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완 우리은행장이 '기업금융 명가' 재건을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모회사 우리금융지주가 정부의 '생산적 금융' 확대 정책에 발맞춰 금융권 최대 규모인 80조원 투입을 약속한데 따른 구상이다. 전통의 강자를 재차 꿰차기 위해 정 행장은 본인의 주특기인 중소기업 영업 부문을 중심으로 실적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우리은행은 "우리의 뿌리인 '기업 지원'의 가치를 되살리고, 디지털 플랫폼 우위를 바탕으로 첨단산업과 중소기업을 아우르는 종합 금융 생태계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우리금융이 발표한 '미래동반성장 프로젝트'의 핵심 실행 주체로서 기업대출 비중을 현재 50%에서 60%까지 확대하고 주택담보대출 중심의 영업구조를 첨단산업 중심 기업금융으로 과감히 전환한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금융은 이번 정부 정책과 관련, 향후 5년간 생산적 금융에 73조원, 포용금융에 7조원 등 총 80조원의 자금을 투입한다. 이는 국내 금융권에서 발표된 계획 중 가장 구체적이고 규모가 크다.
전략의 핵심은 우리은행의 주력 사업인 여신 기능을 활용한 56조원 규모의 '전략적 융자'에 있다. 단순한 대출 확대를 넘어 명확한 목표를 설정한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또 수도권 집중 현상을 극복하고 지역 균형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지역소재 첨단전략산업 육성'에 16조원을 배정했다. 이외에도 혁신 벤처기업과 수출기업 지원에 각각 11조원과 7조원을 공급한다.

무엇보다 우리은행은 중소기업 대출을 크게 늘릴 전망이다. 기업대출 비중을 현재 50%에서 60%까지 확대하고, 기존 4% 수준이던 기업대출 성장률은 1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제시하면서다.
2분기 기준 우리은행의 원화대출금에서 중소기업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9.4%로 4대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 가운데 가장 낮다. 그동안 대기업 금융에 집중하면서 상대적으로 중소기업 대출 비중이 낮았기 때문이다. 다만 상반기 보통주자본(CET1) 비율 관리를 위해 위험가중자산(RWA)을 줄여놓은 상태로, 하반기 정 행장이 중소기업 영업 실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표적으로 우리은행은 케이테크(K-Tech) 프로그램에 19조원을 투입해 인공지능(AI), 바이오, 방산 등 첨단전략산업의 핵심 대기업부터 이와 연결된 중견·중소·벤처기업까지 아우르는 '가치사슬 금융'을 완성할 계획이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1차 협력사와 주요 부품 공급 중견기업을 연결 고리로 삼아 2차 협력사와 혁신 중소·벤처기업까지 아우르는 공급망 내 역할에 따른 맞춤형 금융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우리은행의 생산적 금융 전략에서 가장 주목할 도구는 디지털 공급망 금융 플랫폼 '원비즈플라자'다. 2022년 9월 금융권 최초로 출시된 이 플랫폼은 현재 7만8000여개 회원사를 확보했고 우리은행은 연내 10만 곳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런 목표는 정 행장의 리더십에 기반해 수립됐다. 올해 초 행장 취임 첫날 남대문시장과 기술혁신형 중소기업협회를 찾는 것으로 공식 일정을 시작한 그는, 이후에도 매월 산업 현장을 방문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은행은 생산적 금융 전환의 실행력 확보를 위해 AI 기반 경영시스템 전환을 추진한다. 기업여신 분야의 서류 등록부터 심사 지원·정보 검수·사후관리까지 모든 단계에 AI 에이전트를 도입하여 의사결정 효율성과 속도를 개선할 계획이다.

정 행장은 9월29일 열린 우리금융 최고경영자(CEO) 합동 브리핑에서 "(생산적 금융은) 금융회사가 기업금융을 활성화 하고 기업이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자금을 다양한 경로로 공급하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라며 "전통적 영업 시스템만으로는 부족하고, AI를 접목해야 생산적 금융이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이면서 효과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은행은 은행권 최초로 비정형 데이터 자산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1000만건 이상의 데이터를 거대언어모델에 학습시켜 상담·고객관리·기업 분석 등 다양한 AI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올해 금융권 첫 'AI 개발 지원 플랫폼' 구축에 착수하고, 디지털영업그룹 신설과 AI 전략센터 확대 개편으로 조직 체계도 정비했다.
우리은행은 생산적 금융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BIZ프라임센터에 AI, 반도체 등 업종별 전담팀을 배치하는 등 조직개편을 바탕으로 미래동반성장 프로젝트의 실행력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가계·주담대 중심에서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해 기업대출 비중을 늘리고 기업대출 명가로 기업과 동반성장할 것"이라며 "AI기반 경영시스템을 도입하고 건전성 관리를 강화해 80조원 규모의 생산적 금융과 포용금융 확대를 충실히 이행하겠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