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사모펀드 하면 '먹튀'가 연상된다. 최근 홈플러스 사태와 롯데카드 매각 논란이 사모펀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다시 끌어올렸다. 기업을 인수한 뒤 무리한 차입을 얹고, 점포를 닫거나 인력을 줄이는 방식은 수많은 노동자와 협력업체에 상처를 남겼다.
정부가 사모펀드를 둘러싼 제도 손질에 나선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상법 개정에 이어 자본시장법 개정을 위한 발의와 토론회가 잇따르고 있다. "사모펀드의 방종을 그대로 둬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도 제도 개선을 통해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최근 논의된 의무공개매수제 또한 그 연장선이다. 의무공개매수제는 지배권을 살 만큼 지분을 확보한 인수자가, 대주주뿐 아니라 일반주주 지분도 똑같은 조건으로 사들이도록 하는 장치다. 소액주주가 경영권 프리미엄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게 목표다.
취지가 선해도 제도에는 그림자가 따른다. 의무공개매수제는 소액주주 보호라는 분명한 취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경영권 프리미엄을 지불해 온 사모펀드 입장에서는 요구가 억울하게 들릴 수 있다. 인수 단계에서 짊어진 프리미엄을 갑자기 나누라는 얘기여서다.
자영업자의 사례로 비유하면 이해가 쉽다. 누군가 권리금 1억원을 주고 치킨집을 사들였다. 그리고 장사를 잘해 권리금이 1억2000만원으로 올랐다. 그런데 이제는 함부로 권리금을 챙기면 안 된단다. 권리금이란 관행이 잘못됐으니 이를 독식하지 말라는 거였다. 시장 원리로서의 권리금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얘기이자, 사실상 현재 사장이 손실을 떠안으란 셈이다.
경영권 프리미엄은 단순한 '웃돈'이 아니다. 회사의 지배권을 확보하면 인사·투자·사업 전략 등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따라온다. 그만큼 책임도 져야 하기에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인수자는 보통 일반 거래가보다 큰 값을 치른다. 이 차이가 바로 경영권 프리미엄이다.
모든 소액주주에게 동일하게 프리미엄을 나눠주면 역설이 생긴다. 책임은 지배주주가 지지만, 권리금은 일반주주까지 함께 나누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권리만 있고 책임은 없는 구조로, 시장에서는 포퓰리즘적 규제로 비칠 수 있다.
유럽과 일본은 의무공개매수가 제도권에 안착하며 시장이 적응했지만, 그대로 가져오기 전에 한국 시장과의 구조적 차이는 살펴봐야 한다. 단순 이식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인수자가 모든 주주 지분을 사들인 뒤 상장을 유지하기 어려워져 상장폐지할 수 있고, 지분을 25% 미만으로 쪼개 보유하는 사례도 늘 수 있다.
무엇보다 사모펀드는 출구 전략이 막히면 결국 막대한 자본금을 운용하는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이미 투자한 자금을 회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경영·기술·데이터가 국경 밖으로 유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빈 자리는 결국 채워지기 마련이다. 사모펀드가 빠져나간 공백은 결국 현금 동원력이 압도적인 대기업이 차지하게 된다. 제도의 선의가 해외 자본 유출뿐 아니라, 국내 대기업 총수들의 지배력 강화라는 또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얘기다.
선의로 시작한 제도가 결국 국내 사모펀드의 회수 경로는 좁아지고, 자본력 있는 해외 투자자에게 기회가 돌아가거나 대기업 총수들이 반사이익을 누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최소한 세컨더리 딜만큼은 예외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배경이다.
사모펀드를 향해 비판의 화살을 쏟는 건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사모펀드가 악이라는 프레임만으로는 우리가 얻고자 하는 소수주주 보호와 시장 안정 등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악마화가 통쾌할 수 있으나, 제도는 감정이 아니라 냉정한 설계에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물론 MBK파트너스가 모든 것을 잘했다는 뜻은 아니다. 홈플러스 사태에서의 사회적 책임을 무겁게 짚어야 한다. 하지만 MBK의 누군가가 감옥에 간다고 해서 잃어버린 10만명의 일자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책임 추궁과 제도 손질은 별개다.
세밀함을 잃은 제도는 독이 된다. 의무공개매수제는 한국 자본시장의 인수·합병 판도를 바꿀 제도다. 시장 안정화라는 명확한 원칙을 세우되, 포퓰리즘의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 치킨집의 권리금처럼, 들어올 때도 나갈 때도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룰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