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잊고 있던 무료 웹메일 서비스에 오랜만에 접속한 김 아무개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몇 년동안 쌓아둔 e메일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당황한 김 씨는 웹메일 서비스업체에 따졌지만 소용없었다. 약관에 따라 일정 기간동안 접속하지 않은 회원의 e메일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서비스업체는 한술 더 떠서, 지워진 e메일을 복구하려면 돈을 내라고 했다. 이 경우, 당신이 김 씨라면 어떡하겠는가.

영화에서나 봄직한 이런 일이 미국에서 실제로 벌어져 관심을 끈다. 미국 라이코스가 이용자의 e메일을 무단으로 삭제한 뒤 이를 복구하는 대가로 돈을 요구했다는 주장이 한 블로거로부터 나온 것이다. 

idaho-hum.com이란 블로그를 운영하는 갤럼픽스(Galumphix)란 블로거는 2월1일자로 올린 '라이코스 엿먹어라: 그들은 내 e메일을 붙잡고 19.95달러의 몸값을 요구했고, 그런 다음 e메일을 지워버렸다'란 글에서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하소연했다. 그의 사연을 요약하면 이렇다.

갤럼픽스는 2000년부터 라이코스 e메일 서비스를 이용해오고 있었다. 최근 1~2년 새 라이코스 e메일로 스팸메일이 쏟아지자, 그는 다른 e메일 서비스로 갈아탔다. 그러던 어느날, 오랜만에 자신의 라이코스 계정으로 접속한 그는 자신이 보관해 온 e메일들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서비스 기술지원팀에 문의한 그에게 돌아온 건 다음과 같은 황당한 답변이었다. "[…] 이전 e메일들을 복구하려면 '라이코스 메일 플러스'로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 요금은 19.95달러이며, 협상의 여지는 없습니다."

당황한 그는 "당신네 약관을 읽어봤지만, 그런 조항은 없었다"고 반박했지만, "라이코스 베이직 메일의 경우 적어도 30일동안 한 번도 로그인하지 않으면 e메일을 삭제할 수 있다고 약관에 적혀있다"는 싸늘한 답변만 돌아왔다. 라이코스는 베이직·계정보존·플러스 등 3가지 e메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베이직 서비스는 무료로, 계정보존과 플러스는 각각 1년에 5.95달러·19.95달러에 유료로 서비스 중이다.

그는 다시 "해당 조항이 명확치 않다"고 따졌다. e메일을 통한 공방이 몇 차례 더 오갔고, 둘의 감정은 점차 격해졌다. 그가 "당신의 매니저와 얘기하게 해달라"고 요구하자, 라이코스 담당자는 "당신의 e메일은 이제 완전히 삭제됐으며, 아무리 많은 돈을 내더라도 복구할 수 없을 것"이란 말을 끝으로 연락을 끊었다. 그게 끝이었다.

글이 올라오자마자 해당 블로그에는 입소문을 타고 들어온 방문객들로 하루종일 들썩였다. 라이코스 담당자의 무성의한 태도에 분통을 터뜨리는 덧글이 순식간에 쌓였다. "라이코스가 최근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면서 액티브X를 의무 설치하도록 했고, 심지어는 텍스트로 e메일을 회신할 때도 액티브X 컨트롤을 깔아야 한다"(아이디 : fareastsuite)처럼 라이코스 e메일 서비스의 불편함을 성토하는 글도 눈에 띈다. 다른 한편으로 "약관에 고지하고 운영정책에 따라 처리한 게 무슨 문제냐"며 "무료 e메일을 쓰면서 제대로 계정을 관리하지 않은 이용자의 잘못"이라는 의견도 곳곳에 보인다. 

이번 일이 한 블로거의 '운수 나쁜 날'로 잊혀질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번 사태는 무료 웹메일 서비스업체와 이용자간 권리를 어느 선까지 인정할 것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무료 웹메일 서비스업체더러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이용자까지 모두 끌어안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렇지만 사전 예고절차도 없이 이용자 계정 뿐 아니라 보관해둔 e메일까지 무단 삭제한 뒤, 복구를 미끼로 유료서비스를 강요한다면 사실상 갈취나 다름없다. 이는 서비스 유료화와는 또 다른 문제다. 

국내에서 다음이나 네이버, 네이트가 이렇게 나온다면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한 달에 한 번 이상 로그인하지 않을 경우 당신의 e메일을 무단으로 지워버리겠소. 그게 싫다면 1년에 2만원을 내시오. 협상의 여지는 없소. 사전공지? 그런 건 없소."

라이코스 웹메일 서비스
▲ 라이코스 웹메일 서비스

▲라이코스 웹메일 서비스 화면. 무료로 제공되는 '베이직' 서비스와 1년에 5.95·19.95달러를 내야 하는 '계정보존', '플러스' 서비스로 나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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