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제품 하나가 그 시대를 관통하는 문화 코드로 떠오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단지 많이 팔렸다고 해서 문화 코드로 대접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가  자신이 구입한 제품에 대해 긍지를 가져야 하고 이같은 생각들이 뭉쳐 시대를 주도하는 트렌드로 떠올라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요즘 IT시장에서 문화 코드에 근접한 제품에는 어떤게 있을까? 애플의 MP3플레이어 '아이팟'이라면 적어도 후보군에는 오를만한 자격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디지털 엔터테인먼트가 IT산업의 강력한 성장 엔진으로 떠오름에 따라 애플 아이팟에 대한 열기는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알고들 계시는지? NPD그룹에 따르면 2006년 2분기 애플 아이팟이 미국 MP3플레이어 시장에서 75.6%의 점유율을 기록했다는 것을. 이쯤되면 미국 MP3플레이어 시장 판도는 애플 아이팟과 기타 제품군으로 짜여져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소니 워크맨이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로 불리었듯 아이팟 또한 MP3플레이어의 대명사로 취급되는 분위기마저 감지되고 있다.

아이팟의 열기는 무너질듯하던 애플컴퓨터가 다시 IT업계의 주역으로 떠오를 수 있도록 했을 뿐더러 애플을 향후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제패할 가장 유력한 후보중 하나로 올려놨다. 특히 애플 온라인 음악 서비스 '아이튠스'는 아이팟과 결합돼 디지털 음악 유통 혁명을 일으켰고, 애플을 하드웨어 업체가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을 판매하는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아이튠스에서 음악을 구입한 뒤 아이팟으로 듣고 있고, 이는 음악을 즐기는 스타일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인간과 너무나도 친숙한 음악을 감상하는 스타일이 바뀐다는 것은 문화의 변화를 의미한다. 아이팟과 아이튠스 조합이 문화코드란 평가까지 들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출판계에서 이런 애플을 그냥 놔둘리 없다. 실제로 애플 관련 책들은 IT관련 분야에서 '그런대로' 팔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왔던 책들은 대부분 애플의 성장 스토리나 스티브 잡스 CEO의 드라마같은 인생역정을 주로 다루고 있다.  애플의 대표 브랜드로 떠오른 아이팟만을 집중적으로 해부한 책은 없었던게 사실이다.

<컬트 브랜드의 탄생 아이팟>(이하 컬트 브랜드)은 다른 애플 관련 책들과 달리 아이팟과 아이튠스 듀오의 성공 배경과 문화코드로 부상하게된 원인을 다루고 있다. 아이팟이 소비자들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문화 측면에서 어떤 변화로 이어졌는지를 사례를 들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컬트 브랜드는 총 8장으로 이뤄져 있다. 1장은 아이팟 탄생을, 2장은 알려지지 않은 아이팟의 아버지 토니 파델을 소개하는데 할애했다.  3장은 아이팟으로 인해 탄생한 새로운 음악 감상 습관과 셔플로 불리우는 랜덤 음악 재생의 즐거움을 조명하고 있다.

4장과 5장은 각각 아이팟으로 인한 각종 에피소드들과 아이팟 문화를 다루고 있다. 6장은 아이팟에 대한 소비자들의 찬사를, 7장은 아이팟 액세서리 사업 등 아이팟이 탄생시킨 파상 시장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8장은 아이팟의 문화적 파급 효과를 언급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가장 눈길이 가는 부분은 4장과 5장이다. 몰랐던 내용이 듬뿍 담겨있었기 때문일 뿐더러 MP3플레이어 하나가 문화적으로 강력한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볼까. 교사인 조지 마스터스씨는 2004년 손수 제작한 아이팟 광고로 큰 주목을 받았다. 애플과 무관하게 제작된 이 광고는 한 개인 소비자가 광고의 주역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광고 마케팅 전문가들로부터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해  컬트 브랜드의 저자인 리앤더 카니는 아이팟은 열광적인 소비자층을 밑바탕에 깔고 있으며 이들은 애플을 위한 광고를 만들 뿐 아니라 스스로가 애플 광고로 변신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애플은 가만히 있는데도 애플 전도사를 자처하는 사용자들이 확산된게 조지 마스터스씨와 같은 이색 소비자를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아이팟 마이포토에 대한 내용도 흥미롭다. 아이팟 마이포토는 애플과 무관한 독자적인 인터넷 서비스인데 각종 디지털 사진도 아이팟을 대표하는 실루엣 광고 모양으로 바꿔준다. 사용자들은 디지털 사진을 올린 뒤 배경색을 선택하고 돈을 지불하면 5일여안에 아이팟 실루엣 광고와 결합된 사진을 손에 넣게 된다고 한다.
 
하나만 더. 2004년 디젤 스위티즈라는 인터넷 만화 사이트는 "당신이 아이팟이 뭔지도 모르던 때에 난 벌써 샀다"란 문구가 쓰여진 티셔츠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국내 정서로는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에선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다. 아이팟을 구입했다는 게 긍지를 불러일으키지 않고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아이팟은 유명 스타들로부터도 힘입은 바 크다. 아이팟에 강력한 힘을 실어준 스타들로는 데이비드 베컴, u2, 마돈나, 노다웃 등이 꼽히고 있다.

책은 어려운 내용이 별로 없다. 이미지 자료도 듬뿍 들어있어 책이 아니라 마치 고급 잡지책을 넘기는 듯 하다.

그러나 아이팟이 일으킨 다양한 현상들을 사례중심으로만 소개하다보니 책장이 너무 빨리 넘어가는 것 같지 않나란 느낌도 밀려온다. IT제품이 문화코드로 자리잡으려면 무언가 심오한게 필요하지 않았을까하는 기자 개인의 선입견이 작용했기 때문이리라.

컬트 브랜드의 저자인 카니는 와이어드뉴스 편집자로 있으며 컬트오브맥이란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다. 그의 블로그는 와이어드 뉴스 최고의 블로그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컬트브랜드의 탄생 아이팟(미래의 창:리앤더 카니저, 이마스 옮김, 1만7천원)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