라이코스, 익사이트, 알타비스타 등 당시 어깨를 나란히 했던 포털 가운데 현재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이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MSN이 유일하다. 그만큼 야후의 기세는 거침이 없었다.
야후는 검색의 정확성에서 다른 경쟁자들을 앞섰다. 사이트에 대한 정보를 최종적으로 사람이 분류하는 방식을 썼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검색 엔진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존재했지만, 검색의 정확성이 떨어졌다. 검색의 상대적 정확성을 앞세워 야후는 경쟁자들을 따돌렸다.
하지만 이는 영원할 수 없었다. 검색엔진의 눈부신 성능 향상은 야후의 절대권좌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 선봉이 구글이었다. 구글의 탄생도 야후 탄생의 본거지였던 스탠포드 대학이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두 사람이 새로운 검색기술을 기반으로 검색의 정확성을 높인 검색엔진을 개발, 구글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후 구글의 성장은 따로 얘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현재 구글은 웹2.0의 총아로 칭송받으며 야후를 웹1.0 기업으로 밀어내고 왕좌에 올라섰다.
호랑이 새끼를 키우다
재미있는 것은 구글의 성장에 날개를 달아 준 것이 바로 야후라는 사실이다. 구글이 새로운 검색엔진을 개발해 회사를 설립한 것이 1998년. 당시 야후는 이미 거대 포털로 성장해 있었다. 신생 벤처기업 구글은 개발한 검색엔진을 기존 포털들에게 OEM 방식으로 공급하면서 비즈니스를 시작했는데, 구글의 검색엔진을 공급받은 대표적인 포털이 바로 야후였다.
신생기업 구글에게 안정적인 매출을 보장해줌으로써 구글의 성장에 발판을 마련해 준 것이 바로 야후 자신이었다는 얘기다. 매출 보장뿐 아니라, 야후의 검색엔진이 구글이라는 사실은 구글에게 엄청난 홍보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호랑이 새끼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야후는 부랴부랴 잉크토미, 오버추어, 알타비스타 등 검색엔진 업체를 사들이고 자체 검색엔진 확보에 나섰지만, 야후가 자체 검색엔진을 개발해 구글과 정식 결별한 것은 2004년이었다. 이미 구글은 훌쩍 커버린 상황이었다.

검색엔진만으로 구글을 얘기할 수는 없다. 구글의 최대 수익원인 검색연동형 광고 모델의 경우도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은 야후였다. 야후가 인수한 오버추어가 처음으로 개발한 ‘스폰서 검색’은 특정 검색어를 기업에게 판매하는 방식이다. 특정 검색어의 검색결과 페이지에 자사의 광고를 올릴 수 있는 권리를 판매하는 방식인 것이다.
현재 거의 모든 포털에서 채용하고 있는 이 검색연동형 광고모델을 구글이 잽싸게 채용해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시켰고 사실상 오늘의 구글을 있게 만든 구글 최대의 수익원이 됐다.
IT 업계에서 야후와 구글의 관계를 연상시키는 두 기업이 또 있다. 바로 IBM과 마이크로소프트다. PC를 처음 개발한 IBM이 그 PC에 들어갈 운영체제로 빌 게이츠가 설립한 신생 기업 마이크로소프트의 ‘도스(DOS)'를 선택해줬던 것이다.
운영체제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IBM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IBM PC를 타고 승승장구했고, IBM은 뒤늦게 자체 운영체제 개발에 나서기도 했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지금은 IT업계의 맹주 자리를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겨준 꼴이 야후와 구글의 관계와 너무도 닮은 꼴이다.
순간의 방심으로 호랑이 새끼를 스스로 키워준 IBM과 야후. 두 기업은 이미 시장에서 너무도 커버린 두 호랑이를 뒤쫒아가는 신세가 돼 버린 것이다.
돌아오는 창업주들, 부활 선봉장 될 수 있을까.
창업자 제리 양이 야후를 다시 살릴 수 있을까. 그야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가 전략가라는 점에서 내부에서는 기대를 갖는 듯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반신반의다. 무엇보다 제리 양이 왕성한 활동을 하던 때와 달리 현재 야후는 너무도 거대한 기업이 돼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경우 성장단계별로 그에 걸맞는 능력과 리더십이 필요하다. 과연 창업자 복귀 효과가 얼마나,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관심사다.
델컴퓨터의 마이클 델 창업주도 경영에서 손을 뗐다가 지난 2월 다시 복귀했다. 업계 1위 자리를 HP에 넘겨주는 상황을 맞아 다시 팔을 걷어 부친 것이다.
애플컴퓨터의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의 성공을 통해 애플을 부활시킨 선례가 바로 코앞에 있다. 제리 양과 마이클 델도 과연 스티브 잡스의 뒤를 따를 수 있을 것인지,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글은 <주간한국> 2179호(2007.07.03)에 기고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