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하나 덜렁 메고 내린 플랫폼. 기차는 제 갈 길로 무심하게 떠나간다. 낯선 사람들은 여전히 기차에 몸을 싣고 가야할 목적지를 향한다. 기차를 타고 있는 동안 내내 함께 했던 그 소리. 조금은 마음을 들뜨게 해주던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는 경계 없는 플랫폼을 가르고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
기차의 뒤꽁무니가 눈동자에서 자취를 감추고, 귓가에는 바람 소리만 남는다. 이제 기차 소리는 덜컹덜컹이 아니라 칙칙폭폭으로 마음속에 또 하나의 흔적을 남긴다. 363일을 타고 달려온 기차는 그렇게 떠나갔다. 낯선 간이역 대합실에서 기다리는 마음으로 365일 동안 타고 갈 새로운 기차를 기다린다.

내년이라는 기차를 기다리는 남은 이틀 동안 무엇을 해야 하나. 머리 속에서는 이런저런 상념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주섬주섬 배낭 안을 뒤적여 본다. 363일 동안 함께 했던 배낭.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해야 하는 배낭. 소중한 것들 보다 버려야할 것들로 가득하다.
어제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오늘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잘 생기고 젊은 혈기(?)가 넘치는 그는, 내려놓고 살고 싶었던 나이라는 짐을 두 어깨에 턱 하니 올려준다. 몸과 마음으로 전해지는 그 무게가 참으로 버겁다.
그 무거운 느낌을 떨쳐보기 위해서라도 무엇이든 하기로 작정한다. 방안을 서성이고,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본다. 여기저기 서랍을 열어 뒤적여 보기도 한다. 쌓여 있는 메일,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문자 메시지를 열어본다. 마시지 않는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있자니 해를 넘기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하나둘 씩 얼굴을 내민다.
■ 영화 ‘라디오 스타’ 보기
TV 얘기가 나오면 할말이 없다. TV는 거의 보지 않는 까닭이다. 대신 남들이 TV 보는 것만큼 라디오를 듣는다. 기회만 있으면 라디오 예찬론을 펴는 라디오 마니아로서 아직까지 영화 라디오 스타를 보지 않았다는 것은 미안한일이다.
마치 꼭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고 있지 못한 기분이다. 여기저기서 라디오 스타를 만나보라고 권한다. 권하지 않아도 보야 할 영화이고, 만나야할 라디오 스타다. 따뜻한 추억을 갖게 해 준 영월이 이야기 속의 배경인 것도 반드시 보아야할 이유가 된다. 시간이 된다면 러브레터를 한 번 더 보기로 한다.
■ 옆에 있는 그 또는 그녀와의 나눔 이벤트
애인이었던 여자가 아내가 되고 친구 같았던 남자가 남편이 되면 보이지 않던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몸과 마음에 한 겹 두 겹 세월의 흔적이 쌓여 가면, 남자와 여자는 사라지고 눈앞에 아내와 남편의 모습만 보이기 시작한다.
아내와 남편, 변할 수밖에 없다. 변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와 남자라는 속성은 세월이 가도 변하는 속도가 느리고 무디다. 당신의 곁에 있는 그 또는 그녀에게 여자로서, 남자로서 듣고 싶은 말 받고 싶은 작은 선물이라도 주고받을 수 있는 ‘(닭살) 나눔 이벤트’를 제안한다.
■ 공짜 문자 메시지 모두 써보기
네이트온에서 제공하는 공짜 문자 메시지 월 100개. 이것을 다 써 본적이 한번도 없다. 한달에 많아야 20-30건. 지난 해 연말에도 다 쓰지 못했었다. 공짜라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데 어디서든 공짜로 주는 문자 메시지가 있다면 이번에는 확실하게 남이 주는 공짜로 생색한번 제대로 내 보자.
네이트온은 새해 인사가 폭주하는 시간에는 문자메시지가 20건으로 제한한다고 한다. 아직 이틀 남았으니 그 안에 확실하게 써 버리는 부지런을 떨어야겠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데, 곰곰이 생각해서 정말 미운 놈이 생각나면 그 친구에게 덕담을 가득 담아서 10개쯤 몰아주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 옮기고, 정리하고, 지워보자
지난 한 해 열심히 살았다. 당신도 열심히 살았다. 우리 모두는 최선을 다했다. 비록 손에 쥔 것은 없지만, 많은 일을 했다. 지금 남은 것이 기대했던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무 것도 안하고 살지는 않았다. 다이어리, PDA, 노트북, PC를 열어보면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작년까지 없었던 것들로 가득하다. PC안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파일들. 책꽂이 책 상위에 가득한 문서들. 우리가 지난 일년간 달려온 기차를 타고 오면서 열심히 살았던 흔적들이다. 소중한 것들은 잘 보관하고, 버려야할 것 지워야할 파일들은 이제 정리해야 한다. PC와도 송년회할 시간이 필요하다.
■ 인터넷 속에 만든 집에도 대청소가 필요하다
눈살 찌푸리는 스팸이 일년 내내 유쾌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메일.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답장을 보내지 못한 것이 있다면 해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 메일로 인연의 끈이 닳았던 사람들 속에서 아직까지 주소록에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자리를 찾아 주어야 한다.
블로그도 청소가 필요하다. 새해에는 어떻게 모습을 바꿔줄까 계획을 세워보기도 하고, 펌질 때문에 막아놨던 마음에 들지 않는 도메인도 잠시 풀어주기로 한다. 한 해 동안 좋은 이야기, 즐거운 글들을 만나게 해줬던 블로거 친구들의 블로그를 방문해 덕담이라도 한 마디 남겨 보기로 한다.

아울러 한 해 동안 동료, 후배, 선배로서 함께 했던 아래의 블로거들에게 감사한다. 일년 내내 블로그를 만들라는 권유, 부탁, 협박에도 꿋꿋하게 버티며 블로그를 만들지 않은 사람들은 서운해도 할 수 없다. 그러기에, 블로그를 만들라고 간청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고민된다. 역시 한국인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블로그 이름을 적으려다 보니, 순서를 보고 상처받을 ‘그’가 있을 듯 하다. 그래서 가나다, 알파벳순으로 정렬하는 엄청난 수고를 하기로 한다. 내년에는 따뜻하고 좋은 소식을 전하는 블로거가 되기를 바라고, 모두가 건강하고 신나는 새해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 CHITSOL, IT 수다떨기, LSWCAP, POWERUSR, SuPer AdopTer, zoominsky, 뉴스팩토리, 디지털통, 링블로그-그만의 아이디어, 서명덕기자의 人터넷세상, 싼바의 디지털 열하일기, 아까짱 블로그, 우공이산, 이정환닷컴 |
! 올리자 마자 역시 순서에 이의를 제기하는 '그'가 있다. 그는 역순으로 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한다. 그 생각을 못했다. 혹시라도 그런 생각이 드는 사람이 또 있다면 거꾸로 순서를 헤아려주기 바란다. 다시 역순으로 정렬해서 링크 걸려면 '라디오 스타'를 볼 시간이 줄어들어서 곤란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