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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상법이 기업들의 경영전략에 어떤 파문을 일으킬지 깊이 있게 분석합니다.

상법개정으로 힘을 얻은 박철완 전 상무가 다시 금호석유화학을 겨냥했다. 그는 자사주 담보 교환사채(EB) 발행 가능성을 문제 삼아 공세에 나섰지만 금호석유화학은 EB 발행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사실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새 제도적 기반을 확보한 박 전 상무의 움직임은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경영권 구도에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없는 패'로 금호석유화학 경영권 판 흔드나
1일 재계에 따르면 박 전 상무는 지난달 30일 금호석유화학이 자사주를 담보로 EB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그는 입장문에서 '자사주 담보 EB 발행은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수단이자 주주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라며 '만약 이사회가 해당 안건을 추진할 경우 관련 이사들을 상대로 민·형사 책임까지 추궁하겠다'고 밝혔다.
EB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채권이다. 자사주를 담보로 발행할 경우 향후 시장에 주식이 풀리면서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가 희석될 수 있다. 이에 박 전 상무의 주장은 표면적으로는 주주가치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반발처럼 보인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박 전 상무가 공격의 명분으로 내세운 EB의 실체가 희박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호석유화학이 EB 발행을 공식화하거나 추진을 전제로 검토한 사실은 없다. 설령 내부적으로 논의했다고 해도 수많은 자본조달 옵션 가운데 하나일 뿐 실행 단계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회사 측의 입장이다. '금호석유화학도 결국 EB를 추진한다'는 인식이 시장에 퍼지는 것 자체가 회사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EB 논란이 박 전 상무의 정치적 명분 쌓기라는 해석이 나온다. EB는 자사주 활용, 자본조달의 투명성, 지배구조의 공정성 등 민감한 쟁점을 동시에 건드리는 사안이라 그만큼 소액주주와 기관투자가의 반응을 이끌어내기가 쉽다.
박 전 상무는 2021년 박찬구 현 회장 체제에 도전한 적이 있다. 이른바 '금호석유화학 조카의 난'이다. 그는 배당 확대와 지배구조 개선을 내걸었지만 표 대결에서 밀리며 이사회 진입에 실패했다. 이후 경영 일선에서도 물러났다. 이에 금호석유화학 경영권 분쟁은 사실상 종결됐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존재하지 않는 EB에 대한 박 전 상무의 공세는 채권 발행을 막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경영권 전선에 복귀하기 위한 포석에 가깝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또한 배후에는 이사회 재진입이라는 근본적 목표가 자리하고 있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경영권 분쟁 끝나지 않았다"
박 전 상무가 다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배경에는 최근 통과된 상법개정이 자리한다. 8월 국회를 통과한 2차 상법개정안은 결과적으로 금호석유화학 경영진의 방어벽을 허물고 박 전 상무에게 유의미한 공격카드를 쥐여주는 셈이 됐다.
대표적인 장치가 집중투표제 의무화다. 집중투표제는 기존 '1주 1표' 방식과 달리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고 이를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는 제도다. 예컨대 이사 3인을 선출할 경우 1주를 가진 주주는 총 3표를 특정 후보에게 집중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 행동주의펀드나 소액주주, 외국계 기관들이 힘을 모을 경우 대주주 중심으로 구성된 기존 이사회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이 크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도 부담 요인이다. 감사위원 2인을 소수주주가 따로 선출할 수 있게 되면서 경영진을 견제하는 목소리가 이사회에서 제도적으로 강화됐다. 투명성·회계 감시 기능을 맡은 감사위원회가 소수주주연합에 장악될 경우 회사 운영에 상당한 제약이 따를 수 있다.
금호석유화학이 보유한 자사주 14% 역시 논란의 불씨가 되고 있다. 자사주는 원래 소각을 통해 주주가치를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되지만, EB 발행이나 스와프 같은 다른 방식으로 쓰일 경우 주주권 침해 논란이 불가피하다. 이번 상법개정으로 소수주주의 권리가 강화된 만큼 자사주 활용에 대한 박 전 상무의 공격 수위는 한층 높아질 수 있다.
실제로 박 전 상무는 "경영권 분쟁은 끝나지 않았다"며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전자투표제 등을 적극 활용해 소수주주의 지지를 이끌어내겠다"고 밝혔다. 이는 과거와 달리 제도적으로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한편 박 전 상무가 EB를 문제 삼은 것과 달리 금호석유화학의 실제 정책은 자사주 소각을 통한 주주환원이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해 보유 자사주의 절반을 3년에 걸쳐 소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 처분을 완료했고 내년 3월에는 나머지 3분의1의 소각이 예정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