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간호사들은요. 방광염에 걸려가면서까지 병원을 누볐어야 했어요. 진짜 일하는 동안은 화장실 갈 시간도 안 나오거든요. 코로나19 팬데믹을 버티고 나니 의정갈등이 터지더라고요. 그렇게 두 차례 고생하다 보니 이제 남은 동료도 몇 없네요. 그래도 저희는 여전히 병원에서 '부품' 취급을 받고 있어요. 간호법이 이런 현실을 얼마나 바꿔줄지 모르겠네요."

그동안 취재 중 들려온 간호사들의 토로는 단순한 불만의 표출이 아니었다. 수년간 의료현장을 지탱해온 간호사들이 얼마나 취약한 위치에 있는지 보여주는 현실의 단면이다. 의료현장에서는 의사 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간호사들에게 '대리행위'를 시키는 일이 관행처럼 굳어져왔다. 환자 처방 입력, 봉합 보조, 수술 중 투약 등 명백히 의사 고유 업무에 해당하는 일들이다. 법적으로는 어긋나지만 병원은 '지시'라 불렀고 간호사들은 '협조'로 받아들여야 했다.

문제는 그 지시가 간호사 개인의 책임으로 귀결된다는 점이었다. 실제 의료분쟁이나 사고가 발생하면 현장 간호사는 '병원의 지시였다'는 말을 입증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법적 처벌과 윤리적 비난은 간호사 개인이 감당해야 했다. 의사는 면책되고 병원은 침묵하는 꼴이다. 그동안 이같이 '비겁한 요구'가 불법과 책임이 분리된 구조 속에서 반복돼 왔다. 간호사들은 병원에서 필연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보호할 방안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팬데믹은 이 문제를 극단적으로 드러냈다. 수많은 간호사들이 과로와 위험을 감수하며 의료공백을 메웠지만 돌아온 것은 탈진과 이직뿐이다. 전공의들이 복귀하자마자 진료보조(PA) 간호사들은 하루아침에 '불법인력'으로 몰렸다. 위기 때만 '필요한 존재'로 대우받고 평상시에는 제도 밖으로 밀려나는 구조적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제도가 보호하지 않으면 현장은 언제든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간호법은 이런 구조에 제동을 걸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신설된 '진료지원업무' 조항은 간호사가 어디까지 의사의 의료행위를 도울 수 있는지를 명확히 규정했다. 그 경계선은 단순히 '업무 구분'이 아니라 '책임 구분'의 선언이기도 하다. 법은 이제 간호사에게 '거부할 권리'를 부여했다. 불법적 지시나 업무를 요구받았을 때 "그건 제 업무가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명확해진 것이다.

이 변화는 의료현장의 문화 자체를 바꾸는 시발점이기도 하다. 그동안 병원은 간호사의 희생과 침묵을 효율성으로 포장했다. 인력구조상 의사의 공백을 대체하기 위해 간호사를 '유연한 인력'으로 활용했지만, 그 유연함은 법적 사각지대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간호법이 제도화된다는 것은 이제 그 유연함이 더 이상 '묵인'의 영역에 머물 수 없음을 뜻한다. 병원은 더 명확한 역할분담과 책임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물론 간호법이 간호계의 처우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이 생겼다고 해서 의료현장의 관행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이미 '진료지원'의 범위를 놓고 의료계와 간호계의 해석이 갈리고 있다. 정부가 조정방안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근본적인 과제는 '누가 어떤 책임을 어떻게 지느냐'를 분명히 하는 일이다. 제도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제도를 실질적으로 작동시키고자 하는 실행 의지다.

간호법의 진정한 의미는 '업무 확대'가 아니라 '책임경계의 회복'에 있다. 이제 간호사는 병원의 비겁한 요구를 거부할 수 있게 됐다. 제도는 약자의 방패로 존재할 때 비로소 정의롭게 작동한다. 법의 취지가 현장에서 살아 움직이기 위해서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다시 구조의 중심에 서야 한다. 그래야만 의료는 비로소 공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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