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 사천 본사 / 사진 = 한국항공우주 제공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표이사 공석이 5개월 차를 맞았다. 초대 임인택 사장부터 8대 강구영 사장까지의 전 기간을 통틀어 가장 긴 공백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된 '낙하산' 인사에 계엄·정권 교체가 겹치며 리더십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강구영 전 사장은 7월 1일 중도 사임했다. 이날을 기준으로 보면 KAI 대표이사 자리는 약 130일째 공석이다. 차재병 부사장이 대표이사 직무대행과 고정익기 부문장을 겸임하고 있지만 노조의 평가는 박하다. 경영·수출·기술개발·노사관계 등 모든 분야에서 의사결정이 멈춰 선 '무정부 상태'라고 평가했다.

자료 = 블로터 DB

 

정치 일정에 발 묶인 KAI 대표 선임

이번 공백은 역대 사장 교체기와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역대 대표이사 선임 과정을 보면 대부분의 공백은 길어야 한 달 안팎이었고 임기 만료와 동시에 후임이 바로 취임한 사례도 적지 않다. 

직전 최장 공백은 하성용 전 사장과 김조원 전 사장 사이였다. 하 전 사장은 2017년 7월 20일 퇴임했고, 김 전 사장은 같은 해 10월 25일 취임해 97일간 대표이사 공석이 이어졌다.

긴 공백의 배경은 KAI 특유의 지배구조에 있다. 올 반기보고서 기준 KAI 최대주주는 한국수출입은행(지분율 26.41%)이며 2대 주주는 외국계 투자사 피델리티(9.06%), 3대 주주는 국민연금공단(8.83%)이다.

이처럼 지분 구조만 보면 사실상 공기업에 가까운 형태다. 이 때문에 대표이사 선임은 정권 교체기마다 △여권 인사 낙점 △인사 검증 △낙하산 논란이라는 수순을 반복해 왔다. 5대 사장인 하성용 전 대표를 제외하면 대부분 정권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인사였다.

초대 임인택 사장은 상공부·교통부 관료 출신으로 KAI 사장 이후 건설교통부 장관에 임명됐다. 길형보(2대) 사장은 군 출신 보은 인사, 정해주(3대) 사장은 장관급 직위를 맡았던 인물이다. △김홍경(4대, 이명박 캠프 인사) △김조원(6대, 여권 인사) △안현호(7대, 지식경제부 차관) △강구영(8대, 윤석열 캠프 인사) 등도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이번에도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는 불법 계엄 후 정권교체, 최대주주 대표 선임 지연이 더해졌다. KAI 사장을 임명할 수출입은행이 직무대행 체제다. KAI 대표이사 인선은 이 '상위 인사' 퍼즐이 맞춰질 때까지 속도를 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부담만 떠안은 '직무대행'…큰 결정은 한계

KAI는 현재 차재병 부사장이 대표이사 직무대행과 고정익기 부문장을 동시에 맡고 있다. 당초 KF-21, T-50, FA-50, 수리온 등 고정익기 사업을 총괄하던 실무 책임자였지만 계엄 이후 대표이사 공석이 우려되는 상황이 되자 KAI 이사회는 겸임 기반을 미리 만들어 뒀다.

문제는 기존 업무의 무게와 직무대행의 한계를 동시에 떠안았다는 점이다. KAI 사업 구조를 보면 지난해 전체 매출에서 고정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47%다. 차세대 전투기(KF-21) 개발·양산, 폴란드형 FA-50 개발·양산, 기존 군용기 양산·정비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 본업만으로도 부담이 큰 자리다. 여기에 전략과 재무, 노사, 대외 관계까지 책임지는 역할이 더해졌다. 

직무대행 체제의 한계도 있다. 대규모 투자, 조직 개편, 인수합병(M&A) 등 굵직한 결정을 밀어붙이기 어렵다. 방산 수출, 대형 사업 입찰, 해외 합작법인 설립 등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빅딜'은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공백이 길어질수록 KAI의 의사결정 속도와 대외 협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KAI 노조도 이같은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노조는 최근 성명을 내고 대표이사 부재로 인해 경영·수출·기술개발·노사관계 등 모든 분야에서 의사결정이 멈춰 선 '무정부 상태'가 됐다고 주장했다. 또 이로 인해 △해외 파트너 신뢰 저하 △신규 계약 지연 △기술 인허가 차질 등이 발생하며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정치 상황과 무관하게 산업의 운영은 멈춰선 안 된다"며 "외풍을 초래할 정치형 인사가 아니라 현장을 깊이 이해하고 국내외 항공사업을 직접 수행해 성과를 만들어온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전문경영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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