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기존의 '공급자' 중심 금융에서 벗어나 '소비자·서민 중심 금융'으로 대전환을 선언했다. 금융소비자가 정책의 수혜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정책을 평가하는 주체가 되도록 구조적 틀을 바꾸고, 보이스피싱 피해에 대해 금융회사의 무과실 책임을 도입하는 등 금융정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15일 이 위원장은 서울 중구 서민금융진흥원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금융소비자의 목소리를 듣는 간담회를 열었다.
가장 주목받는 대책은 '금융소비자 정책평가위원회' 신설이다. 위원회는 금융위원장이 위원장을 맡고 민간위원과 관계부처 등 15명 내외로 구성된다. 금융위와 금감원의 정책·감독 업무 전반을 점검하고 평가한다.
특히 민간위원만으로 구성된 독립적인 평가소위원회를 별도로 설치해 매년 정책을 평가해 투명하게 공개할 계획이다.
이 위원장은 "금융내부의 목소리를 우선 듣고 보는 익숙한 시각과 행태에서 벗어나 소비자와 취약계층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반영하겠다"며 연내 위원회를 구성해 내년부터 본격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소비자 피해에 대한 사전 예방과 신속한 사후 구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된다. 소액 금융분쟁 사건에 대해 '편면적 구속력' 도입을 추진한다. 편면적 구속력은 소액 금융분쟁사건에서 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을 소비자가 수락할 경우 금융회사가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제도다.
또 자본시장 불공정거래나 금융상품 불완전 판매에 따른 피해자들을 효과적으로 구제하기 위해 미국 등에서 운영 중인 '페어펀드(Fair Fund)' 제도를 한국 실정에 맞게 도입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등으로 부채 부담이 커진 서민·취약계층에 대한 금융지원도 대폭 강화된다. 1일 출범한 '새도약기금'을 통해 상환 능력을 잃은 이들의 재기를 지원하는 한편, 재정과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서민금융안정기금'을 조속히 설치해 정책서민금융상품의 금리 부담을 낮추고 공급 규모를 확대할 방침이다.
아울러 비금융정보를 활용한 대안 신용평가체계와 서민특화 신용평가모델(CSS)을 고도화해 금융 약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연체채권의 반복적 매각이나 기계적인 소멸시효 연장 관행에 대해서도 종합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보이스피싱, 불법 사금융 등 민생을 침해하는 금융범죄에도 더욱 엄정하게 대응할 방침이다. 가장 큰 변화는 보이스피싱 피해에 대해 금융회사의 '무과실 책임' 도입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는 금융회사가 피해 예방을 위한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도록 유도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로 수사당국·지자체와 협력해 불법 추심과 불법 사금융을 근절하기 위한 종합 방안을 연내 마련할 계획이다.
간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다양한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이정민 금융소비자보호재단 팀장은 "금융회사의 경영 전반에서 금융소비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사모펀드·홍콩 주가연계증권(ELS) 등 불완전 판매가 재발하지 않도록 경영방침과 성과보상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소비자 보호와 서민금융 지원은 정부, 금융회사, 전문가, 소비자가 모두 함께 노력할 때 달성 가능하다"며 "국민이 실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적 성과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