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과 1의 비트로 표현되는 디지털로 옷을 갈아입는 물건이 넘쳐나는 디지털 세상. 할 수만 있다면, 아날로그의 헌 옷을 버리고 디지털이라는 새 옷을 갈아입는 것들이 갈수록 늘어간다. 덕분에 사람들의 모습도 문화도 덩달아 새로운 옷에 적응해 간다.
디지털 세상을 기웃거리다 보면 ‘이런 것도 디지털과 만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제품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런 것들 중에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제품도 있지만 간혹 예상치 못할 만큼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제품도 적지 않다.
해머처 슬래머(Hammacher Schlemmer ; www.hammacher.com)에서 만날 수 있는 디지털 보면대(The Hands-Free Music Library And Page Tuner)는 어떨까?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기계나 디지털에는 문외한인 사람이라면 생소할 수도 있는 ‘물건’이다.
악보를 앞에 두고 연주하는 연주자를 보고 있노라면 불안하고 불편해 보일 때가 있다. 연주하랴 악보 넘기랴 연주자의 손은 바쁘다. 급하게 악보를 넘기다 보면 악보를 넘기는 소음이 음악 사이로 끼어들 수도 있다. 수많은 악보를 잘 관리하고 가지고 다녀야 하는 것도 골칫거리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이럴 때 디지털 보면대가 있다면 연주자들은 연주에만 전념할 수 있다. 12인치 크기의 액정화면에는 1024x768 화소의 고해상도로 악보가 디스플레이 된다. 악보를 넘겨야할 때는 패달을 발로 밟기만 하면 그만이다. 터치스크린 기능을 내장하고 있어 화면을 터치해도 똑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가로 또는 세로로 놓고 사용할 수도 있고, 전용 거치대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떤 종류의 악기를 사용하든 원하는 위치와 방향에 놓아두고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악보는 본체에 있는 128MB 용량의 내장 플래시나 외장형 USB 메모리에 저장한다.
악보를 저장할 때는 PC와 연결해 다운로드 받는다. 필요한 악보를 구하는 방법은 세 가지.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약 8만 5,000여 개의 악보 중에서 원하는 것을 구입하거나 직접 스캐너로 종이 악보를 스캔해서 사용한다. 또는 악보가 표시되는 각종 음악 관련 소프트웨어에 저장되어 있는 악보를 JPG 형식의 이미지 파일로 변환해도 된다.
또한 MP3 파일을 재생할 수 있는 MP3 플레이어 기능도 제공한다. 메트로놈을 내장하고 있고, 비디오와 오디오 포트를 이용해 외부 기기와도 연결이 가능하다. PC와 연결하거나 USB 메모리를 사용할 수 있는 USB 포트는 2개가 탑재되어 있다. 전원은 한번 충전으로 약 3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전용 충전지나 AC 전원을 사용한다.
가격은 약 1,400달러. 디지털 보면대가 꼭 필요한 연주자들이라면 비싼 듯 해도 하나 쯤 구입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길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디지털 세상에 관심을 좀 가져보면 이런 것 말고도 디지털 기술로 새롭게 태어나는 다양한 종류의 음악 관련 기기와 각종 악기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런 것들은 적어도 당신이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물건일 뿐이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변하고 있는 세상, 달라지고 있는 문화에 항상 눈과 귀를 열어 놓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한 때다. 알아도 사용하지 않는 것과 몰라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서로 다른 결과를 낳는 까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