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출판기획일을 오랫동안 해오신 지인 H씨를 만났습니다. H씨는 국내 중견 출판사의 사업본부장입니다. 90년대말 닷컴 붐이 한창일 때부터 IT서적 전문 기획자로 손꼽히던 분이기도 합니다.
국내 IT업계의 화제거리를 중심으로 얘기를 한참동안 나눴는데요. SK커뮤니케이션즈의 엠파스 지분인수, 구글의 한국진출 등이 자연스레 도마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말씀이 재미있습니다.
"엠파스를 두고 오래전부터 각종 인수설이 돌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사실 구글이 엠파스를 인수했으면 하고 내심 바랐거든요. 지금도 많이 아쉬워요."
사연인즉 이렇습니다. H씨는 올해 초 구글과 창업자 이야기를 다룬 미국 서적을 번역해 국내에서 출간했습니다. 이를 위해 2005년 상반기에 일찌감치 미국쪽 출판사와 계약을 마쳤습니다. 2004년 8월, 구글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미국 증시에 상장한 이래 전세계적으로 말 그대로 구글 열풍이 불고 있었지만, 국내에선 변변한 구글 관련 서적조차 없던 때였습니다. 책만 내면 대박이겠다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뿔사! 예상 못한 곳에서 뒤통수를 얻어맞았습니다. 국내의 한 대형 출판사가 지난해 12월 구글을 다룬 책을 먼저 출간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H씨가 준비한 책보다 3개월 앞서 내놓은 꼴이 됐습니다. 상대 출판사가 부지런을 떤 덕분이니, 자기도 할 말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내심 억울한 면이 없지 않았다는데요.

눈 밝은 독자는 이미 아시겠지만, 국내에서 구글과 창업자를 기업사 관점에서 다룬 책은 2종류입니다. <검색으로 세상을 바꾼 구글 스토리>(랜덤하우스중앙)와 <구글, 성공 신화의 비밀>(황금부엉이)입니다. 웹2.0이나 인터넷 트렌드를 얘기하면서 구글을 함께 언급한 책들은 종종 있지만, '구글'을 책 제목으로 내세우고 본격적으로 다룬 책으로는 이 둘이 유일한 것 같습니다. 물론 둘 다 미국 서적의 번역본입니다.
그런데 원제를 보면 재미있는 점이 발견됩니다. <검색으로…>의 원제는 'The Search'입니다. 내용도 구글을 중점적으로 다루기는 하지만, 제목대로 전세계 검색엔진의 역사와 발전사가 뼈대입니다. 그래서인지 검색엔진 업계 내부 이야기를 중심으로 업계 종사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이와 반대로 <구글, 성공 신화…>의 원제는 'The Google Story'입니다. 구글의 성장 과정과 구글 창업자의 인간적인 면모들을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업계 종사자 뿐 아니라 일반 기업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졌습니다. 바로 H씨가 기획 출간한 책입니다.
H씨는 이 책의 한글제목을 원제대로 '구글 스토리'로 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먼저 낸 출판사가 한글 제목에 '구글 스토리'란 말을 임의로 붙였기 때문입니다. 울며 겨자먹기로 H씨는 제목을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 출간 직후 술자리에서 H씨가 "'구글 스토리'란 제목을 무단 출간한 상대 출판사에 대한 미움보다는, 내용에 딱 맞는 제목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더 안타깝다"고 푸념하던 기억이 지금도 납니다.
H씨는 결국 상대 책이 휩쓸고 간 자리의 '낙과'를 쓸어담은 모양새가 됐습니다. 그래도 이 책은 나름의 성과를 올렸다고 합니다. 구글에 대한 관심의 불씨는 여전히 한국 시장에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H씨는 이 불씨가 다시 한번 활활 지펴지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풀무질 가운데 하나로 '구글의 엠파스 인수'를 기대했던 겁니다. 물론 SK커뮤니케이션즈와의 제휴로 이는 물건너갔지만 말입니다.
H씨의 얘기를 새삼 꺼내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일단 지펴지기만 한다면, 구글이라는 불씨는 언제든지 한국시장을 뜨겁게 달굴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판계도 덩달아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H씨는 말했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구글이 한국지사를 설립하거나 다른 업체를 인수하는 등 국내에서 본격 시동을 건다면 다시 한 번 관련 책들의 인기가 치솟을 테니까요."
그리고는 덧붙였습니다. "지금도 눈 씻고 찾아봐도 구글을 다룬 책은 저 두 권 뿐이거든요. 그 사이 새로 나온 책들이 없어요. 외국 원서도 마찬가지고요." 혹시나 싶어 아마존(www.amazon.com)을 뒤져봤지만 H씨의 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합니다. 구글 광고기법이나 구글 해킹 같은 얘기를 다룬 책들을 빼고는 말입니다. 이 시점에서 IT서적에 관심 있는 출판사들이라면 애닯게 되뇌이겠지요. "쓸 만 한 구글 책 어디 없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