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의 미국 내 수입금지 여부를 결정할 시한이 7일 앞으로 다가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오는 11일(현지시간)까지 국제무역위원회(ITC)의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내 수입금지 결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ITC의 판결에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SK이노베이션은 미국 공장 건설을 일정대로 추진할 수 있게 된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이 ITC 판결을 인용할 경우 SK이노베이션은 2023년부터 10년 동안 미국에서 배터리를 만들 수 없게 된다.

SK이노베이션에 있어 이번 한 주는 사실상 미국 시장의 앞날을 결정할 '운명의 한 주'인 셈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전기차 시장이다.

시장은 50 대 50의 확률로 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지 안 할지 섣불리 확신할 수 없다는 의미다.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내용의 판결이 나온 만큼 업계에서는 '기업 윤리' 관점에서 ITC 판결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미국의 국익과 미국 기업의 '바잉 파워'와 연관지어 보면 바이든 대통령이 기업 윤리보다 국익적 관점에 손을 들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에서 생산된 배터리와 전기차를 '미국인'이 살 수 있도록 ITC 판결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블로터>는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따라 변화될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전략과 협상 전략을 살펴봤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백악관 홈페이지 갈무리)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백악관 홈페이지 갈무리)

'원칙은 원칙, ITC 최종 판결 유지'...'SK이노 미국 2공장 건설 중단, 델라웨어 보상금 인하에 '올인'

바이든 대통령이 ITC 판결을 인정한다면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미국 ITC의 판결이 유지된다면 바이든 대통령이 ITC 판정에 대한 권위를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ITC는 미국 대통령 직속의 준사법기관이다.

둘째, ITC 판결을 거부한 데 따른 정치적 책임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업의 지적 재산권과 영업비밀이 중요해지면서 유사 소송도 늘어나는 추세다. ITC의 활동 근거는 미국 관세법(2부)과 연방법령집(제 19편 2장)이다.

▲ 미국 ITC 위원. 왼쪽부터 제이슨 커어슨 의장, 랜돌프 스타인 부의장, 데이빗 요한슨 위원, 론다 슈미들린 위원, 에이미 카펠 위원(사진=ITC)
▲ 미국 ITC 위원. 왼쪽부터 제이슨 커어슨 의장, 랜돌프 스타인 부의장, 데이빗 요한슨 위원, 론다 슈미들린 위원, 에이미 카펠 위원(사진=ITC)

ITC는 지적재산권과 영업비밀 외에 각국의 무역분쟁과 수입규제 조치도 다룬다. ITC의 활동 영역이 포괄적인 만큼 대통령이 직속 기구의 판결에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자기모순'에 빠질 수 있다. WTO(국제무역기구)가 1995년 설립된 이래 미국 대통령이 ITC 판결에 거부권을 행사한 건 한차례(2013년 애플의 삼성전자 특허침해) 뿐이다.

미국 ITC 판결의 효력이 발생할 경우 SK이노베이션은 2023년부터 미국 역내로 배터리 물자를 들여올 수 없다. 배터리는 △리튬 △망간 △니켈 △코발트 등 해외 각국에서 원료를 수입한 후 양극재와 음극재 소재를 만든 후 조립한다. 관련 물자를 수입하지 않고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다. ITC 판결의 효력이 발생하면 SK이노베이션은 생산활동이 사실상 금지되는 셈이다.

미국 대통령이 ITC 판결을 인용하면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2공장의 준공을 무기한 연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이 조지아주에 건설한 1공장은 시험가동 중에 있다. 2공장은 이미 첫 삽을 떴고, 7월부터 건설이 시작된다. 당초 2023년 완공 예정이었는데, SK이노베이션은 생산활동을 할 수 없는 만큼 2공장 준공을 무기한 연기할 것으로 보인다.

2공장 준공이 재개된다면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 합의 이후가 될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4월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영업비밀 침해소송을 제기했다. 통상 연방지방법원의 판결은 ITC 결정을 따르게 돼 있는 만큼 양측은 피해 보상금 규모를 두고 각축전을 벌일 전망이다. 더 많이 받아내려는 LG에너지솔루션과 조금이라도 덜 내려는 SK이노베이션이 줄다리기를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내 '여론전'도 이어진다. SK이노베이션은 ITC 판결이 유지될 경우 미국에서 유럽으로 공장을 옮기겠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미국 내에서 배터리 생산을 하지 않겠다는 설명이다.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시장 유지 여부는 '셈법'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현재 폭스바겐이 2030년까지 배터리를 직접 생산하겠다고 밝힌 만큼 SK이노베이션은 폭스바겐 미국공장을 대체할 납품처를 찾아야 한다. 현재 폭스바겐을 대체할 가장 큰 '바이어'는 현대자동차다. 현대차는 점유율 기준 글로벌 4위의 업체다. 미국은 포드, 토요타 등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가 각축전을 벌이는 시장인 만큼 얼마나 많은 납품처를 찾을 수 있느냐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의 결정이 달라진다.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SK이노베이션은 이전보다 치열하게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는 셈이다. 미국 시장에서 합의금보다 큰 매출을 낼 수 없다면 유럽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것도 대안일 수 있다.

'美 중산층 일자리가 중요, ITC 판결 효력 상실' LG엔솔 글로벌 소송전 확대, SK이노 협상력 제고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이유는 크게 세가지다. 첫째, 미국 조지아주의 '좋은 일자리'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의 미국 1·2공장은 약 3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직접 창출하는 일자리 외에도 협력업체와 인근 상권에서 채용이 발생한다.

조지아주는 미국 '목화의 땅(georgia land of cotton)'으로 불린 남부의 대표적인 농업지역이다. 하지만 방직 산업이 쇠태하면서 지역 경제가 쇠락했다. 현재 조지아주의 '좋은 생산직 일자리'는 기아자동차가 제공했다. 기아차의 직접 고용인원은 약 1만5000명이다. SK이노베이션이 조지아주에 약 3조원을 투자하기로 하면서 현지에 경기 회복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둘째, 미국 조지아주는 노스캐롤라이나주와 함께 바이든 대통령에게 '대권'을 안겨준 주(state)이다. 조지아주에서 세차례 재검표를 한 끝에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됐다. 조지아주는 전통적으로 민주당(Democratic)이 약세인 주였다. 민주당 대선후보가 조지아주에서 승리한 건 1992년 이후 처음이다.

셋째, 미국의 '넷-제로' 정책과 미국 기업의 '바잉파워'로 인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전혀 없게 하는 넷 제로를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모빌리티(이동수단)와 각종 에너지원을 화석연료에서 탈피해 친환경 에너지 및 재생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현재 미국 내 배터리 생산기지를 갖고 있는 주요 업체는 LG에너지솔루션과 CATL 뿐이다. SK이노베이션과 테슬라는 생산기지를 짓고 있다.

▲ 미국 내 배터리 생산기지.(자료=Benchmark Minerals Agency)
▲ 미국 내 배터리 생산기지.(자료=Benchmark Minerals Agency)

바이든 대통령이 '넷 제로 및 연관 산업의 밸류체인'을 고려한다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게 이득이라는 견해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반도체 공급부족으로 미국 내에서 안정적인 밸류체인을 구축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이는 SK이노베이션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ITC의 판결이 특허가 아닌 영업비밀인 만큼 거부권 행사로 인한 정치적 부담도 적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LG에너지솔루션은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델라웨어주를 비롯해 해외에서도 소송전을 제기할 전망이다. 현재 글로벌 배터리 생산기지는 유럽과 중국, 미국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외의 국가에서도 영업비밀 침해소송을 제기해, 생산 금지 수준의 판결을 이끌어 낼 가능성이 크다.

유럽과 중국 등의 국가가 이번 사안을 어떻게 다룰지는 변수도 많다. SK이노베이션이 ITC에서 패한 결정적 요인은 증거 인멸 때문이다. ITC는 최종판결문을 통해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11가지 영업비밀을 침해한 내용을 언급하면서도 핵심 사유는 '증거 인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ITC는 최종판결문을 통해 "SK가 숨기려했던 증거들에 미루어 볼 때 불공정수입조사국(OUII)의 조사는 타당하고, 본 위원회는 OUII의 조사에 의견을 같이 한다(there is more than a plasuible suggestion that the evidence destroyed related to that misappropriation, which SK sought to hide. The Commission agrees with adopts OUII's analysis)"고 판결했다. 즉 불공정수입조사국은 '영업비밀'에, ITC는 '증거 인멸'에 무게를 실은 것으로 보인다. 

▲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왼쪽)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사진=각사)
▲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왼쪽)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사진=각사)

이 경우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갈등은 장기화될 '공산'이 크다. LG에너지솔루션은 약 10년 동안 R&D 투자를 통해 획득한 영업비밀이 침해됐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수조원 수준의 보상금 또는 로열티 지급이 마땅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회사의 경쟁력을 저해할 수준의 보상금은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가장 '급한 불'을 끈 만큼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 소송은 소송대로 대응하는 한편 협상은 협상대로 대응하는 방식의 '투 트랙'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은 높은 수준의 협상금을 얻을 '지렛대(미국 ITC 판결)'가 사라진 만큼 SK이노베이션의 협상력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가 변수였던 만큼 두 회사 모두 협상금 수준에 대한 인식이 상이했다"며 "11일 이후에는 양측이 현실적으로 판단한 협상금 규모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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