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방시혁 하이브 의장 /사진 제공= 하이브
(왼쪽부터)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방시혁 하이브 의장 /사진 제공= 하이브

하이브 기업공개(IPO)를 둘러싼 의혹은 경찰 수사로 비화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상장 계획을 고의로 숨기고 기존 투자자들의 지분 매각을 유도했다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당시 발언과 투자자별 거래 내역, 그리고 투자제안서(IM)에 담긴 계약 구조를 시간 순으로 따라가 보면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훨씬 입체적이고 복잡 다단하다.

 

① 상장 가능성 첫 언급과 첫 지분 거래(2017.12~2018.10)

방시혁 옛 빅히트 대표는 2017년 12월 17일(현지 시간)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초기 투자자인) 레전드홀딩스, LB인베스트먼트 등 주주들과 IPO 논의를 하고 있다”며 처음으로 상장 가능성을 언급했다(Mogul Behind K-Pop Boy Band BTS Considers IPO).

그래픽 = 박진화 기자
그래픽 = 박진화 기자

다만 BTS의 해외 진출을 위해 IPO 등을 통한 새로운 자금 조달처가 필요하긴 했지만 상장이 성공할지 여부는 '안갯 속'이었다. 대기업 계열사들조차 상장에 수차례 실패하는데 중소규모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상장 성공을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방 의장도 “다만 구체적 시기와 규모는 정하지 않았다”는 단서를 달았다. 빅히트는 IPO 외에도 해외 자본 유치 등 다양한 옵션을 동시에 검토했다.

IPO가 멀게만 느껴졌던 2018년, 빅히트에 투자했던 LB인베스트먼트는 펀드의 만기 시점이 가까워지면서 LP(유한책임투자자)들에게 투자원금을 돌려줘야 했다. 이에 자신들의 구주를 스틱인베스트먼트에 넘겼고 이 과정에서 방 의장은 처음으로 주주간 계약(SHA)에 서명했다. 이 계약에는 풋옵션(put option)·언아웃(earn-out) 구조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② 엑시트 압력과 반복된 주주간 계약(2019.6~2019.11)

BTS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빅히트는 고민이 적지 않았다. BTS에만 의존하는 원툴 컴퍼니(싱글 IP)라는 리스크와 BTS 멤버들의 군 복무 문제를 안고 있었다.

투자자들 사정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레전드홀딩스는 LP들의 투자금 회수(엑시트) 압박을 받았고 알펜루트자산운용은 환매 요구에 대응해야 했다. 창업 멤버 최유정 전 부사장도 지분 매각 의사를 밝혔다. 투자자들은 IPO와 무관하게 각자의 사정에 따라 엑시트 압력에 직면했다.

2019년 6월 김중동 전 SV인베스트먼트 상무가 주도해 이스톤 1호 펀드를 결성했다. 최 전 부사장의 지분 2.7%(234억 원)를 인수했으나 목표금액 500억원을 채우지 못했다. 나머지는 방 의장이 떠안아야 했다.

여기에도 '3년 내 IPO 실패 시 원금+연 7%를 보장하는' 풋옵션과 'IPO 성공 시 매각 차익의 30%를 방시혁 의장에게 배분하는' 언아웃 조항이 포함됐다. 이 조건은 금융주관사의 IM에 명확히 기재된 것으로 전해진다.

IM 세부 내역을 살펴보면 방 의장은 당시까지만해도 IPO에 확신이 없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IPO가 확정적이라면 방 의장이 차익의 30%만 가져갈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이는 사실상 투자자인 스틱에게 유리한 보호장치를 설정했다는 분석이다.

2019년 8월 하이브는 IPO의 사전 절차인 지정감사를 금융감독원에 신청했다. IPO 추진을 위한 첫 걸음을 내딛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실제로는 일부 구주주가 LP들의 불만을 가라앉히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 하이브 측 주장이다. 앞서 레전드 등 기존 주주가 투자금 회수를 재촉하는 LP들의 등쌀에 떠밀려 IPO 가능성을 살펴보자는 차원에서 하이브 측에 지정감사 신청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2019년 11월 이스톤 2호 펀드는 알펜루트·레전드·LB로부터 하이브 지분 8.7%(1046억원)를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주주간 계약은 다시 반복됐다. IPO 실패 시 원금+연 7%를 보장하고 IPO 성공 시 매각 차익의 30%를 방 의장에게 배분하는 구조다. 해당 조항의 요약표는 IM에 명시해 기관투자자들에게 공유했다. 

 

③ 상장과 정산, 의혹의 시작(2020년~)

하이브는 2020년 초 BTS의 글로벌 성공 후 IPO 주관사 선정을 위한 입찰제안요청서(REF) 발송, 상장예비심사청구, 증권신고서 제출 등을 일사분란하게 진행했다. 그 결과, 10월에는 코스피 시장에 상장했다.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 5조원, 첫날 10조원을 돌파하는 성공을 거뒀다. 위버스를 통한 온라인 공연 흥행과 ‘다이너마이트’의 빌보드 1위가 반전의 계기가 됐다.

상장 이후 스틱과 이스톤은 지분을 분산 매각했고 약정에 따라 방 의장에게 약 1900억원을 지급했다. 방 의장은 이중 1568억원을 이듬해 하이브 유상증자에 투입했고 미국 진출 거점을 만들기 위해 벨 에어 인근 주택 구입에 나머지 금액을 사용했다.

구주주들도 최소 60%에서 최대 1900%에 달하는 수익을 실현했다. IPO 이후 더 큰 이익을 놓쳤다는 아쉬움은 남을 수 있으나 이는 시장 변동성에 따른 기회비용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상장 직후 이해관계자 중 누구도 방 회장과 투자자들이 맺은 계약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올해 들어 뜬금없이 IPO 은폐와 계약서 미제출 의혹이 부각됐다. 상장에 성공한지 5년이 다 되가는 시점이다. 대다수 투자자들은 투자금의 몇배에 달하는 수익을 올리고 하이브 주주명부에서 사라진 뒤다. 금융당국과 경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하면서 주주간 계약의 성격과 IPO 절차 적정성을 둘러싼 공방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양자 간에 풋옵션·언아웃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이보다는 계약 체결사실의 공시 여부와 투자자 설득 과정에서 정보 제공 방식이 쟁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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