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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생활건강이 정기인사를 앞두고 10월1일자로 로레알 출신인 이선주 사장을 신임 최고경영자(CEO)로 전격 선임했다. 주력인 화장품 부문이 82분기 만에 적자를 기록하자 글로벌 전략가를 서둘러 영입해 위기돌파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키엘·입생로랑부터 메디힐·AHC까지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30년간 맡아온 이 CEO가 LG생건의 위기를 극복하고 체질개선을 이룰지 주목된다.
30일 LG생건에 따르면 회사는 11월10일 임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이 CEO의 공식 선임 절차를 마무리한다고 밝혔다. 당초 내년 3월로 예정됐던 정기 인사를 앞당긴 ‘원포인트 인사’다. 전임 이정애 사장은 용퇴를 결정했다. 회사는 새로운 사령탑을 중심으로 사업전략을 재정비하고 조직 분위기를 쇄신할 방침이다.
이번 인사는 뷰티 사업의 위기를 고려한 긴급처방 성격이 짙다. LG생건 화장품 부문은 그룹 전체 매출의 약 42%를 차지하지만 올해 2분기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19.4% 줄어든 6046억원에 그쳤고 영업손실 163억원으로 적자전환했다. 이는 2004년 4분기 이후 82분기 만의 첫 적자로 ‘어닝쇼크’에 해당한다. 회사는 주력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음료 자회사 해태htb 매각을 추진하는 등 대대적인 체질개선에도 나선 상황이다.
로레알·메디힐·AHC 거친 글로벌 전략가
이 사장은 30년 가까이 글로벌 화장품 업계에서 활동해온 마케팅·브랜드 전략 전문가다. 1994년 로레알코리아에서 비오템·랄프로렌·조르지오아르마니 등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며 경력을 시작했다. 2006년에는 키엘과 입생로랑 브랜드의 제너럴매니저(GM)를 맡아 한국에서 키엘의 글로벌 2위 매출을 달성했다.
이를 발판으로 2013년 로레알USA 본사로 옮겨 키엘 국제사업개발 수석부사장을 지냈다. 키엘을 랑콤에 이어 로레알 럭셔리 부문 2위 브랜드로 끌어올리고 글로벌 매출을 2배 성장시키는 성과를 냈다. 2016년 로레알코리아 부사장으로 복귀한 뒤 로레알파리, 메이블린, 라슈포제 등 대중 브랜드까지 총괄했다.
이후 2018년 엘앤피코스메틱 글로벌전략본부 사장 및 미국법인 지사장으로서 마스크팩 브랜드 '메디힐'의 미국 시장 진출을 주도했다. 2021년부터는 유니레버 자회사인 카버코리아 대표이사로서 AHC의 브랜드아이덴티티(BI) 정립 및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다.
성과 중심 리더십...체질개선 시험대
이 사장은 글로벌 브랜드 육성과 K뷰티의 해외확장 경험을 바탕으로 위기에 처한 LG생건의 핵심 과제를 풀어야 할 책임이 있다. 실제로 화장품 포트폴리오는 더 이상의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올 2분기 기준 브랜드별 매출 비중은 ‘더후’가 48%로 절반에 육박하며 더페이스샵은 9%, 빌리프는 4%, CNP는 4% 수준이었다. 한때 더후는 중국 시장에서 주력 브랜드였지만 경기침체, 면세채널 부진, 소비 트렌드 변화 등으로 성장세가 급격히 꺾였다.
이는 글로벌 K뷰티 시장의 흐름과도 대비된다. 최근 세계 시장에서는 기초·색조 중심의 K인디브랜드가 합리적인 가격과 품질을 무기로 급성장하고 있지만, LG생건은 여전히 럭셔리(75%)와 프리미엄(25%)의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더구나 LG생건은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북미·일본·동남아를 중심으로 다변화 전략을 서둘러야 한다. 올 상반기 해외 매출 비중은 전사 매출의 32%였으며 이 가운데 중국 12%, 북미 8%, 일본은 7%를 차지했다. 중국 매출은 전년 대비 6% 줄어 전체 적자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지만 북미와 일본은 각각 4.8%, 18% 성장하며 새로운 성장축으로 떠올랐다.

회사는 이 사장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그는 키엘·입생로랑 같은 고가 브랜드부터 메디힐·AHC 등 대중 브랜드까지 육성한 경험이 있으며 AHC의 BI를 재정립해 젊은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은 LG생건의 ‘힌스’ ‘글린트’ 등 색조 브랜드 강화와 MZ세대를 대상으로 한 신규 브랜드 발굴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 로레알USA 본사와 엘앤피코스메틱 미국법인에서 쌓은 글로벌 경험은 북미를 비롯한 해외 시장 다변화와 현지화 전략 추진에서 강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평가된다.
뷰티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대표는 30년 가까이 화장품 사업에 몸담아와 브랜드 운영의 전문성뿐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글로벌 전략 측면에서도 기여할 수 있다”며 “외부 인사가 긴급 투입된 만큼 총체적인 체질개선에 어떻게 나설지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예상보다 빠르게 교체된 만큼 단기간 내 가시적인 성과로 실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도 적지 않다. 2021년 대표이사에 오른 이정애 사장은 지난 18년간 회사를 이끌던 차석용 부회장의 뒤를 이어 최초의 여성 대표이사로 주목받았지만 뷰티사업이 부진한 가운데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조기 퇴진하게 됐다.
LG생건 관계자는 이 사장을 영입한 배경에 대해 “로레알 출신으로 다양한 브랜드 마케팅 및 사업경험에서 비롯된 탁월한 마케팅 감각을 바탕으로 화장품 사업의 ‘스텝업’을 이끌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