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태광산업
사진 제공=태광산업

 

태광산업이 스페셜티 소재 강화와 함께 K뷰티·부동산·에너지로의 진출을 포함한 새로운 성장 전략을 내놓았다. 본업 재편과 신사업 병행을 통해 체질을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2조원이 넘는 현금을 쥐고도 자사주를 담보로 교환사채(EB) 발행을 추진했던 전력이 겹치며 시장에서는 이번 전략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화장품·부동산·에너지' 체질개선 신호탄

30일 주주서한에 따르면 태광산업은 원자재 가격 불안과 중국 증설, 글로벌 경기 둔화로 3년째 영업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는 상반기만 약 160억원 손실을 냈다. 이에 면방공장 철수, 저융점 섬유사업 정리, 중국 스판덱스 공장 가동 중단 등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태광산업은 이를 기반으로 아라미드·모다크릴·시안화나트륨(NaCN) 등 고부가 스페셜티 소재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현장 실행력을 강화하기 위해 석유화학·섬유 전문가 이부 총괄을 전면에 세웠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신사업 확장이다. 앞서 태광산업은 애경산업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확보하며 화장품 시장 진입을 예고했다. 통상적인 재무투자가 아니라 장기적 확장의 출발점으로 규정하고 화장품 제품 개발생산(OEM·ODM)에서 원료·부자재, 유통·플랫폼에 이르는 밸류체인 전반을 고려한 로드맵을 담았다. 이를 위해 신설한 미래사업추진실은 정인철 부사장을 영입해 전략과 실행을 전담하도록 했다

신성장 포트폴리오는 부동산 개발·운영으로 이어진다. 태광산업은 올해 초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남대문 호텔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서울 도심 핵심 입지와 글로벌 브랜드의 신뢰도를 결합해 안정적인 투숙 수요를 기반으로 꾸준한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단순 자산 보유를 넘어 호텔·리조트 개발과 운영, 상업용 부동산 투자까지 사업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에너지 사업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제조업 특성상 전력비용 비중이 큰 만큼 단순 자가소비를 넘어 발전·판매까지 아우르는 에너지 사업자 전환을 추진한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참여와 석유화학 단지 연계 열병합발전을 통해 비용 절감과 안정적 현금흐름을 동시에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이는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과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글로벌 규제 변화에 대응하면서 본업의 경기 변동 리스크를 보완하는 새로운 성장 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자료=태광산업 IR북
/자료=태광산업 IR북

 

이 같은 변화는 내달 1일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에서 제도적 기반을 얻게 된다. 태광산업은 정관에 화장품·부동산·에너지 등 신사업 항목을 새로 담아 사업 확장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이부 사업총괄을 이사회에 합류시켜 재편과 신사업 추진을 이사회 차원에서 정례화할 계획이다. 임시주총은 태광산업이 선언한 체질 전환을 실제 경영 시스템 속에 끌어들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든든한 곳간에도 EB? "불필요한 오해 안타깝다"

주목할 대목은 재무 여력이다. 태광산업은 올 6월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 5039억원, 단기금융상품 8182억원, 당기손익-공정가치 금융자산 8497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2조원이 넘는 유동성 자산을 확보한 셈이다.

그럼에도 태광산업은 애경산업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주식 총수의 24.41%에 달하는 자사주 전량을 담보로 EB 발행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지분 희석과 기업가치 훼손을 우려한 주주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었고 결국 절차는 중단됐다. 일부 주주들이 법원에 제기한 가처분 신청은 "경영판단의 영역"이라는 이유로 기각됐지만 시장 신뢰를 온전히 회복하지는 못한 상태다.

시장은 이 점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 정도 현금을 보유한 회사가 왜 굳이 EB 발행을 추진했는가'라는 것이다. 신사업 전략이 진정한 성장 로드맵이라기보다는 EB 발행을 합리화하기 위한 명분으로 활용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부에서는 태광산업의 이 같은 행보는 최근 상법 개정 움직임과도 맞닿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기업은 자사주를 매입한 뒤 소각하도록 압박을 받게 되고 이는 곧 자기자본을 직접 줄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태광산업 입장에서는 현금을 들여 자사주를 소각하기보다는 보유 자사주를 활용해 EB를 발행하고 이를 신사업 투자 재원으로 돌리는 방식이 더 유리한 선택일 수 있다. 신사업 전략이 단순한 투자 확장 차원을 넘어 제도 변화에 대응한 재무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유태호 태광산업 대표이사는 "대외적으로 불필요한 오해가 발생한 데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이라며 "향후 이해관계자의 의견과 급변하는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회사와 주주 이익을 위한 최선의 방안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