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상혁 신한은행장이 정부의 '생산적 금융' 확대 정책에 가장 먼저 구체적인 행동으로 응답하며 시장 선점에 나섰다. 담보 위주의 전통적 여신 관행에서 벗어나 미래 성장 가능성을 보는 '선구안'을 갖춰야 한다는 경영철학이 반영됐다. 이미 확보한 기술금융 지위를 공고히하고 전문화된 조직과 외부 인재 영입으로 미래산업 금융의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정부의 '초혁신경제 15대 선도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시중은행 중 가장 먼저 전담 '애자일(Agile)' 조직을 신설했다.
신한은행 전략의 핵심은 속도와 전문성이다. 전통적인 태스크포스(TF)가 아닌 '애자일' 조직을 채택한 것은 기술 산업의 역동적인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경직된 위계질서에서 벗어나 외부 전문가의 피드백을 유연하게 반영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이 조직은 △15대 프로젝트 영역별 연구·조사 △정부 투자 유망업체와 가치사슬 내 우량기업 발굴 △산업분석 및 심사지원 기능 강화 △초혁신경제 금융지원 프로그램 개발 등을 담당한다.
정 행장의 이번 전략은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이 9월 10일 이재명 대통령 앞에서 "담보 위주의 쉬운 영업을 하는 원인은 선구안이 없기 때문"이라며 "산업 분석에 대한 능력도 개척해야 한다"고 약속한 지 불과 12일 만에 구체화된 것으로, 실행력과 속도감에서 타 은행과 차별화되고 있다.
정 행장은 조직의 전문성을 자본이 아닌 '사람'에서 찾겠다는 의지도 명확히 했다. 신한은행은 신설 조직을 위해 첨단 소재·부품, 신재생에너지 등 관련 산업에서 5년 이상 근무했거나 벤처캐피탈(VC)에서 5년 이상 운용 및 심사 경력을 쌓은 외부 전문가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인재 영입을 넘어 조직 전체의 심사 역량을 상향 평준화하려는 '지식 이전' 전략으로 평가된다.
신한은행의 전담 조직은 정부가 추진하는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와 강력한 시너지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반도체, 초전도체,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첨단 산업 및 미래혁신 기업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신한은행은 전담 조직의 전문적인 분석과 심사 역량을 바탕으로 정부 정책자금이 투입되는 유망 기업들을 조기 발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신한은행의 생산적 금융 전략은 이미 검증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은행연합회 자료를 보면 8월 말 기준 신한은행의 기술신용대출(TCB) 잔액은 41조2209억원으로 4대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 중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상반기 기준 신한은행의 중소기업(SME) 대출 잔액은 141조1098억원으로 작년 말(140조6059억원) 대비 5000억원 이상 증가했다. 원화대출금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3.7%로 4대은행 평균(42%)보다 높은 수준이다. 더욱이 같은 기간 위험가중자산(RWA)도 3조8524억원을 줄여 생산적 금융 확대를 위한 여력도 확보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식재산권(IP)을 담보로 자금을 지원하는 '성공두드림 IP 담보대출', 벤처기업 인수합병(M&A) 자문 서비스, 일본 VC와의 공동 펀드 결성, 아프리카 친환경 에너지 펀드 투자 등 국내외를 넘나드는 혁신 금융 프로그램을 접목해 시너지를 극대화할 계획이다.
정 행장은 '초혁신경제 15대 선도 프로젝트'를 밀착 지원하며 규제 당국과 우호적 관계를 형성하고 산업의 유망 기업을 선점해 기업금융(IB) 및 투자금융(CIB) 부문의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겠다는 복안이다. 이자 장사라는 비판에서 벗어나 모범적인 은행이란 인식을 심어주는 효과적 홍보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신설된 애자일 조직은 기존에 흩어져 있던 혁신 금융 관련 역량들을 한데 모아 가속화하고 체계화하는 통합자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며 "가장 유망한 기업들이 가장 먼저 신한은행을 찾게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미래 산업 금융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