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와 휴대폰 등 정보기술 제품을 비롯해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목의 최대 시장인 미국. 그런 탓에 미국경기의 호불황여부는 우리에게도 초미의 관심사일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올해 미국경제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견실한 성장세를 지속하는 모습을 보여줘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수출기업들에게는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 듯하다. 물론 최근 들어 환율문제가 불거지면서 그 기대가 크게 꺾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 경기호황이 때론 반갑지 않다고 하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며칠전 경제학과 수업시간에 들은 이야기를 잠시 옮겨볼까 한다.




교수 왈 "오늘 당장 중국인의 1인당 석유소비량이 미국인의 1인당 석유소비량과 같아진다면 1주일후 석유가격은 얼마가 될까?" 



학생들 "……" 



교수 왈 "계산할 수 없다. 왜냐면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지금까지 발견된 석유는 1주일안에 고갈이 되기 때문에…" 



올 한해 석유가격이 가파르게 오른 이유는 중국과 인도의 경제성장으로 석유소비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하는 와중에 나온 이야기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좀 더 다른 각도에서 이해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교수의 설명을 다소 비틀어 보면 중국과 인도의 에너지 소비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사실은 세계 최대 시장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과도한 에너지 소비, 더 나아가 미국 소비자들의 거침없는 소비만능주의가 문제라는 말 할 수 있다.



세계 인구의 5% 수준에 불과한 미국인들이 소비하는 석유가 전 셰계인구가 소비하는 석유의 3분의 1이 넘는다는 식상한 설명은 차치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 미국인들이 보여주는 소비중심의 문화는 때때로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단적인 사례 하나로 쓰레기 재활용 문제를 들 수 있다. 미국은 우리나라에 비하면 사실상 쓰레기 재활용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공공건물과 타운아파트 등에서는 자율적인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있지만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다 타운아파트의 경우에는 별도의 비용부담없이 무제한 쓰레기 배출이 가능해 쓰레기 분리수거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또 도처에 널려 있는 패스트 푸드점 등에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일회용 용기들은 별도의 분리과정 없이 모두다 쓰레기 봉투로 버려진다. 요즘은 그나마 석유값이 많이 오른 탓에 미국에서도 자동차 연비를 따지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대다수 미국인들은 자동차 연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여전히 힘 좋고 큰 차를 선호한다. 



사실 석유 값이 많이 올랐다고 해도 여전히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미국의 석유값은 저렴한 편이고 석유 값 급등에도 석유소비량은 크게 줄고 있지 않다. 오죽했으면 한창 석유값이 치솟을 때 부시 대통령마저도 미국인은 석유에 중독됐다고 했겠는가.



얼마전 독일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온 어느 한국 공무원의 부인이 "유럽에서 살다 미국으로 오니 너무 살기 편하다 좋다"고 해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독일에서는 철저한 쓰레기 분리배출이 무척 번거로울 뿐 아니라 쓰레기를 되도록 적게 배출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으나 미국에서는 별로 그런 문제에 신경쓸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석유값도 싸서 특별히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 편하고 자유롭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대답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은 전반적으로 소비와 쓰레기 배출량에 그다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좋게 해석해서 넓은 땅덩어리와 풍부한 자원이 뒷받쳐주는 여유로움과 넉넉함이라고 해석하지만 세계인구의 5%에 불과한 미국인들이 이렇게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쓰레기를 배출하면서도 일말의 죄의식은 커녕 자유로움과 풍족함을 만끽한다는 건 다소 지나친 듯 싶다.



솔직히 말해 개인적으로도 미국경기가 호조를 보인다는 소식을 접하면 반갑고 다행이라는 마음이 앞선다. 미국경기의 침체는 한국경제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미국경제의 호황은 가뜩이나 과도해 보이는 미국인들의 소비와 쓰레기 배출을 더욱 부추켜 결국에는 인류전체가 파국으로 가는 길을 재촉하고 있는건 아닌지 때때로 불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면 그건 지나친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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