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금요일 유명산에 다녀왔습니다. 홍천에서 목요일부터 있던 모임에 다녀오며 일행과 헤어진 후 저는 산으로 길을 잡았습니다. 혼자였고, 초행길이었습니다. 아무리 만만해 보이는 산이라도 준비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산행 길입니다. 특히나 겨울산은 더욱 그렇습니다.

산행은 2시부터 시작했습니다. 사실 처음 오르는 겨울 산행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산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겨울 산은 4시 정도면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5시가 넘으면 랜턴 없이는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칠흑 같은 어둠이 밀려옵니다.


매표소 입구에서 잠시 망설였습니다. 그래도 날씨는 따뜻한 편이었고, 땅도 얼지 않았었습니다. 휴식 시간을 포함해 오르는 데 2시간, 내려오는 데 1시간 반 정도를 예상 했습니다. 그러니까 5시 반이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셈이죠. 야간 산행 경험도 있고 하니 그 정도 시간이라면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온갖 장비가 들어가 있는 배낭의 무게는 약 16kg.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꽤 오래 산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내심걱정이 됐습니다. 하지만 안전수칙을 지키면서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산행을 하기로 하고 일단 출발을 했습니다. 오르는 길은 예상대로 2시간이 걸렸습니다.


정상으로 갈수록 바람은 매서워지고,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눈발이 간간이 날리더군요. 구름 때문에 정상에 올랐을 때는 생각보다 더 빨리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일단 준비해간 건조 식량에 보온병의 뜨거운 물을 부어 간단하게 식사를 마쳤습니다.


올라 올 때는 땀 때문에 벗어두었던 재킷과 모자를 쓰고, 헤드 랜턴까지 착용한 후 바로 출발을 했습니다. 하산을 시작하고 20분 정도 지나니 랜턴 없이는 눈앞에 사물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워졌습니다. 그리고 생각하지 못했던 고생도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우선 얼었다가 녹은 흙이 진흙으로 변해서 조금만 방심하면 미끄러지고, 낮에 떨어진 낙엽들이 등산로를 덮어 어느 곳이 등산로인지 구분하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도대체 어느 곳이 길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셈입니다. 나침반과 지도도 있었고, 고도계와 나침반 기능을 하는 시계도 있으니 방향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랜턴 불빛으로는 겨우 20-30미터 앞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방향만으로 내려오는 길을 찾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입니다. 한발 짝만 잘 못 디디면 미끄러져서 넘어지니, 돌다리를 두드려 개울물을 건너듯이 등산용 스틱으로 조심조심 앞길을 가늠하며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치면 큰일인 만큼 조심에 또 조심을 하면서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저에겐 휴대용 GPS가 있었습니다. 마젤란사에서 나온 익스플로리스트 210이라는 모델입니다. 이 물건 덕분에 가야할 길이 아닌 곳을 헤매고 있다 싶으면 바로 위치를 확인하고 제대로 된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주로 종주산행이나 장기산행을 할 때 사용하지만, 저한테는 동네 뒷산을 가도 꼭 챙겨가는 중요한 장비 중에 하나입니다. 여러 가지 기능이 있지만 그런 것들은 다음 기회에 설명을 하기로 하겠습니다. 일단 이번 산행에서 저를 겨울 산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무사히 내려오게 해준 것은 트랙 로그라는 기능 덕분입니다.


산행을 시작했을 때부터 전원을 켜 놓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올라온 길의 행적이 트랙이란 위치 정보로 그대로 메모리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트랙은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위치 좌표를 기록한 것으로, 각각의 점들이 연속해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액정 화면을 보면 지나온 길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려 갈 때는 반대로 이 선을 따라 거꾸로 가면 올라왔던 길을 따라 그대로 내려가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길이 아닌 길로 들어섰다가 GPS를 확인하고 다시 제 길을 찾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 거의 3시간 만에야 무사히 출발한 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2. 산에서 내려오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내내 신문과 블로그에서 보았던 IT 전문 웹진 시넷(CNET)의 편집장인 제임스 김 생각이 났습니다. 그분도 저처럼 디지털 세상의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저와는 같은 직업을 가진 셈입니다. 그래서 처음 실종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좋은 소식을 듣게 되기를 무척이나 기도했습니다.


그는 CNET에서 디지털 오디오를 담당하는 수석 편집장으로 일해 왔습니다. 디지털 오디오 전문이니 아웃도어 장비나 통신장비를 직접 접할 일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세계적인 IT 온라인 전문지에 근무하는 만큼 위급할 때 위험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첨단 제품들을 잘 활용하고 있으리라고 믿으며 그의 무사함을 기원했습니다.


저라면 그렇게 장거리 여행을 자동차로 떠난 다면 트렁크에 비상식량, 식수, 구급약품 등을 일어날 수 있는 여러가지 상황을 가정해 가능하면 꼼꼼하게 챙겨갑니다. 좀 과장하면 남들이 보면 이사 간다고 할 정도로 나름대로 철저하게 준비를 합니다. 비록 연락이 되지 않을 뿐이지 저는 제임스 김도 그런 분이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미국 사정은 잘 알지 못하니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오지를 지날 것이면서 왜 위성전화라도 임대하지 않았을까? 자동차에 네비게이션이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좀 더 안전한 길을 택해서 가거나, 이 길이 아니다 싶었을 때 바로 핸들을 돌려 돌아왔으면 되지 않았을까?


참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집을 나설 때 그의 가족들은 구조 되었다는 소식을 보고 나왔으니, 그 하루 사이에 그도 무사히 구조되었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옷에 묻은 흙도 털지 않고, 인터넷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허탈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와는 다른 결과가 인터넷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평상복 차림으로 험난하고 춥고 외로운 길을 16.5km나 걸었다는 내용.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찾기 위해 인공위성을 수색지역 상공으로 움직이고, 헬기를 3대나 임대해서 수색 작업을 벌였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가 혼자서 걸었던 길을 표시해 놓은 지도도 여기 저기 보이더군요. 그 지도를 보자니 더욱 허탈하고, 안타깝더군요. 제대로 된 종이 지도라도 한 장 있고, 어디에 있는지 현재 위치만 알 수 있었어도 머지않은 곳에 있었던 리조트를 찾아갈 수도 있었을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부질없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누구도 그를 탓할 수 없습니다, 탓하지도 않습니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그는 정말 그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해냈습니다. 혹한의 날씨, 그렇게 험한 산길을 그렇게 오랜 시간 혼자서 걷는 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 가족의 생사가 걸린 일을 놓고…….

 

다만, 안타깝습니다.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그가 훌륭하고 능력 있고 성실한 IT 기자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명의 이기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소비자였다면 혹시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일만큼이나 여행할 때도 조금만 더 치밀했다면, 어쩌면 그 길을 피해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자꾸 부질없는 생각이 잠을 못 이루게 하는 밤입니다. 그의 명복을 빌고, 그를 보낸 가족들을 위로한다는 말로는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안타까움을 조금이라도 가리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것이 아마 모든 사람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가장으로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던 그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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