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식품이 최근 해외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자사주 전량을 처분했다. /사진 제공=삼양식품
 삼양식품이 최근 해외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자사주 전량을 처분했다. /사진 제공=삼양식품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3차 상법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발의된 가운데 삼양식품이 보유 자사주를 전량 매각하며 현금화에 성공했다. 취득한 지 4년도 채 지나지 않아 900억원이 넘는 차익을 거둔 회사는 조달한 자금을 중국 공장을 비롯한 주요 설비 확충에 투입할 방침이다.

2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양식품은 이달 20일 자사주 7만4887주(0.99%)를 1주당 132만6875원에 처분했다고 24일 공시했다. 처분가는 직전 거래일 종가에 3.5%의 할인율을 적용한 금액이다. 비리디안에셋매니지먼트, 점프트레이딩, 바이스에셋매니지먼트 등 해외 기관투자가 3곳을 대상으로 블록딜(시간외대량매매)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에 따라 삼양식품은 총 994억원을 손에 쥐게 됐다. 과거 액면병합과 구주권 부분교체 과정에서 발생한 단주 409주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2022년 약 68억원에 매입한 물량이라 930억원가량의 차익을 실현한 셈이다. 삼양식품은 주가가 고점에 형성된 이 시기를 유동성 확보의 기회로 적극 활용했다. 자사주 매입 당시만 해도 9만~10만원대이었던 주가가 현재 130만원대에 이른 만큼 14.6배에 달하는 시세차익이 가능했다.

이번 처분은 투자재원 확보의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 나온다. 회사는 ‘재무건전성 증대’를 자사주 매각 배경 중 하나로 꼽았지만, 당장 재무 부담이 큰 상황은 아니다. 내년 4월 만기 도래하는 500억원 규모의 공모 회사채가 있지만 보유 현금이 3129억원이라 상환에는 무리가 없다. 9월 말 기준 단기차입금 1221억원 역시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다.

그러나 투자 과제는 산적해 있다. 2023년에 수립한 향후 4년간의 설비투자 계획에 들어갈 1970억원 중 올해 9월까지 투입된 금액이 561억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와 별개로 중국 자싱 시 내에 2072억원을 들여 8개 생산라인을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고 있다. 기존 6개 라인 2014억원에서 증액한 것으로 중국 내수시장 대응 및 현지화 전략 강화를 위한 조치다. 당장 국내외 시설투자에만 3000억원 이상 소요될 것으로 파악된다. 

  /자료=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
  /자료=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

일각에서는 삼양식품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자사주 소각 의무화 시행을 앞두고 서둘러 매각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상법개정안이 이르면 연내 국회에서 처리될 예정인 만큼 소각 대상이 되기 전 현금화가 가능한 시점에 주식을 정리했다는 것이다. 삼양식품이 10년 넘게 공시에서 자사주 처분 가능성을 언급해왔지만 실제로 실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도 이러한 해석에 힘을 싣는다.

오기형 민주당 의원이 24일 대표발의한 상법개정안은 회사가 취득한 자사주를 1년 이내에 소각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기존 보유 자사주에도 동일한 의무가 적용되지만 6개월의 유예기간이 부여된다. 자사주를 가진 기업 입장에서는 회계상 자본금 축소 부담이 따르는 소각보다 직접적인 자본유입 효과를 낼 수 있는 처분을 고려할 유인이 커진 상황이다.

식품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기상 10배 넘는 시세차익이 가능하고 정부 차원의 자사주 소각 압박이 강해질 것이라는 점에서 처분을 통한 현금유입의 적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다만 공교롭게도 시점상 명분이 들어맞을 뿐 실제로는 투자재원 확보가 절실한 상황에서 나온 결정이라는 시각도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설비투자와 중국 증설 등에 대규모 자금이 소요되고 있기 때문에 이번 매각은 정책 변화보다 실질적인 자금 수요가 더 크게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사업 확대를 위한 설비투자액 확보와 재무구조 개선 등을 목적으로 자사주를 처분한 것”이라며 “조달한 자금은 생산능력 확충과 핵심 설비 개선, 차입금 상환 등에 순차적으로 투입해 회사의 중장기적 성장의 기반을 다지고 경쟁력을 높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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