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서브(www.nexerve.com) 오병기 사장을 아주 어렵게 만났다. 몇차례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매번 '딱지'를 맞았다. 진드기처럼 계속 매달린 덕분에 간신히 시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넥서브는 8년전부터 ASP(Application Service Provider) 사업을 전개해 온 대표적 회사다. 최근 '서비스로서의소프트웨어(SaaS)'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SaaS에 앞서 오래전부터 ASP라는 이름의 서비스가 존재했다. 국내에서 오병기 사장만큼 ASP(또는 SaaS)에 대해 많은 경험과 흐름을 알 수 있는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3가지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어서 오병기 사장을 만나고 싶었다. 국내외 IT 벤더들은 4~5년전부터 중견·중소기업(SMB) 시장 공략에 사활을 걸고 있다. 출발 때부터 중견기업 시장을 겨냥해 사업을 벌여왔던 전문가에게 국내 시장 상황을 정확히 듣고 싶었다.
또 넥서브는 8년전부터 ASP 사업을 해왔다. 그동안 기업 고객들은 필요한 솔루션을 직접 사서 구축해 왔는데, 그런 방식을 버리고 '월정액으로 응용프로그램을 빌려 쓰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다. 당시 기업 고객들이나 언론에서 '미래의 사업 모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 많던 ASP 업체는 거의 사라지고 넥서브만 혼자 살아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사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알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SaaS에 대한 전망과 미래 시장에 대한 오병기 사장의 시각이 궁금했다. 한 시간 반가량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많은 궁금증을 풀었다.
"지금의 변화는 단순히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만 국한돼 있지 않다. IT 분야를 이루는 3대 요소인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사람이 모두 결부된 변화다. 2000년 ASP라는 하나의 흐름이 우리곁에 다가왔다가 사라졌지만 그것은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신호에 불과했다. 이제 IT 전영역을 강타할 '쯔나미'가 바로 코 앞에 다가온 것 같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머리 싸매고 고민하고 있다."
오병기 사장은 거대한 쯔나미라는 표현을 썼다. 왜 그런 생각과 전망을 내놓는 것일까. 하나하나 풀어서 들어보자.
국내외 IT 벤더들이 SMB 시장을 공략하기에 여념이 없다. 파트너 정책도 바꾸고 지원책도 계속 쏟아내고 있다. 현장에서 본 SMB 시장은 어떤가?
대기업 시장은 영업할 필요가 없는 시장이니, 다들 SMB 시장을 공략하려는 것이다.(웃음) 대기업 시장은 정보화가 거의 포화 상태다. 큰 비중을 차지하긴 하지만 IT 투자 성장률이 3% 정도다. 대기업 고객을 담당할 직원은 한 두명이면 된다. 또 대기업들은 역시 대기업이자, 자사 계열사인 시스템통합(SI) 업체를 통해 정보화를 진행한다. 마케팅이고 영업이 필요없다.
이에 비해 중견기업들은 7% 정도의 IT 투자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당연히 집중할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중견기업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마케팅과 영업 방식들이 소개되고 수시로 시장 변화에 따라 대응하고 있다. 당연히 소리가 많이 나다보니 더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는 아주 이상한 구조로 정보화가 단행됐다. 대기업들은 알아서 정보화를 단행했고, 중소기업이나 영세 기업들은 정부가 정보화 지원책을 펴서 IT 시스템들을 도입하도록 도왔다. 정보통신부나 산업자원부가 그런 프로젝트들을 진행했다. 이론적으론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영세업자 순으로 정보화가 단행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중견기업들의 정보화가 가장 더디게 진행된 것이다.

중소기업들은 4만에서 22만개로 통계도 들쭉날쭉이다. 역시 큰 시장이였지만 IT 투자는 대략 3% 정도다. 또 정부의 지원으로 약 80%는 어떤 형태로든 정보화를 단행했다.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 고객들은 여전히 ERP 도입을 최우선시하고 있나?
여전히 ERP가 핵심이다. 소프트웨어를 필요로 하는 고객들의 요구 중 60% 정도가 여전히 ERP 분야다. CRM이 20% 정도이고, 그룹웨어나 공급망관리(SCM) 분야가 뒤를 잇는다.
중견기업들의 40% 정도가 ERP를 도입했다. 나머지 60%를 놓고 국내외 업체들이 경쟁하고 있다. 물론 중소기업 고객들도 새로운 고객군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은 정부 지원으로 정보화를 단행하면서 정보화의 '입맛을 본' 기업들 가운데 제대로 해보고 싶어하는 곳들이다.
ERP 구축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도 기업들이 관심을 갖는 이유다. 예전에는 유닉스 서버 기반에 ERP를 도입하려면 서버 가격만 2억원 가량이었다. 지금은 2000만원짜리 서버가 예전 서버보다 더 좋은 성능을 낸다. 고객들은 훨씬 유리한 조건에서 정보화를 단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RP구축하는 방법도 직접 소프트웨어를 사서 구축하는 방법부터 서비스 개념으로 빌려 사용하는 모델까지 다양해졌다.
대기업들이 자신들의 ERP 구축을 끝낸 후 협력사의 정보화를 지원하고 있는데, 이런 경향이 중견기업들의 정보화 수요를 촉진시키는 이유중에 하나다.
또, 중견중소기업들도 눈을 해외로 돌리고 있다.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곳들이 많다. 예전 같으면 현지에서 상당한 정보화 프로젝트를 진행했겠지만, 지금은 중앙센터에 정보시스템을 구축하면 인터넷을 통해 세계 어디에서든 이용이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중견기업들이 정보화에 눈을 돌리고 있다.
ASP 사업을 8년째 진행해 오고 있다. 상당히 빨리 시작했는데, ASP 사업에 대한 평이나 미래 전망이 궁금하다.
사업 시작 초기에는 ERP를 독자적으로 개발할 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ERP 시장에는 워낙 강력한 시장 지배자들이 있었고, 제대로 만들려고 하니 10년은 훨씬 넘게 개발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미 개발된, 경쟁력있는 제품을 들여다 이를 ASP 형태로 제공하기로 했다. 어느 제품을 도입할 까 고민하면서 국산 ERP 솔루션들도 검토했는데 당시에는 웹기반으로 안정성 있게 서비스할 수 있는 제품이 없었다. SAP 제품도 마찬가지였다. 남은 것은 오라클 제품뿐이었다. 당시 사업을 위해 미국까지 가서 오라클 임원과 담판을 지었다.

초기엔 정말 시행착오가 많았다. ASP 사업을 위해서는 각 나라별로 IDC 센터에 입주해야 하는 줄 알았다. 또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1000만원이 넘는 전용선을 고객사까지 구축하려고 했다. 이를 위해 아시아 ASP 얼라이언스도 만들고 중국, 한국, 싱가포르 쪽과 협의도 했다.
그러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데이터센터는 각 지역별로 필요하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모두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 국내 고객들 중 해외에 진출한 기업들은 현지 업무를 ASP를 이용해 처리하고 있다. 중국, 폴란드, 싱가포르 등 세계 각지에 위치해 있지만 본사는 한국에 있고, 센터도 한국에 있다.
ASP 사업자를 분류할 필요가 있다. 보통 3가지로 나눈다. 첫번째가 ASP 어그리게이터다. 인프라를 모두 대고 필요한 솔루션들을 그 위에 탑재해 서비스하는 곳이다. KT의 '비즈메카'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런 모델은 KT를 빼고 거의 망했다. 미국에도 대표적인 회사가 도산했다.
두번째는 우리(넥스브) 같은 순수 ASP 업체다. 데이터센터를 빌리고, 경쟁력 있는 소프트웨어를 구매한다. 하드웨어도 사고 컨설팅을 얹어서 고객사에 파는 것이다. 이런 회사들도 많이 망했다. 초기 시설 투자비가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기업 고객들이 쉽게 도입하지 않은 이유도 있다. 이런 곳들은 IBM이나 AT&T 같은 곳에 인수합병됐다.
마지막 부류는 최근 SaaS를 표방하고 나선 곳들이다. '웹 서비스 프로바이더'라고 통칭하면 될 것 같다. 광의의 ASP업체들인데 이들은 출발부터 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제품을 설계하고 운영을 준비했다.
이런 세 부류의 업체들이 각자의 강점을 살려 경쟁을 하겠지만 서비스 시장에 대한 전망은 일단 '양호'하다고 볼 수 있다.
ASP와 SaaS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SaaS는 호텔이라고 보면 된다. 각 호텔마다 방이 있고, 시설이 있다. 최고급 스위트룸도 있지만 일반룸도 있다.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 투숙하기만 하면 된다. 조금 바꾸고 싶다면 방 안의 시설 일부만 바꾼다. 이에 비해 ASP는 수많은 단독 빌라촌을 관리해주는 것이다. 각 고객마다 별도의 집이 있다. 이 때문에 고객에 필요한 시설과 서비스가 별도로 제공돼야 한다. SaaS는 동일한 하드웨어 박스에 나눠서 입주하지만 ASP는 고객사마다 별도의 하드웨어를 얹어야 한다.
이렇기 때문에 기본 설계가 다르다. 구글 메일이나 구글 앱스 같은 경우가 SaaS의 대표적인 예다. 이런 서비스는 짧은 기간에 개발해 서비스할 수 있지만 워낙 브랜드명과 마케팅 싸움이 관건이어서 몇몇 업체 위주로 재편될 것이다.
오라클이나 SAP, 마이크로소프트, IBM 같은 업체가 직접 서비스에 뛰어들고 있다. 자신들의 애플리케이션과 데이터베이스를 직접 서비스해주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런 업체들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생존할지 고민하고 있다.
대형 글로벌 기업들이 뛰어들면 넥서브 같은 작은 기업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나?
그거야 그 때 가봐야지 별 수 있나?(웃음).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부터 KT 비즈메카에서 오라클 ERP를 서비스하고 있는데 SaaS 형태로 보면 된다. 오라클 입장에서는 자사가 직접 서비스하려고 하지만 각 지역별로 직접 진출할지 아니면 파트너를 통해 라이선스를 판매하는 형태로 갈지 명확한 안이 세워져 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KT가 주도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서 KT가 진행하고 넥서브가 기술적으로 지원하는 형태가 될 것 같다.
또 우리 회사 자체적으로도 그룹웨어나 인사관리같은 것들은 SaaS 형태로 제공중이다. 다만 독자적으로 관련 서비스 영업을 하기보단 ERP를 도입한 고객들에게 얹어주는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그룹웨어나 인사관리는 모두가 사용해야 되는 부분이다.
또 세일즈포스닷컴의 한국 기술파트너가 우리다. 고객이 세일즈포스닷컴의 서비스를 받는다고 신청을 하면 우리가 가서 커스터마이징을 해준다. 컨설팅이라고 부르는데 그런 수요가 많다. 서비스 전문 업체로 생존했기에 그런 기회도 온 것 같다.
SaaS는 커스터마이징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아닌가?
그 부분이 잘못 전달된 부분 같다. 커스터마이징을 최소화하는 부분은 앞서 말한 그룹웨어나 인사 같은 분야다. 보편적인 서비스가 통하는 곳이다. ERP를 서비스하기 쉽지 않은 것도 엄청난 커스터마이징 때문이다. 최소화하긴 하지만 오래걸린다. 세일즈포스닷컴의 경우도 커스터마이징을 한다. 고객의 요구에 맞도록 인터페이스를 손을 보고 타 시스템과 연동을 해준다. 100% 커스터마이징한다고 보면 된다. CRM은 전 부서가 모두 사용하지 않는다. 구축하고 관리하는 비용을 따졌을 때 그냥 인터넷에 들어가 카드 결제로 사용하려는 사용자 라이선스만 구매하면 된다. 우리가 가서 커스터마이징 하면 한 달 안에 사용한다. 얼마나 편한가?
SaaS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실제 변화는 더딘 것 같다.
보통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동물들이 피한다. '쯔나미'를 생각해 보자. 지진이 일어났다고 바로 쯔나미가 오지 않는다. 약간의 시차가 존재한다. 90년대 후반부터 ASP가 소개됐는데 이제 그런 것들에 대해 고객들은 기술 검토를 모두 끝냈다. 시기의 문제일 뿐이고 서비스 주체들의 역량 문제다. 또 인프라 문제도 있다. 그런데 지금 어떤가? 하드웨어 가격은 엄청 떨어졌고, 광대역 네트워크 인프라가 전세계에 구축돼 있다.
혹자들은 국내가 ASP나 SaaS 하기에 최적의 모델이라고 하는데, 서비스 모델은 특정 국가에서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 세일즈포스닷컴은 미국에 데이터센터가 있지만 전세계 20만 고객사를 확보했다. 어느 나라나 인프라는 다 구축돼 있다. 서비스 모델은 한 국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것이다. 갑자기 폭발한 것이다. 이런 폭발이 소프트웨어에만 국한될 것으로 보는 것은 단견이다.
다른 영역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설명인가?
IT 영역에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이를 구현하는 '사람'이 3대 요소다. 단순히 소프트웨어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난 개인적으로 ASP나 SaaS라는 용어를 싫어한다. 모두 애플리케이션에 국한돼 있다. 차라리 IBM이 이야기한 '온 디맨드'가 훨씬 포괄적이다. 사용한 만큼 지불한다는 내용인데 그것은 IT 전영역에 걸쳐있다. '온 디맨드'라는 용어는 최근에 더 주목받고 있지만 이미 90년대 중반에 나왔다. 실례로 주문형비디오(Viedo on Demand)를 보라. 익숙한 용어 아닌가? 온 디맨드 앞에 무엇이 붙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다만 3대 요소 중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상당히 활발히 전개되겠지만 사람 문제가 남는다. 이것은 지극히 정치적이고 구조조정과 관련된 문제다. 최근 통합(콘솔리데이션) 이슈가 주목받고 있다. 분산된 자원들을 한 곳에 모두 모아놓고 관리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가면 온디맨드 환경도 가능하다. 문제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는 한 곳에 집중해 놓으면 되지만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지 마땅한 해법이 없다. 짜르면 된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는 문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을 뿐 '쯔나미'가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시장 측면에서는 상당히 낙관하고 있는 것 같다.
해외 진출한 기업들의 프로젝트는 백이면 백 서비스 모델로 간다. 고객들이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 검토도 다 끝냈다고 보면 된다. 도입 시기만 남았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