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 인천 전국체전은 개인 권영범에게나 한국 IT 역사에 아주 중요한 행사였다. 전국 체전과 IT 역사와 무슨 상관이 있겠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83년 인천전국체전은 전산 시스템이 처음 도입된 행사였다. 정부는 86년 아시안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을 우리 전산 기술로 운영하기 위해 83년 전국체전에 전산 시스템을 테스트했다. 대표적인 국가 행사를 우리의 손으로 해내야 한다는 생각들이 싹텃고 그 첫 번째 시도가 83년 인천 전국체전이었다.


권영범 영림원 CTO는 당시 전국체전 전산화 팀장을 맡았다. 전국체전 전산화 작업은 홍릉에 위치한 한국과학기술원 멤버들이 거의 도맡다시피 했다. 권영범 CTO는 “당시 프로젝트 기간은 석 달도 안됐다. 운동 경기는 전쟁이나 지진 같은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연기가 안되는 행사다. 시스템을 개발하고 하루만 테스트 하게 연기해달라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회상한다.


전국체전은 올림픽 경기에 비해서 상당히 복잡했다. 28개의 종목이 있었고, 남녀 종목으로 구분돼 있고, 각 종목마다 일반, 대학, 고등부로 또 나뉘어 있다. 메달 가산 점수부터 신기록 가산점 등을 모두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육상만 하더라도 33가지 세부 사항이 있었다. 이런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연맹을 찾았지만 아무런 준비도 돼 있지 않았다. 특히 그 분야의 전문가들은 전산에 전혀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은 3개월. 속이 타들어 갔다.


이들을 만나고 모든 경기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은 모두 전산팀의 책임이었다. 권영범 CTO는 “시스템을 설계하기 위해 각 종목별 심판들을 찾아 술자리에 사인을 받기도 했다”고 웃는다. 지나 간 옛 추억을 떠올리면서 권 CTO는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눈에서도 당시를 회상하는 듯 반짝였다. 


전산팀들은 홍릉 연구소에서 밥먹듯이 철야를 해야 했다. 권영범 CTO는 “숙소도 없었다. 하도 피곤해서 다들 도망가서 잤다. 계단, 옥상, 숲으로 도망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 넓은 곳을 손전등을 들고 찾아다녔다. 6일 동안 11시간 밖에 못잤다”고 전한다. 


이 행사를 끝내고 나서 권영범 전산팀장은 자신의 인생 중에 이보다 더 열악한 상황의 프로젝트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그만큼 힘겨운 프로젝트였다. 당시의 경험들은 아시안게임, 올림픽, 대전올림피아드,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이어져 왔고, 수많은 후배들이 함께 땀을 흘린 덕분에 그 인력들이 국내 IT 사업을 살찌우는 밑거름 역할을 해오고 있다.


권영범 CTO는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하고, 그 설계도에 따라 개발 한 후 적용해 보고 다시 또 수정을 한다. 여러 사람이 만들어가기 때문에 프로젝트 관리도 상당히 중요했다. 당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고 전한다.


그는 또 “설계가 아주 중요하다. 프로젝트 관리도 그에 버금간다. 여러 가지 해본 사람이 시야가 넓다. 나무만 본 사람에게 맡기면 사단이 벌어진다. 그것을 또 고치면 애초의 구조가 흔들린다. 후배들이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일이나 프로젝트 관리도 코딩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한다.


코딩을 한 기간으로만 보면 3년밖에 안된다. 권 사장은 79년 삼성전자 컴퓨터 사업부에 들어가 시스템 엔지니어로 개발자의 길을 걸었다. 전자공학과 출신이었지만 전산 부서에 배치되고 나서 포트란(FORTRAN)이라는 프로그램 언어를 배웠다. 그 언어도 대부분 독학으로 해결했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와 같은 상황이었다. 


88년까지 연구소에 있다가 큐닉스컴퓨터라는, 지금으로 보면 벤처 1호에 해당하는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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