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제작 =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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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이 지난해 도입한 첫 단백질 분해기술(TPD) 기반 항암 후보물질의 권리를 약 1년 만에 반환했다. 초기단계 기술에 대한 불확실성을 정리하고 임상 단계 파이프라인 중심으로 연구개발(R&D) 효율화를 꾀하려는 판단에서다. 다수 바이오벤처와 기술협력으로 파이프라인 외연을 넓혔던 회사는 올 들어 신규 협력과 출자 규모를 줄이며 오픈이노베이션 체계를 재정비하고 있다.

 

첫 TPD 파이프라인 1년여 만에 권리 반환

유한양행은 27일 유빅스테라퓨틱스와 지난해 체결한 전립선암 치료제 기술도입 계약을 해지했다. / 자료 = 공시
유한양행은 27일 유빅스테라퓨틱스와 지난해 체결한 전립선암 치료제 기술도입 계약을 해지했다. / 자료 = 공시

2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유한양행은 27일 유빅스테라퓨틱스와 지난해 체결한 전립선암 치료제 기술도입 계약을 해지했다. 이번 합의로 유빅스는 이미 수령한 선급금 50억원을 반환하지 않으며 유한양행도 추가 마일스톤(단계적 기술료)을 지급하지 않는다. 

앞서 유한양행은 작년 7월 유빅스로부터 안드로겐 수용체(AR)를 타깃으로 하는 전립선암 치료제 'UBX-103'을 도입해 개발을 추진해왔다. 회사는 당시 계약금 50억원을 포함해 총 1500억원 규모의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 UBX-103의 전 세계 개발·상업화 권리를 확보하며 항암 포트폴리오 확장을 꾀했다. 

TPD는 암세포 내 특정 단백질을 선택적으로 제거해 기존 약물이 단백질 활성을 억제하는 수준에 머물렀던 한계를 넘어선 기술이다. 업계에서는 '암 지우개'로 부르며 내성 극복과 병용 치료 가능성 측면에서 차세대 항암 패러다임으로 평가하고 있다. 

유한양행 역시 항암 분야를 R&D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는 만큼 UBX-103 도입과 함께 신모달리티 시장 진입을 노렸다. 특히 김열홍 R&D 총괄 사장은 TPD를 차세대 핵심 기술로 꾸준히 언급하며 신성장동력으로 키울 의지를 밝혀왔다. 이에 업계 안팎에서는 UBX-103를 넥스트 렉라자로 주목하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기술반환으로 유한양행의 첫 TPD 파이프라인에 대한 기대감은 1년 만에 꺾이게 됐다.

회사는 임상 진입을 준비하면서 효능·안정성 데이터 확보 속도와 글로벌 시장 경쟁 구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끝에 기술반환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본래 UBX-103는 올 하반기 임상1상 진입이 예정돼 있었으나 여전히 전임상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임상 단계로의 진입 및 계약 품목의 상업과 가능성에 대해 양 사가 전략적 판단하에 계약을 해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픈이노베이션 전략 재편 신호

유한양행의 최근 2년간 주요 기술도입·공동연구 계약 현황 / 자료 = 유한양행 2024-2025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유한양행의 최근 2년간 주요 기술도입·공동연구 계약 현황 / 자료 = 유한양행 2024-2025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이번 계약 해지는 유한양행이 R&D 비용 효율화와 오픈이노베이션 전략 재편에 나선 흐름으로 해석된다. 초기 단계 도입 자산에 대한 개발 리스크를 줄이고 이미 임상 단계에 진입했거나 상업화 가능성이 검증된 파이프라인에 역량을 집중하려는 움직임이다.

유한양행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렉라자 후속 파이프라인 발굴을 위해 총 2500억원 투자 계획을 밝히며 바이오벤처와 6건 이상의 기술도입 및 연구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1월 인벤티지랩과 장기지속형 비만신약 공동연구 계약을 시작으로 3월엔 사이러스·카나프로부터 전임상 단계 SOS1 타깃 고형암 치료제를 도입했다. 이어 7월엔 유빅스의 UBX-103 도입하고 프레이저와는 TPD 표적항암제 공동연구를 체결해 두 건의 TPD 파이프라인을 확보했다. 프로젠과는 7월과 11월 각각 면역항암제, 면역질환 치료제 연구 협력 계약을 맺으면서 파트너십을 강화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신규 기술협력이 눈에 띄게 줄었다. 지난 4월 지피씨알과 비만치료제용 저분자화합물 3종 공동연구 및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것을 제외하면 뚜렷한 협업 발표가 없는 상황이다. 

바이오벤처 지분투자 역시 제한적이었다. 회사는 올 상반기 기준 △프로젠 30억원 △제이인츠바이오 20억원 △온코마스터 10억원 △킴셀앤진 10억원 등 총 4개 바이오텍에 70억원의 지분 투자를 집행했으나 이 중 신규 포트폴리오는 킴셀앤진 한 곳뿐이다. 신규 딜이나 추가 출자보다는 기존 투자·협력 포트폴리오의 조정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반면 유한양행은 임상에 진입한 파이프라인의 개발에는 집중하고 있다. 회사는 이달 15일 알레르기 치료제 '레시게르셉트' 임상2상 시험계획(IND)을 승인받았다. 이번 임상은 국내를 포함해 유럽과 아시아 주요 지역에서 만성 자발성 두드러기 환자 150명을 대상으로 12주간 위약 대비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한다. 다국가 임상 특성상 투입되는 연구비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돼 신규 기술도입보다 임상 단계 자산의 성과 창출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유한양행 측은 "신약 개발 과정에서 집중해야 할 분야를 선별해 효율적으로 집행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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