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산업은행이 동남권 지역 기업을 겨냥한 투자전문 자회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 산업 생태계에 대한 직접투자 기능을 강화하려는 전략이다. 이재명 정부가 표방한 '생산적 금융' 기조에 맞춰 산업은행이 투자금융 기능을 제도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따른다.
22일 현재 산업은행 내부에서는 '동남권투자공사(가칭)' 설립을 유력히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남권투자공사는 중소·중견 제조업, 조선·기계·부품산업, 그리고 친환경·신소재 등 신성장 분야를 중심으로 한 자금 공급 체계를 구축하는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동남권투자공사는 산업은행의 자회사 형태로 세워질 전망이다.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은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산업은행이 자본금을 상당 부분 출자하게 되므로 (법인) 형태는 자회사로 가는 것이 맞다"며 "투자금융 역량을 지역 산업 현장에서 직접 수행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 입법으로는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해 6월 발의한 '동남권산업투자공사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있다. 법안에 따르면 초기 자본금은 3조원으로 정부, 지방자치단체, 산업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이 공동출자한다. 세부 사항은 민 의원과 금융위원회가 논의 중이다.
이번 구상은 지역 산업을 직접 지원할 수 있는 투자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궤를 같이한다. 금융위는 '생산적 금융 확산 전략'에 따라 정책금융기관의 직접투자 등 투자금융 기능을 점진적으로 확대한다는 복안이다.
이에 따라 산업은행은 기존 융자 중심 지원을 넘어 지분투자·공동펀드 조성 등 투자금융형 지원 모델을 도입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첨단전략산업 지원과 투자금융 강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혔으며, 지난해 9월 부산에 남부권투자금융본부를 신설하는 등 지역 투자금융 체계를 강화해 왔다.
앞서 박 회장은 "실물경제를 뒷받침하고 미래 성장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수단으로 금융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며 "대표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즉, 동남권투자공사가 정책금융 전환의 실질적 테스트베드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자회사 구조를 활용하면 본사의 위험가중자산(RWA) 부담을 완화하면서, 민간투자와의 공동 집행 구조를 확보할 수 있다.
지역 금융권과의 협업 구상도 함께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은행은 이미 한국해양진흥공사와 해양산업 금융지원을 위한 공식 업무협약을 체결했으며, 부산시 및 주요 지역 금융기관들과 지역 산업 전환 펀드 조성 등 협력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이미 KDB생명보험, 산은인프라자산운용 등 여러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과거 한국정책금융공사가 2009년 산업은행에서 분리됐다가 2015년 다시 흡수된 사례도 있다. 다만, 동남권투자공사는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이나 한국벤처투자 등 모펀드(Fund of Funds) 운용사와 달리 직접투자 중심 구조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동남권투자공사 설립은 산업은행이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수행해온 산업지원 기능을 지역 산업 현장으로 확장하는 실험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정부는 지방시대위원회를 통해 권역별 투자공사 설립을 제시한 바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동남권투자공사 설립은) 수도권 중심의 자금공급 구조를 지역 단위로 분산시키면서, 정책금융의 실효성을 높이는 시도"라며 "정책금융과 민간투자의 경계를 조정하는 이번 시도가 성과를 거둘 경우, 산업은행의 조직구조와 기능 체계에도 혁신이 뒤따를 가능성이 있다"고 바라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