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 CI / 사진 제공 = 공정거래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CI / 사진 제공 = 공정거래위원회

유통업체의 정산 주기 단축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납품사의 원활한 자금 회전을 돕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유동성 부담에 따른 유통사의 매입량 감소로 결국 생태계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유통사 대금 지급 기한을 단축하는 방안을 연내 추진한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은 지난달 소상공인연합회에서 열린 유통 분야 납품업계 간담회에서 “현행 대규모유통업법이 규정하는 지급 기한이 지나치게 길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며 “납품업체들이 더 신속하게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대금 지급기한 단축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현행법은 특약매입의 경우 판매마감일부터 40일 이내, 직매입의 경우 상품수령일로부터 60일 이내에 대규모 유통업자가 납품업자에게 대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기간이 과도하게 길어 소상공인들이 자금 압박에 시달린다는 게 공정위의 입장이다.

지난해 티메프에 이어 올해 3월 홈플러스 사태 당시 판매자들이 대금을 제때 받지 못해 피해 규모가 커진 것도 긴 정산 주기가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에 올해 초부터 공정위는 온·오프라인 전반에 걸쳐 대금 정산 기한과 관련한 전수 조사를 진행해 왔다. 22대 국회에서도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같은 당 오세희, 임미애 의원 등이 직매입·특약매입 대금 지급 기한을 대폭 줄이는 내용의 대규모 유통업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한 상태다.

우려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정산 주기의 급격한 단축은 유통사의 자금 압박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재고·판촉 등에서 공급사와 책임을 나누는 특약매입과 달리 재고 부담을 온전히 유통사가 떠안는 직매입의 경우 안정적으로 판매하는 상품 위주로만 매입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이는 장기적으로 유통 산업에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유통 플랫폼은 매입한 상품을 판매하고 정산 전까지 대금을 마케팅 등 판촉 활동에 활용한다. 자금 회전이 촉박해지면 그만큼 운영에도 불리해 판매 부진으로 인한 연쇄적인 자금 경색으로 번질 수 있다. 신상품 출시 역시 꺼리게 돼 영세업자로선 판로 확장에 불리하다는 설명이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산 주기 단축으로 유통업체들이 매입량을 줄이면 피해는 판매자(납품사)들에게 전가된다”며 “플랫폼 입장에선 자금 흐름 부담으로 신규 업체에 접근하는 데에도 제한을 받는다”고 말했다.

대규모 유통업법을 개정할 경우 이와 비슷한 취지로 마련한 법률 역시 연쇄 개정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는 홈플러스 사태 등으로 유통업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같은 이유라면 하도급법 등에서 정한 정산 기한도 단축하는 게 맞다는 이유에서다. 현행 하도급법은 목적물 등의 수령일로부터 60일 이내에 대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1·2차 벤더 등 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산업 구조로 개선에 어려움이 뒤따른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유통사의 대금 지급 기한을 줄이는 것이 납품사를 보호하는 결과로 이어질지 미지수”라며 “형평성을 맞추려면 유사한 법령 전반을 손봐야 하지만, 이 경우 단순히 최종 판매자와 납품사로 이분화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어 제도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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