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실트론의 300㎜ 실리콘 웨이퍼 제조 시설. /사진=SK실트론
SK실트론의 300㎜ 실리콘 웨이퍼 제조 시설. /사진=SK실트론

 

SK실트론이 8년만에 내부 출신 대표이사(CEO)를 선임했다. 신임 CEO로는 미국 자회사 SK실트론CSS를 이끌던 정광진 사장이 내정됐다. 2017년 SK그룹 편입 이후 첫 내부승진이 이뤄지며 전략 중심에서 기술 중심으로 리더십 축이 이동했다. 최태원 회장이 주도해온 그룹 차원의 '리밸런싱' 기조 속에서 기술 내재화와 기업가치 회복에 방점을 찍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30년 현장 누빈 기술통…'본업 경쟁력 회복' 방점

3일 SK그룹에 따르면 정 신임 사장은 1970년 대구 출생으로 경북대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 전신인 LG실트론에 입사했다. 약 30년간 반도체 소재와 웨이퍼 사업을 담당하며 실무와 경영을 두루 거친 현장형 인물이다.

SK실트론에서는 신사업추진실장, CSS사업관리실장, 경영지원담당, SEA영업담당 등 주요 보직을 거치며 기업가치 제고에 핵심 역할을 맡아왔다. 최근에는 SK실트론CSS 대표로서 실리콘카바이드(SiC) 웨이퍼 사업의 기술 고도화와 제품개발을 주도했다. 현지 인력 조직문화 혁신과 공급망 안정화에도 성과를 냈다는 평가다.

이번 인사는 그간의 흐름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SK실트론 CEO 자리는 그룹 편입 이후 줄곧 SK㈜ 전략본부나 출신 인사들이 맡아왔다. 장용호·이용욱 전 사장 모두 SK㈜ PM실 출신으로 그룹 차원의 사업 재편과 투자 구조 조정에 강점을 지닌 인물들이었다.

이는 당시 SK실트론이 그룹 내에서 반도체 소재 사업과 배터리 밸류체인을 연결하는 중간 축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각 사업 간 자본 배분과 투자 효율을 조율해야 하는 위치였던 만큼 그룹 전체 포트폴리오를 균형 있게 관리할 수 있는 전략형 인사가 필요했다. 자연스럽게 경영진 구성도 재무·전략에 강점을 지닌 인물들로 채워졌다.

반면 정 신임 사장은 30년 가까이 현장을 지켜온 기술 중심형 CEO다. SK실트론이 그간 그룹 전략의 한 축으로 기능했다면 이번 인사는 본업 경쟁력 강화와 기술 정체성 회복에 방점을 찍은 결정으로 평가된다. 

 

실적 넘어 기술력·시장 신뢰 입증 과제

이번 인사는 SK실트론의 향후 매각 가능성과도 맞물려 있다. SK그룹은 올해 초부터 복수의 인수 후보를 접촉하며 SK실트론 경영권 지분 매각을 추진해왔다. 현재 두산그룹이 SK㈜가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70.6% 인수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최태원 회장이 개인 명의로 보유한 29.4%는 매각 대상에서 제외됐다. 

SK실트론 매각에 있어 최 회장의 이혼 재산분할이 불확실성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그러나 지난달 16일 대법원이 사건을 파기환송하면서 재산분할 규모가 줄어들 여지가 생겼다.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 SK실트론 지분 정리나 매각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아지게 됐다. 

여기에 그룹 차원의 리밸런싱까지 어느 정도 마무리된 만큼 서두른 매각보다 기업가치 회복이 정 신임 사장의 최우선 과제가 될 전망이다. 기술 경쟁력과 재무체력을 끌어올리는 쪽으로 전략을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SK실트론의 매출은 반도체 업황 둔화와 전방 수요 감소로 다소 정체된 상태지만 생산 효율화와 실리콘카바이드 웨이퍼 사업 확장을 병행하면 수익성 회복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 신임 사장이 SK실트론CSS를 이끌며 확보한 기술력과 운영 경험이 본사 경영에 적용될 경우 단기적으로는 수율 개선과 원가 절감 효과가, 중장기적으로는 신제품 포트폴리오 확대에 따른 실적 상승이 기대된다. 여기에 전력반도체 시장 확대에 따라 SiC 웨이퍼의 수요가 증가세를 보이는 점 역시 긍정적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SK실트론의 실적 개선이 가시화될 경우 현재 4조∼5조원 안팎으로 추산되는 기업가치가 재평가될 수 있으며 향후 매각 협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며 "정 신임사장은 단순한 실적 개선을 넘어 기술 경쟁력과 신뢰를  함께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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