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쿤은 일찍이 '과학혁명의 구조'란 책을 통해 '패러다임론'을 주장했다. '어떤 한 시대의 견해나 사고를 지배하는 이론적 틀'이라고 풀이할 수 있는 패러다임은 한 마디로 그 시대 사람들을 지배하는 기본 원리를 말한다.
결국 패러다임은 거대한 변화를 뜻한다. 성숙기로 접어든 소프트웨어 시장도 지금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맞이하고 있다. 이번에는 제품이 아니라 유통 모델에서 일어나는 혁명이다. SW를 CD에 담아 팔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직접 사용자들에게 전달하는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Software as a Service: SaaS)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 이 순간 SaaS란 말을 들으며 2000년대 초반 한시대를 풍미했던 ASP를 떠올리는 이가 많을 것이다.
Saas의 원조격인 ASP는 나올때만 해도 차세대 황금어장으로 불리우며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두터운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초한 역사를 갖고 있다. '거품의 주역'이란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다. 이를 감안하면 SaaS가 새로운 패러다임이란 말에 쉽게 수긍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SaaS는 ASP의 한계를 극복한 사업 모델이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최고기술임원인 김명호 이사의 코멘트로 설명을 대신한다.
"제대로된 ASP가 SaaS다. ASP 모델이 처음 나올때만 해도 네트워크 대역폭이 받쳐주지 못했다. 규모의 경제도 실현할 수 없었다. 규모가 안되면 사업을 할 수 없다. ASP로 제공하는 비용이 개인이 라이선스를 구입해서 설치하는 것과 같다면 의미가 없다. SaaS는 이점을 극복한 사업 모델이다.
한대의 서버에서 사용자들을 얼마만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SaaS는 이 부분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가급적 다수 사용자를 한시스템에 적용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수 사용자들에게 각자에 맞는 환경을 제공할 수있게 된 것도 SaaS가 ASP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과거 ASP는 환경이 결정돼 있는 SW를 네트워크를 통해 제공했을 뿐이지만 SaaS는 다수 사용자를 한꺼번에 수용하면서도 사용자마다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처음부터 인터넷 중심으로 시작했느냐가 SaaS를 과거 ASP와 차별화시켜주는 포인트다.
서버 인프라와 안정성이 높아진 것도 SaaS 모델을 현실 비즈니스로 가능케 하고 있다. SaaS 역시 SW비즈니스다. 제품을 라이선스로 파느냐 서비스로 파느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김명호 이사의 발언은 SaaS가 ASP처럼 한때의 거품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시장 판세 또한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구글과 세일즈포스닷컴의 성공은 SaaS 혁명이 이미 '현재 진행형'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한쪽에서 성공한 변화는 다른 곳에서 후폭풍으로 이어진다. SaaS가 몰고온 가장 강력한 후폭풍이라면 SW제국 MS의 '변신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빌 게이츠 MS 회장은 2005년말 내부 핵심 경영진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인터넷 기반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로의 변화는 거대하면서도 파괴적인 현상이다"라면서 "우리는 지금 강력한 도전자들을 맞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게이츠 회장은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서비스 열풍을 '엄청난 변화'(sea change)로 묘사하며 구글, 세일즈포스닷컴 등 승승장구하고 있는 인터넷 기반 업체들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빠르게 움직여 줄 것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SW 황제인 빌 게이츠 회장에게 위기감을 심어주었다는 것은 SaaS가 가진 파괴력이 매우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MS는 물론 대부분의 SW업체들도 SaaS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 대한민국 IT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여기에는 컨버전스란 용어가 따라붙는다. SaaS 역시 컨버전스 현상의 결과물이다. 인터넷과 SW가 결합돼 거대한 SW 유통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컨버전스 시대의 비즈니스 환경은 과거와는 다르기 마련. 방송과 통신 진영이 갈등이 확산되는 것처럼, SaaS의 확산은 인터넷과 SW업체 그리고 통신 서비스 업체간 경쟁과 광범위한 합종연횡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MS와 구글과의 관계를 보라. SW와 인터넷에서 각각 맹주를 자처하는 이들은 지금 SaaS 시대의 주도권을 놓고 사활건 전쟁에 들어간 상황이다.
이 대목에서 SaaS 비즈니스의 진입 장벽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겠다. SaaS는 서비스 모델이다. 개발 능력만 갖췄다고 해서 뛰어들 수 있는 동네가 아니다.
서비스 운영 능력이 갖춰야 하고 아웃소싱을 뜻하는 만큼 고객 신뢰도를 확보해야 한다. 중소 SW개발업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우리도 SaaS 업체다"고 할수는 없다는 얘기다.
더구나 한국은 내 IT인프라를 남에게 맡기는 것에 대해 거부반응이 강한 시장이 아니었던가. 의욕만으로 뛰어들었다간 독이든 사과를 먹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세일즈포스닷컴의
박춘식 아태지역 담당 영업 상무는 "빠른 속도로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게 쉽지는 않다. 단일 시스템에서 가급적 많은 고객을 동시에 수용해야하는데, 개발 중심의 업체들에게는 이것이 커다란 진입 장벽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서비스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규모의 경제를 위한 기술력없이는 할 수 없는게 SaaS 비즈니스란 얘기였다.시장 조사 업체 IDC에 따르면 SaaS는 2009년에 전세계적으로 107억달러의 시장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수치만 놓고 보면 매력적인 시장이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기업에게 이같은 수치는 희망이 아니라 오히려 위협일 수 있다. 이미 SaaS 시대에는 SW업체보다는 인프라 운영 능력을 갖춘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의 입김이 강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구글에 이어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가 한컴씽크프리와 손잡고 웹오피스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관련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자는 앞으로 SaaS 모델의 확산과 국내 SW 시장의 변화를 메인 테마로 잡고 많은 기사를 내보낼 것이다. 사례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SaaS가 몰고오는 시장의 변화를 다양한 관점에서 보여주고 싶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