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정말 다르다. 소비자, 콘텐츠 생산자, 유통업자 모두가 공생 수 있는 합법적이고 개방형 플랫폼을 만들었다. 상당히 의미있는 일이다.”


이청기 e-한국방송(KBS) 대표이사 겸 콘텐트 전략팀 팀장은 단팥(www.danpod.com)이라는 팟캐스팅과 콘텐츠 다운로드 서비스 플랫폼을 선보인 자리에서 새로운 콘텐츠 유통 플랫폼에 대한 기대감을 밝혔다. 


KBS, EBS, CBS 등 공중파방송사와 SM 엔터테인먼트 등 주요 콘텐츠 업체, 단말기 업체들이 모여 새로운 콘텐츠 유통 플랫폼인 단팥을 선보였다. 그동안 방송국이나 콘텐츠 업체들은 개별적으로 콘텐츠 유통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이번처럼 이해 관계자들이 머리를 맡대고 공동 서비스를 런칭한 것은 단팥이 처음이다. 단팥을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팥의 출발은 아주 사소한 곳에서 시작됐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구매하기 위해 각 방송사 사이트에 가입하거나 개별 포털과 동영상 사이트에 가입해 왔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인터페이스와 호환되지 않는 단말 구매 등으로 상당한 불편을 감수해 왔다. 이 때문에 불법 동영상 유통 사이트에서 콘텐츠를 다운로드 받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곳에서 수많은 콘텐츠를 손쉽고,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았다. 개별 방송국들이 관련 서비스를 제공해 왔지만 소비자들에게 사용 편리성을 제공하지 않아 별다른 성과를 못 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방송사들이 꺼내 든 카드는 강온 양면 정책이다. 방송사들은 불법 동영상 유통 사이트들에게 두 번에 걸쳐 공문을 보내 관련 콘텐츠를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만일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법정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다. KBS의 한 관계자는 “법무법인을 통해 법률 검토는 이미 끝냈다. 본보기로 한 업체에 대해 법정 소송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 시기는 아마 5월이 될 것 같다고 관계자는 덧붙였다.


이런 강경책과는 별도로 이번에는 단팥을 통해 합법 공간으로 소비자들을 유도하고 있다. 방송사나 콘텐츠 제공업체들이 단팥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콘텐츠 사업의 위기를 정면 돌파하려는 의도다.


국내 음반사들은 P2P(Peer to Peer) 기술의 구현과 관련 사이트 등장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이런 가운데 이동통신사들이 벨소리 다운로드 시장을 장악하면서 콘텐츠 사업의 한 축에서 이통사의 눈치를 보는 하나의 CP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현실이 동영상 콘텐츠를 제작, 유통하는 방송사나 프로그램 프로바이더들에게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애플이 아이팟과 아이튠스를 결합해 음원 유통 시장을 장악한 것도 이들에게는 위기감을 배가시켰다. 애플은 음원 서비스 위주의 사업에서 이제는 동영상 콘텐츠 유통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하지만 음원 시장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동영상 콘텐츠 제작업체들은 아이튠스에 관련 콘텐츠들을 공급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다.


단팥 플랫폼을 개발한 뉴미디어라이프 데이빗 정 사장은 "아이튠스에서 유통되는 콘텐츠 중 1%만 영상이다. 그만큼 영상 제작 업체들이 애플에겐 당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상생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모두가 주체로 서로 공생해야지 특정 업체가 주도하고 하나의 객체로 전락하는 수직적 구조는 소비자나 생산자, 유통업체에게 결코 유리한 것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단팥 플랫폼 개발 배경을 설명한다. 뉴미디어라이프는 '타비 030'이라는 휴대형 IPTV 단말기를 개발하는 업체다. 이들이 플랫폼 사업에 눈을 돌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단팥의 출현은 개별적 사업을 벌였던 이들이 머리를 맞댔다는 것만으로도 주목받을 만하다. 지난해 불법 콘텐츠 시장 규모가 6000억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런 시장을 합법적 공간으로 유도하겠다는 뜻이다. 

아직까지 MBC나 SBS가 참여하지 않았고, 참여하지 않은 영화사들도 많지만 단팥이 성공한다면 이들 또한 이런 개방형 플랫폼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휴대용멀티미디어단말기 업체나 mP3플레이어 제조업체, 휴대폰 생산 업체들도 단팥 서비스에 속속 참여한다면 관련 서비스 안착은 시간 문제다.

단팥 서비스는 그동안의 콘텐츠 비즈니스 지형을 변화시키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인다. 언뜻 보기에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통 사업자들이 많으면 콘텐츠 생산자들에게도 유리해 보이지만 이들은 유통 사업자들이 자신들의 힘을 이용해 수직적 구조로 엮어가려는 것에 부정적인 시각을 내보이고 있다.

통신사들이 콘텐츠 유통 시장에 뛰어들면서 이런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개별 방송국들이 이해 관계가 틀린 상황에서도 의기투합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팥 시연회에 참석한 안수욱 SM 엔터테인먼트 이사는 "단말업체와 콘텐츠 사업자, 망 사업자들이 한데 모여 고민을 하는 장을 마련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날 행사장에는 컨텐츠 바르게 쓰기 홍보대상인 방송인 박경림 씨도 참석했다.

박경림씨는 "내가 가수할 때만해도 불법 복제가 많지 않았는데 가수를 그만두고 나서는 그런 것들이 만연된 것 같다"고 농담을 던지고 "나도 한 때 P2P 사이트에서 콘텐츠를 다운받아 본 경험이 있지만 이제 저렴한 가격에 합법적으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곳이 생겨 다행"이라고 밝혔다. 

이번 단팥 서비스에 참여하고 있는 주체들은 그동안 소비자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못 만들어 낸 것에 대해 1차적인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단팥 서비스도 런칭해 소비자들에게 한발 다가가면서 동시에 불법 유통 사이트들에 대해 법정 소송도 검토하고 있다. 

그동안 단팥 서비스는 라디오 콘텐츠들이 주류였다. 4월 10일 정식 서비스 런칭 시기에는 방송 콘텐츠를 포함해 영상과 음원 다운로드 서비스도 선보이게 된다. 313개 채널 3654의 콘텐츠들도 올해 1252개 채널에서 2만 9천 232개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이들의 공생 모델이 한국의 '개방형 아이튠스'의 성공을 보장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하지만 그동안 개별적으로 각개 싸움에 지쳐있던 이들이 힘을 합쳤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파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이 이들의 시도에 손을 들어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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