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대금융(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5년간 508조원 규모의 자금을 생산적·포용 금융에 투입한다. 거대한 규모와 함께 각 금융지주가 각기 다른 정체성을 걸고 경쟁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요구를 비즈니스 모델을 재정립하고 강화하는 기회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자본규제 완화 기조도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10일 5대금융에 따르면 가계대출에 편중된 기존 포트폴리오의 위험을 분산하고 국가 성장 동력과 연계된 부문으로 적극적으로 자본을 배치할 것으로 전망된다. 구체적으로 △KB금융 110조원 △신한금융 110조원 △농협금융 108조원 △하나금융 100조원 △우리금융 80조원 등이다.
국민성장펀드 각 10조원, 생산적 금융 전담조직 신설
겉으로 드러난 공통점은 명확하다. 5대금융 모두 정부 주도의 '국민성장펀드'에 정확히 10조원씩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는 총 150조원의 국민성장펀드 가운데 민간·국민·금융권으로 구성되는 75조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통일된 대응 의지로 풀이된다.
또 생산적 금융의 실행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담할 새로운 기구를 신설하는 거버넌스 개편도 실행했다. KB금융 '그룹 생산적금융 협의회', 신한금융 '생산적 금융 프로젝트관리조직(PMO)', 우리금융 '첨단전략산업금융 협의회', 하나금융 '경제성장전략 태크스포스(TF)', 농협금융의 '생산적금융특별위원회' 등이다.
속내는 자체 투자금...차별화 전략 주목
5대금융의 전략적 차이는 10조원의 공통분모를 제외한 나머지 자금의 배분에서 나타난다. 특히 각 금융그룹이 책정한 '그룹 자체 투자' 예산이 핵심이다. KB금융과 농협금융은 나란히 15조원이라는 가장 큰 규모의 자체 투자금을 책정했다. KB는 기업금융(IB) 역량을 활용해 펀드 결성, 벤처, 인프라 투자에 집중할 계획이다. 반면 농협은 '농업·농식품 기업' 투자라는 타사가 모방 불가능한 고유 영역에 집중한다.
신한금융은 자체 투자금 범위를 10조~15조원으로 설정했다. 경제상황 변화를 감안하며 그룹 자체적 금융지원 규모를 탄력적으로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5조원 규모의 대전·세종·충북 광역철도(CTX) 사업과 배터리 에너지 저장 시스템(BESS), K-콘텐츠·푸드 등 미래지향적 프로젝트에 자금을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하나금융은 10조원의 자체 투자는 구조적으로 가장 독특하다고 평가된다. 6조원을 '민간펀드 결성 기여'에 배정했기 때문이다. 이는 직접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규모의 민간자본을 유치할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금융은 가장 보수적으로 7조원을 제시했다. 우리투자증권이 다른 증권사와 비교해 아직 규모 측면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에 투자는 대규모 펀드 구조화보다는 케이테크(K-Tech, 인공지능·바이오·방산) 영역 내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PE·벤처 투자에 집중될 전망이다.

강점 내세운 '전략 대출'…규모와 목표 각양각색
생산적 금융 재원 가운데 대출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방향성을 보여준다. KB금융은 68조원의 대출금을 '첨단전략산업' 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금융 주선, '5극 3특 전략' 에 부합하는 지역 인프라 프로젝트 등에 집중한다. 업계 1위의 자본력을 활용해 대규모 국가기간산업을 주도하는 '안전한 대형 베팅' 전략으로 평가된다.
신한금융은 72조~75조원으로 최대 대출 규모를 설정했다. 특히 "부동산을 제외한 일반 중소·중견기업" 을 대상으로 명시, 특정 산업을 고르기보다 비부동산 중소기업(SME) 전반에 자금을 공급하는 광범위한 포트폴리오 전환 전략을 시사한다.
하나금융의 64조원 중 가장 차별화된 부분은 14조원을 '수출입 중소기업' 에 구체적으로 할당한 점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압도적 우위를 가진 외환 및 무역금융 부문의 지배력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우리금융의 금액은 56조원으로 가장 적지만 케이테크 가치사슬 프로그램'(19조원), 지역소재 첨단전략산업(16조원), 혁신 벤처기업 지원(11조원) 등 구체적인 프로그램으로 명확히 나눴다. 기업금융 명가 재건이라는 목표를 생태계 조성을 통해 이루겠다는 뜻이 담겼다. 농협금융은 첨단전략산업·지역특화산업·벤처기업 등으로 기업 성장지원 대출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포용금융 '틈새'를 공략하라"
KB금융과 농협금융은 다양한 금융 및 채무지원이라는 포괄적인 용어를 쓰면서 기존 사회공헌활동의 연장선이라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신한금융은 브링업 등의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제2금융권 대출자를 1금융권으로 전환시키는 고객 확보 전략을 추진한다. 또 하나금융은 청년, 다자녀가구 등 특정 계층을 겨낭한 목표 시장 상품을 개발해 틈새시장을 파고든다는 전략을 세워 포용금융 쪽에서도 능동적인 대처를 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우리금융의 포용금융 자금 비중이 약 8.8%로 가장 낮다. 한정된 자본을 생산적 금융에 집중해 기업금융을 재건하겠다는 목표가 강하다. 대신 신용등급 7등급 이하 저신용 고객에게 '0.3%p~1.5%p의 구체적인 금리 인하'를 약속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생산적·포용금융은 담보 기반 영업에서 성장기업·벤처·인프라 대출로 이동을 뜻해 궁극적인 성공은 리스크 관리에 달리게 될 것"이라며 "각 금융그룹이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정책적 요구에 얼마나 부응할지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