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11월 11일 09시 41분 넘버스에 발행된 기사입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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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들이 쌓아둔 현금자산이 올해 들어 반년 동안 6조원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증감을 기준으로 나눠보면 정확히 50대50으로 행보가 엇갈린 가운데 감소 폭이 큰 쪽에는 반도체와 자동차 등 대표 제조업체들이 이름을 올린 반면, 증가세가 뚜렷한 반대편에는 금융사들이 자리하며 대비를 이뤘다.

양쪽 모두 나름 좋은 실적을 거두고 있는 현실과 맞물려 보면 비슷한 호성적 속에서도 현금자산을 두고는 동상이몽이 펼쳐졌다는 얘기로, 저마다의 전략과 그 배경에 눈길이 쏠린다.

11일 코스피 상장사들 중 투자전업사와 펀드를 제외하고 지난달 말 시총 상위 100개 기업의 분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들의 올해 상반기 말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총 435조1415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3%(5조8904억원) 줄었다.

이는 기업이 품고 있는 자산 중에서도 가장 현금으로 유동화하기 쉽고, 그래서 가치가 변할 위험이 거의 없는 자산이다. 이름 그대로 현금을 비롯해 취득일로부터 만기가 3개월 이내인 금융상품에 들어 있는 자금 등이 포함된다. 당좌·보통예금처럼 언제든 입·출금이 가능한 통장에 넣어둔 돈이 대표적이다.

기업별 흐름은 공교롭게 딱 반반으로 나뉘었다. 조사 대상 상장사들 중 50곳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줄었고 나머지는 늘었다. 감소한 곳들의 총액은 207조9019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14.5%(35조2037억원) 축소됐고, 증가한 곳들의 합계는 227조2396억원으로 14.8%(29조3133억원) 확대됐다.

현금자산이 쪼그라든 쪽을 살펴보면, 대부분 굴지의 재벌 그룹 소속이자 핵심 제조사들이란 점이 눈에 띄었다. 실제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제일 많이 빠진 기업은 삼성전자로, 12.3%(6조5856억원) 줄어든 47조1200억원을 기록했다. 반도체 분야의 양대 산맥인 SK하이닉스의 해당 금액도 9조753억원으로 19.0%(2조1298억원) 감소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 형제 역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조 단위로 축소된 사례였다. 현대차는 17조5197억원으로, 기아는 11조3979억원으로 각각 7.9%(1조4952억원)와 15.2%(2조687억원)씩 줄었다.

SK그룹의 주요 계열사들도 마찬가지 추이를 보였다. 우선 지주사인 SK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21조4947억원으로 12.8%(3조1523억원) 감소했다. SK이노베이션이 11조6934억원으로 26.3%(4조1717억원) 줄어든 영향이 컸다. 이는 삼성전자 다음으로 큰 감소 폭이었다. 또 SK하이닉스 역시 9조753억원으로 19.0%(2조1298억원) 축소됐다.

반대로 현금자산 증가량 톱3는 전부 은행 중심의 금융사들이 차지하며 시선을 끌었다. 먼저 KB금융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29조8692억원으로 21.5%(5조2603억원) 늘며, 유일하게 5조원 이상 확대됐다. 이어 IBK기업은행이 19조9905억원으로, 우리금융지주가 30조85억원으로 각각 21.2%(3조4959억원)와 10.0%(2조7274억원)씩 늘며, 증가 폭이 큰 편이었다.

아울러 현금자산이 확대된 쪽에서는 HD현대그룹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지주사인 HD현대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7조6516억원으로 35.0%(1조9845억원) 증가했다. HD한국조선해양이 5조5138억원으로, HD현대중공업이 2조3550억원으로 각각 48.3%(1조7965억원)와 87.2%(1조971억원)씩 늘며 1조원을 웃도는 증가세를 보였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제조업의 경우 업황이 좋으면 이익 이상으로 설비와 시설 확충에 돈을 쓰면서 오히려 현금자산이 축소될 수 있다"며 "금융사는 동일 업권이라 하더라도 자산운용 성과 등에 따라 추이가 엇갈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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