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이피알의 매출원가율이 20%대 중반에 그치며 국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100대 상장사들 중 두 번째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건 가격 중 원가에 들인 돈이 4분의1도 안 된다는 뜻으로, 에이피알이 눈부신 실적을 거두며 K-뷰티의 새로운 대장주로 등극할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
오히려 광고와 판매자에 대한 인센티브 등 마케팅에 쏟아붓는 비용이 더 많은 데다, 남의 손을 빌려 제품을 만든 후 이름표만 붙여 파는 방식을 고수하는 등 최근 각광을 받는 국내 화장품 업체들의 이면을 살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반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 에이피알의 매출원가율은 24.1%에 그쳤다. 금융사와 서비스 업체 등 비제조사를 제외하고, 지난달 말 기준 코스피 시총 상위 100개 상장사들 중 신약 개발사인 SK바이오팜 다음으로 낮은 값이다.
이는 1만원짜리 제품을 만들어 파는데 들어가는 원가가 2410원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매출원가율은 이름 그대로 매출에서 원가가 차지하는 비율로, 이 수치가 낮을수록 기업으로서는 이익을 내기 용이해진다.
에이피알의 매출원가율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떨어지는 추세다.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흐름을 보면 △2020년 26.6% △2021년 27.6% △2022년 26.7% △2023년 24.5% △2024년 24.8% 등을 기록했다.
이처럼 원가가 제한되다 보니 최종 성적은 더욱 눈부실 수밖에 없었다. 에이피알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139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9.3%나 늘었다. 당기순이익 역시 1163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141.3%나 증가했다. 매출이 5938억원으로 95.1% 늘어난 데 비하면 훨씬 높은 증가율이다.
이대로라면 올해 사상 처음으로 연 매출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에 힘입어 영업이익과 순이익도 신기록을 경신할 전망이다. 에이피알의 매출은 △2020년 2199억원 △2021년 2591억원 △2022년 3977억원 △2023년 5238억원 △2024년 7288억원으로 이 기간 동안만 세 배 넘게 불었다.
결국 에이피알은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을 제치고 코스피 상장 화장품 업체 중 대장주로 올라섰다. 에이피알의 지난달 말 기준 시가총액은 8조4968억원으로,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354.0% 급증했다. 같은 시점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시총은 각각 7조1946억원, 4조5219억원을 나타냈다.
이로써 에이피알은 K-뷰티 대표 기업이란 상징성도 갖게 됐다. 에이피알은 화장품을 중심으로 성장하며 국내는 물론 글로벌에서도 입지를 다지고 있다. 2014년 에이프릴스킨으로 시작해 △메디큐브 △포맨트 △엔디와이 △글램디바이오 등 다양한 브랜드를 히트시켰다.
다만 마케팅에 기댄 브랜드 성장 전략은 에이피알뿐 아니라 최근 K-뷰티 기업들을 둘러싼 논란거리다. 유명 연예인을 과감하게 모델로 내세워 한류 열풍에 올라타 빠르게 인지도를 쌓고, 이후 저원가 고마진 상품을 팔아 실적을 키우는 방식이 업계의 전형처럼 자리 잡고 있어서다.
에이피알만 해도 올해 상반기 광고선전비로만 993억원을 썼다. 또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등 물건을 팔아준 이들에게 인센티브로 지급한 판매수수료도 831억원이나 됐다. 이렇게 쓴 돈만 1824억원으로, 같은 기간 매출원가 1431억원을 400억원 가까이 웃돌았다.
자체 생산 시설 없이 외주로 상품을 떼오는 방식도 이런 화장품 업체들의 공통점이다. 겉으로 보이는 브랜드와 달리 실제로 화장품을 만드는 회사는 따로 있다는 얘기다. 에이피알 역시 모든 화장품을 외주가공 형태로 생산 중이다. 코스맥스와 노디너리, 한국화장품제조 등이 주요 외주 업체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최근 한류와 맞물려 다양한 국내 인디 화장품 기업들의 기업 가치가 치솟고 있지만, 사실상 마케팅 효과에 의존한 경우가 많아"며 "결국 스스로 개발과 생산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단기간 거품에 그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