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기업 등의 '수도권 쏠림'을 완화할 기조로 지방을 겨냥한 정책금융 공급에 주력한다. 주요 정책금융기관의 지방 자금 공급 비중을 40%에서 45%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핵심으로, 2028년 기준 연간 자금공급 규모는 현재 대비 25조원 늘어난다.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한 큰 그림이지만 금융권 현장에서는 '경고음'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얼마나 투입하느냐보다 '어떻게' 투입하느냐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방 공급 비중을 의무화하면 금융기관은 건전한 심사보다 목표 달성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대출 심사 과정에서 위험도가 낮은 기업보다 지방이라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에 자금을 먼저 배정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지적된다. 복수의 은행권 관계자는 "결국 금융의 원칙은 쇠퇴하고, 정책의 명분만 앞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대규모 정책금융의 부작용은 과거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의 특정 재벌에 대한 무리한 자금 지원 방침은 금융기관의 부실을 키웠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역시 무분별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확대가 현재까지 대규모 부실로 이어지고 있다. 공통점은 정책적 목표가 건전성 관리보다 앞섰다는 점이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 하는 지방 우대 금융도 경계해야 하는 대목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정부가 내세운 우대금리 인센티브만으로는 수도권으로 향할 기업과 인구의 흐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신용도가 낮은 기업에 저금리로 대출을 늘리는 구조는 정책금융 기관의 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금의 방향이 잘못 설정되면 아무리 좋은 명분의 정책이라도 성장보다 부실을 키운다.
이런 방식은 일본이 앞서 겪은 '지방창생' 정책의 실패를 떠올리게 한다. 일본은 1990년대 이후 매년 막대한 자금을 지방에 투입했지만, 지역의 자생력은 되레 약화됐다. 중앙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산업은 쇠퇴하고 인구는 더 빠르게 줄었다. 정부는 돈을 쏟아부었지만 결코 지방은 살아나지 못한 셈이다.
반면 일본의 일부 성공 사례는 우리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것이다. 유후인 지역의 체류형 여행 문화가 조성됐거나 도쿠시마현 가미야마 마을의 디지털 노마드 유치 사례처럼 지역이 스스로 특색을 찾아 산업을 재설계하도록 국가가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준 것이 대표적이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균형발전 정책이 상당수 실패한 이유는 자금을 모든 지역에 균등하게 나누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수요나 효율을 고려하지 않은 인프라 사업이 반복되며, 공항과 산업단지 같은 시설이 수요 없는 곳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들 정책의 종착점은 '균형적 쇠퇴'였다.
단순히 비수도권 자금 공급 비중을 목표치로 설정하는 것만으로는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담보하기 어렵다. 구조적 개혁이 없는 단순한 대거 자금의 투입은 지역의 자생력만 약화시킬 수 있다. 경기 화성시가 양질의 기업 유치로 20여 년간 인구가 5배 증가한 것처럼, 산업기반과 정주여건이 갖춰진 거점도시를 집중 육성하는 전략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무엇보다 지방은행의 부실채권(NPL) 규모가 2조원을 넘어선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인위적인 대출 확대는 위험요인만 키울 뿐, 금융의 원칙이 흔들리면 금융 시스템의 부실 가능성은 커진다.
결국 중요한 건 정책금융의 '양'이 아닌 '방향'이다. 25조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이 미래 부실의 씨앗이 될지, 지방 경제의 마중물이 될지는 지금의 설계 방식에 달려 있다. 자금 공급만 강제하기보다 지방에서 자생적으로 투자와 고용을 창출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기반이 닦이기를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