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지고 환자들의 약국 뺑뺑이도 다시 나타날 것이다."

최근 취재 중에 만난 모 비대면진료 플랫폼 기업 고위임원의 말이다. 이 같은 언급에는 제도 설계의 구조적 불평등이 요약돼 있다. 비대면진료 법제화가 '산업의 제도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도심 대형의원 편중을 고착시키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제도를 통한 공정이 아니라 제도를 통한 불균형이 나타나는, 정부가 초래한 '공정의 역설'을 현장은 체감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시범사업 지침을 개정하며 개별 의료기관의 전체 진료 중 비대면 비율을 30%로 제한했다. 표면적으로는 과잉진료를 막고 대면진료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지만, 실제로는 기득권을 더 견고하게 만드는 규제로 작동한다. 진료 건수가 많은 대형의원과 문전약국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비대면 처방을 소화할 수 있게 되지만, 매약 중심의 약국이나 지방 의원은 참여 기회조차 줄어들기 때문이다.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제도가 공정에서 더 멀어지는 결과를 낳는 셈이다.

애초에 비대면진료의 취지는 '의료접근성 제고'였다. 그러나 '전체 진료 대비 30%'라는 일률적 잣대는 지역별 의료 인프라 차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도심 대형병원은 자연스럽게 한계치까지 진료를 채우겠지만, 소도심이나 읍면 단위 의원은 참여 자체가 제한된다. 결국 정부는 '제도화'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든 셈이다.

피해는 의료기관보다 환자에게 더 직접적으로 돌아간다. 비대면진료를 시도하던 병원이 30% 제한에 걸리면 환자는 새 병원을 찾아야 하고, 처방받을 수 있는 약국을 다시 검색해야 한다. 플랫폼 접속이 끊기거나 약국 연결이 불가능하면 '약국 뺑뺑이'가 다시 시작된다. 정부는 안전망을 강조하지만 환자는 불편을 떠안아야 한다.

이번 개정안은 '비대면진료 전담병원'의 출현을 막겠다는 목적에서 출발했지만,  부작용이 시장 전체를 옥죄고 있다. 정부는 규제의 선을 긋는 데만 집중했고, 이에 지역·진료과·환자군별 특성을 고려한 세밀한 설계가 부재했다. 소득구간에 따라 세율을 달리하듯 의료환경에 맞춘 차등적용이 필요했지만 일괄제한으로 끝났다. 포지티브 규제라는 명분으로 탁상행정이 강화된 꼴이다. 

관리감독의 실효성도 의문이다. 의료기관별 비대면 비율을 누가, 언제, 어떤 기준에 따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을까. 시스템 구축이 불완전한 상태에서 행정적 부하만 커질 가능성이 높다. 위반 시 책임주체가 불분명한 만큼 병원과 약국은 선제적으로 참여를 줄이는 '보신'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다. 불가능한 관리, 책임질 수 없는 규제다.

문제는 이 같은 구조가 혁신을 위축시킨다는 점이다. 비대면진료로 의료 사각지대를 메워온 플랫폼들은 새로운 서비스 모델을 제시할 동력을 잃었다. 정부는 제도 안정을 외치지만 산업은 불안정한 상황이다. 환자접근성을 명분으로 내세운 규제가 역설적으로 이를 축소하고 있다.

결국 법제화는 됐지만 시장은 작아질 위기에 맞닥뜨렸다. 정부는 제도화의 성과를 강조하지만, 그 결과 환자가 직면할 의료환경은 도시 중심의 편중된 시장구조다. 비대면진료는 의료혁신의 상징에서 행정통제의 산물로 전락했다. 공정의 이름으로 불평등이 제도화된 지금 '30%제한'은 의료의 균형이 아니라 산업의 불균형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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