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일주일이 지났다. 그 동안 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타난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 하다. 그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불편했을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그는 버려지지는 않았지만, 모든 이들의 관심에서 철저하게 멀어져 있다.
그는 공중전화라고 불린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무인 공중전화에 속한다. 요즘은 찾는 것도 쉽지 않은 길거리 공중전화 박스 안이 그들이 사는 집이다. 한때 그들에게도 전성시대가 있었다. 그들을 사용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던 사람들로 넘치던 추억이 있었다.
매일 오고 가는 길에 만나야 하는 공중전화가 고장 난 채로 버티고 있다. 찾는 사람이 점점 줄어가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딴에는 이해도 된다. 그렇게 무덤덤하게 며칠을 보내고 있자니, 그들의 처지를 진지하게 가늠해 보고 싶도록 만드는 뉴스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 11월 17일자 스포츠조선에는 청소년의 문자 중독이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는 기사가 났다. 한 이동통신 업체에서 만 18세 미만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월 3,000개의 무료 문자 서비스의 가입자 대부분이 한 달에 3,000건의 무료 문자를 모두 사용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한 달에 만개 이상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청소년도 있다는 내용도 보인다.
같은 날 경향신문에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펴낸 ‘2006년 정보경제 보고서’를 인용한 기사가 올라왔다. 이 기사에 따르면 전세계 휴대폰 이용자가가 전년 대비 24% 증가한 21억 7천 1백만 명에 달한다고 되어있다. 국가별 휴대폰 이용자수가 가장 많은 나라는 중국으로 약 3억 9천 3백만 명이 사용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3천 8백 34만 명으로 14위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폭발적인 이동전화의 성장은 공중전화가 외면 받는 현실을 만든 가장 큰 원인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고, 그것은 곧 공중전화의 입지가 점점 더 좁아지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 상황은 접어 두더라도 우리나라의 현실을 곱씹어 보면 공중전화의 앞날은 더욱 걱정스러워 진다.
정보통신부가 발표한 유,무선 통신서비스 가입자 현황에 따르면 2006년 9월말을 기준으로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3천 9백 55만 5천 772명이다. 유선전화는 2천 3백 10만 4천 67회선이 보급되어 있다. 공중전화는 아예 이 통계에 포함되어 있지도 않다.
통계청이 밝힌 우리나라 인구는 2005년 기준으로 약 4천 7백 27만 8천 951명. 한 사람이 한 대의 이동전화를 사용하고 있다고 가정하면 우리나라 인구의 약 83.7%가 이동전화를 갖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역시 같은 방법으로 단순하게 계산하면 유선전화의 전체인구 대비 보급률은 약 48.9%에 그친다.
이를 가구 수와 비교해 보면 얼마나 이동전화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 지 체감지수가 높아진다. 2005년에 조사된 우리나라 전체 가구 수는 1천 5백 98만 8천 274가구. 이를 이동전화 가입자 수와 유선전화 가입 회선으로 나누면 이동전화는 가구 당 약 2.48대, 유선전화는 가구 당 약 1.45대가 보급되어 있는 셈이다.
이는 유선전화가 일반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산술적인 계산일뿐이다. 실제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유선전화와 이동전화의 가구 당 평균 보급률의 차이는 이 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국에 설치되어 있는 공중전화는 몇 대나 될까? 2006년 1월에 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06-2007년도 보편적 역무 제공사업자 지정계획’이라는 문서를 보면, 2005년 11월 말 기준으로 전국 144개 통화권에 설치된 무인 공중전화는 12만 8천 99회선, 자급제 공중전화는 14만 2천 5백 36회선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전국에 설치된 전체 공중전화의 수는 총 27만 635대가 된다. 이 보다 최근 자료를 얻고자 KT에 자료를 요청해 놓았지만 아직 답변을 받지 못했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언론에 보도됐던 기사를 찾아보니, 동아일보가 올해 2월에 보도한 ‘52세 공중전화 명퇴위기...휴대전화에 밀려’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이 기사에 따르면 1999년에 전국에 설치되었던 공중전화는 56만 4천 54대, 공중전화 한 대당 월평균 매출액은 5만 5천 800원인데 비해 유지 보수에 들어가는 비용은 대당 7만원이라고 되어있다. 불과 5년 사이 전국에 설치되어 있던 공중전화의 반이 사라졌고, 공중전화로 버는 돈 보다 이를 유지하는 데 드는 돈이 더 많다.
공중전화 사업은 모든 이용자가 언제 어디서나 적정한 요금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전기통신역무인 ‘보편적 역무’에 해당한다. 좀 어려운 말이지만 수익성 보다는 공익성이 우선하는 통신 서비스라는 뜻이다. 그래서 수익이 줄더라도 운영을 해야하고, 이 때문에 발생하는 손실은 SK텔레콤, KTF, LG텔레콤 등에서 일정 부분을 보조해 주고 있는 실정이다.
보편적 역무에는 공중전화를 비롯해 시내전화, 도서통신, 선박무선전화, 특수번호 전화서비스 등이 해당된다. 그리고 해당 통신 서비스의 보급 정도, 경쟁 상황 등의 통신 환경의 변화를 고려해 2년 마다 보편적 역무 제공사업자를 정보통신부에서 지정한다. 현재 시내공중전화의 보편적 역무 제공사업자는 KT로 지정되어 있다.
공중전화는 크게 무인 공중전화와 자급형 공중전화로 나뉜다. 길거리나 공공장소의 전화박스나 부스에 설치되어 있는 것은 무인 공중전화, 식당 같은 자영업소에서 자체적으로 설치한 것은 자급제 공중전화로 분류된다. 자급제 공중전화는 자영업소에서 직접 관리하지만 무인 공중전화의 경우는 KT의 자회사인 KT링커스에서 관리를 맡고 있다.
역시 앞에서 언급했던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KT링커스의 2005년 매출액은 858억원. 1998년 매출액이 7300억원에 달하던 것과 비교하면 약 6년 만에 공중전화 수입은 거의 1/10로 줄어든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KT링커스에는 지난 4월에 ‘공중전화 완전변신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하며, 공중전화의 부활을 모색하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과연 어떤 아이디어들이 실제로 반영되어 얼마나 빛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이러한 시도가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고, 다양한 이벤트, 캠페인과 맞물려 사람들로부터 공중전화가 잊혀지지 않도록 꾸준하게 이어지는 것이 필요한 때다. 물론 공중전화를 사용하고 싶어지도록 만드는 다양한 서비스도 너무 늦지 않게 등장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공익을 위해 모두가 참여하는 시민 정신이다. 공중전화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사라지면 그 불편을 겪는 것은 당신이 아닐 수도 있다. 설령 어느 날 갑자기 공중전화가 사라져도 당신은 전혀 불편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의 주머니 속에는 늘 이동전화가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초등학생 자녀, 연로하신 부모님, 친구들 다 있는 이동전화가 없어도 불평 없이 생활하고 있는 중고생 동생이나 조카들이 있다면 공중전화의 필요성을 한번 쯤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 공중전화는 길 위에서 가족과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일부러 공중전화를 찾아다니자는 것이 아니다. 급하게 통화해야 하는 데 이동전화를 두고 굳이 공중전화를 사용할 까닭도 없다. 다만 한 달에 한두 번, 일년에 몇 번이라도 지갑 속에 넣어둔 몇 천 원 짜리 공중전화 카드나 주머니 속의 동전을 사용해 보자는 말이다. 공중전화가 꼭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공중전화가 더 이상 사라지지 않도록 작은 관심을 가져 보자는 얘기다.
일주일 동안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그 공중전화의 액정 화면에는 7로 보이는 숫자 5개가 깜박이고 있다. 그것이 정말 7이라는 숫자인지, 어떤 의미로 그런 코드를 표시하게 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7이 행운의 숫자라면 누군가 공중전화를 찾았을 때 ‘행운, 행운, 행운, 행운, 행운’이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정말 그런 의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이 얼마나 센스 있는 아이디어인가. 행여 그렇지 않더라도 ‘불편을 줘서 미안하니, 행운이 가득하길 바란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애꿎은 전화기에 대고 불평할 이유도 없을 듯 하다. 그런데 요즘 공중전화 한 통화 요금이 얼마인지 혹시 아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