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수소기업 협의체 참여한 현대차, SK, 포스코, 효성 등 주요 그룹 오너들.(사진=포스코)
▲ 수소기업 협의체 참여한 현대차, SK, 포스코, 효성 등 주요 그룹 오너들.(사진=포스코)

효성그룹이 현대차그룹과 SK그룹, 포스코그룹 등 국내 대그룹이 참여하고 있는 '수소기업 협의체'에 참여했습니다. 재계 10위 기업의 총수 위주로 판을 짰는데, 재계 29위인 효성그룹이 참여하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현대차와 SK 등 수소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선정한 대그룹들은 수소 경제 활성화를 위해 머리를 맞대기로 했습니다. 이들은 국내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고, 수소 경제와 관련한 밸류체인을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할 계획입니다.

수소 경제의 핵심은 '값 비싼 친환경 에너지'인 수소를 싸게 생산해 운송과 발전 등 다양한 산업에서 쓰도록 하는 것입니다. 수소를 아무리 싸게 만들어도 수소 에너지를 쓸 곳이 없다면 무의미하죠. 수소 에너지의 수요처가 많아도 값이 비싸 쓰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입니다.

수소 경제는 수소 생산부터 저장, 활용까지 각 단계가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이룩할 수 있습니다. '규모의 경제'를 구축함에 있어 수소 인프라가 우선돼야 하죠. 이 때문에 수소 경제를 이끌 기업들이 직접 나서 협의체를 구성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효성그룹에게 '수소기업 협의체'는 어떤 의미이며, 어떤 기대를 걸 수 있을까요.

▲ 왼쪽부터 창업주인 조홍제 회장, 조석래 회장, 조현준 회장.(사진=효성그룹)
▲ 왼쪽부터 창업주인 조홍제 회장, 조석래 회장, 조현준 회장.(사진=효성그룹)

효성그룹은 삼성그룹과 견줄 정도로 역사가 오래됐습니다. 삼성그룹은 1938년, 효성그룹은 1942년 사업을 시작했죠. 창업주인 조홍제 회장은 1948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공동출자해 삼성물산을 설립했고, 부사장을 맡았습니다. 이후 1962년 삼성에서 독립한 후 효성물산을 설립했습니다.

스판덱스 세계 1위 효성그룹의 역사가 참 유구하죠. 하지만 효성그룹의 미래는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효성그룹의 주력 사업은 합성 섬유입니다. 방역 마스크와 레깅스에 효성티앤씨의 합성섬유인 스판덱스가 쓰입니다. 스판덱스는 섬유 산업의 반도체라고 불릴 정도로 쓰임이 다양합니다.

이외에도 효성중공업은 전압기 등 배전설비를 생산하고, 건설업도 영위합니다. 효성화학은 여타 화학산업의 기초소재를 만들죠.

그런데 이 포트폴리오가 효성그룹의 '미래'를 논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효성그룹의 주력 산업들은 전통산업(자동차, 에너지, 여타 제조업)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효성그룹의 스판덱스 제품은 2010년부터 꾸준히 글로벌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10년 후 더 우수한 소재가 나올 수 있고, 섬유시장의 트렌드 또한 바뀔 수 있습니다.

건설업 또한 부동산 시장 규제로 침체기에 빠졌고, 배전설비 또한 글로벌 인프라 시장이 둔화되면서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습니다.

▲ 효성그룹 매출 추이. 2018년 이후 실적은 지배구조 개편으로 인한 분할로 추정치임.(자료=금융감독원)
▲ 효성그룹 매출 추이. 2018년 이후 실적은 지배구조 개편으로 인한 분할로 추정치임.(자료=금융감독원)

2017년 효성그룹의 전체 매출은 약 12조원에 달했습니다.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은 약 15조원을 기록했습니다. 투자형 지주회사인 효성과 관계기업인 △효성티앤씨 △효성화학 △효성중공업 △효성첨단소재의 실적을 합산한 것입니다.

효성그룹이 지난 몇 년 동안 외형적으로 성장한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룹의 주력 회사인 효성티앤씨(스판덱스 등)와 효성중공업(변압기), 효성첨단소재(산업용 섬유)의 실적은 오히려 악화됐습니다.

▲ 효성티앤씨, 효성중공업 실적.(자료=금융감독원)
▲ 효성티앤씨, 효성중공업 실적.(자료=금융감독원)

효성티앤씨 매출은 지난해와 비교해 13.7%(8215억원) 줄었고, 영업이익은 17.4%(564억원) 줄었죠. 효성중공업 매출은 같은 기간 동안 21.0%(7975억원), 영업이익은 66.2%(862억원) 감소했습니다. 효성첨단소재 매출은 같은 기간 21.5%(6590억원), 영업이익은 78.3%(1241억원) 줄었습니다.

▲ 효성화학, 효성첨단소재 실적.(자료=금융감독원)
▲ 효성화학, 효성첨단소재 실적.(자료=금융감독원)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도 주력 사업이 부진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효성그룹이 안정적으로 성장하려면 주력 사업들이 외생변수에 가능한 한 덜 흔들려야 하죠.

게다가 효성그룹의 주력 제품들은 10년 후를 담보하기는 부족합니다. 산업계의 트렌드는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담보할 전기차와 배터리, 수소 산업으로 재편되고 있죠. 이 때문에 효성그룹은 제 2의 그룹 도약을 이끌 신성장 아이템이 필요해졌습니다.

이 때문에 효성그룹은 수소를 신성장 동력으로 정했습니다. 효성은 세계 최대 화학기업인 린데그룹과 함께 연산 1만3000톤의 액화수소 생산공장을 짓기로 했습니다. 2022년까지 3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효성첨단소재는 2028년까지 1조원을 투자해 2만4000톤의 탄소섬유를 생산할 계획입니다.

효성첨단소재가 생산한 탄소섬유는 수소 저장 탱크의 핵심 소재로 쓰입니다. 이미 효성그룹은 수소에너지 공급사슬의 한축을 맡고 있습니다.

▲ 탄소섬유를 감아만든 효성첨단소재의 고압용기.(사진=효성첨단소재)
▲ 탄소섬유를 감아만든 효성첨단소재의 고압용기.(사진=효성첨단소재)

탄소섬유는 철보다 4배 가볍고 10배 이상 단단합니다. 기체 상태인 수소를 액화하려면 기체 상태인 수소를 영하 253도로 냉각해야 합니다. 초저온 상태에서도 액화수소가 변성되지 않으려면 고압용기가 필요합니다. 또 효성그룹은 전국 30여곳에 액화수소 충전소를 건설할 계획입니다.

효성그룹의 '수소 플랜'이 성공할 경우 수소 생산부터 유통, 저장까지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구축하게 됩니다. '수소 경제'의 과실을 여타 대그룹과 함께 나눌 수 있는거죠.

딜로이트안진이 지난해 내놓은 '수소 경제의 본격화 시점, 결코 먼 미래가 아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 글로벌 수소 시장은 약 7000억 달러(781조원)으로 추산됩니다. 2050년 글로벌 에너지 수요의 7%를 수소 에너지가 맡게 될 전망입니다. 수소 수요는 운송용이 38%로 가장 많고, △산업용 37% △발전용 32% △빌딩용 7% 순입니다.


▲ 2050년 수소 수요량 전망치.(자료=딜로이트안진)
▲ 2050년 수소 수요량 전망치.(자료=딜로이트안진)

수소 경제는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전 세계는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넷제로(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하는 정책)'를 추진하고 있고, 화석연료의 비중은 빠르게 줄어들 전망입니다.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흔한 물질이지만, 상업용 에너지원으로 삼기에는 '산 넘어 산'입니다.

SK그룹과 현대차그룹, 포스코그룹 등은 '다가온 미래'에 대비해 협의체를 꾸렸고, 수소 상용화를 위해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효성그룹도 협의체에 함께하기로 했죠.

합성섬유로 성장한 효성그룹은 이제 섬유가 아닌 수소로 제 2의 도약을 노리고 있습니다. 효성그룹의 담대한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다음 편에서는 효성그룹의 수소 경제를 이끌 계열사들을 점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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