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개인용컴퓨터에 다운로드한 TV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텔레비전으로 재생할 수 있는 '애플TV' 판매를 시작했다. 애플코리아 웹사이트에서 31만9천원에 주문을 받고 있다. 애플의 전략은 그들이 제시하는 '아이튠즈(iTunes)를 TV로 즐기십시오'라는 스로건에 이미 녹아있다.

아이튠즈는 애플이 아이팟을 출시하면서 제공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이면서 동시에 온라인 음악 다운로드 서비스 이름이다. MP3 음악 시장을 장악한 아이팟은 오디오를 넘어 동영상 감상도 가능하다.
애플은 이렇게 구축한 영향력을 거실로까지 확장하려고 한다. 특히 음원 시장에서확보한 막강한 영향력을 영화와 TV 콘텐츠까지 확대하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애플은 MP3플레이어, 휴대폰, 셋톱박스, 홈서버와 같은 하드웨어에 아이튠즈라는 강력한 온라인 유료 서비스를 접목시키면서 그 영향력을 꾸준히 확장하고 있다. 콘텐츠 하나를 가지고 MP3, 휴대폰, PC, TV 시청이 가능하다면 소비자 입장에서 이보다 좋을 순 없지 않을까?.
국내로 눈을 돌려보자. 하나로텔레콤은 '하나TV'를 출시하면서 주문형비디오(VOD) 시장을 새롭게 개척하고 있다. 초기 가입자가 가파르게 상승하자 경쟁업체인 KT도 '메가패스TV'로 슬그머니 관련 시장에 발을 담갔다. 하나TV는 국내 영화와 TV 콘텐츠 비즈니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그동안 국내 콘텐츠 시장은 유료 다운로드 시장보다는 파일 공유 사이트를 통한 불법 유통이 대세를 이뤄왔는데 이런 시장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나TV는 다운로드형 VOD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끈다. 그동안 VOD 서비스가 중앙 서버에서 클라이언트에 일방적으로 쏘아주는 형태였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런 형태는 콘텐츠 유통을 모바일 기기로까지 확대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동통신 서비스가 사무실과 집 전화에 '이동성'이라는 날개를 달아주며 성장하고 있듯이, 하나로텔레콤은 하나TV를 통해 서비스하는 많은 콘텐츠를 휴대폰, PDA, 휴대용멀티미디어플레이어(PMP) 등 수많은 휴대용 단말기에 얹을 수 있는 기본 개념을 가지고 있다.
시기의 문제일 뿐 서비스의 확산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나로텔레콤은 셀렌TV라는 셋톱박스 업체를 인수했다. 하나로텔레콤은 하나TV를 위한 셋톱 지원에서 별도의 홈서버 제품군으로 확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놨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서비스 사업자로서 제휴 모델일 뿐 시장을 하나로텔레콤이 주도할 수 있는 모델이 아니다.
SK텔레콤이나 KTF 같은 회사들은 어떤가? 이 업체들은 이동통신 시장의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온라인 음원 시장도 '멜론'이나 '도시락'을 통해 장악했다. 두 회사는 이달부터 본격적인 화상통화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휴대폰에는 '상당한' 저장 공간이 없다. 내손안의 작은 PC라는 '스마트폰'을 출시해야 하지만, 별로 밀고 싶지 않은지 자신들이 인증하지 않는 소프트웨어는 애초에 설치되지 않도록 '락'을 걸어놨다.
KT는 메가패스TV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지난해 9월 다운로드 서비스인 토스트(www.toest.co.kr)를 오픈하고 영화, TV드라마, 애니메이션, 교육 등 1000여편의 콘텐츠를 제공한다. 초기 지원하던 2종의 단말기도 5종으로 늘렸다. 그렇지만 돌풍을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다.
애플이 하는 사업과 외견상으로 직접 비교할 만한 회사는 삼성전자다. MP3플레이어, PC, 셋톱박스, 홈서버, 거기에 휴대폰과 TV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 통신 사업자들은 서비스는 제공할 수 있지만 단말기나 셋톱박스, 홈서버 등 기반 제품이 없다. 그런데도 삼성전자가 콘텐츠 비즈니스에 그 어떤 이정표를 세운 바가 없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유무선 이동통신서비스의 인프라 구축이라는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분야에만 집중해 왔을 뿐 정작 그 위에서 제공될 수 있는 서비스 분야에 대해 외면해왔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삼성전자의 콘텐츠 비즈니스는 상당 부분 유무선 이동통신사와 직접적 연관이 있다. SK텔레콤 사용자보다 삼성전자 애니콜 사용자가 훨씬 많지만 음악 서비스 시장에 공격적으로 뛰어들지 못하는 것도 이른바 '갑'인 이동통신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란 점은 이해가된다. 홈서버 제공을 통한 가정 시장 공략 문제도 이와 엇비슷하다. 하지만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행보에서도 나타나듯이 이제 서비스와 연계되지 않는 하드웨어 비지니스는 갈수록 설 땅을 잃게 된다.
국내 업체들을 보고 있노라면 결정적인 뭔가가 하나씩은 빠져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이들이 과연 누굴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