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LG에너지솔루션 전시회 관계자들이 '인터배터리 2021'에서 파우치형 배터리인 롱셀(Long cell)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사진=LG에너지솔루션.)
▲ LG에너지솔루션 전시회 관계자들이 '인터배터리 2021'에서 파우치형 배터리인 롱셀(Long cell)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사진=LG에너지솔루션.)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 절차에 돌입했습니다. 지난 8일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을 위해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말 LG화학으로부터 떨어져 나왔을 당시부터 상장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자금조달을 위해 분사를 결정한 것이었으니까요.

막상 상장이 현실화하며 재차 큰 주목을 받고는 있는데요. 몸값이 무려 최대 100조원에 달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내 주식 시장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회사는 시가총액이 약 486조원 수준인 삼성전자구요. 그 다음이 바로 90조원 규모의 SK하이닉스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의 몸값이 전망처럼 100조원대에서 형성될 경우 곧장 국내 시총 2위 회사가 되는 셈입니다. 50조~70조원만 되더라도 10위 안에는 무조건 입성하는 수준입니다.

▲ 국내 시가총액 순위 네이버 검색 결과.
▲ 국내 시가총액 순위 네이버 검색 결과.

LG에너지솔루션 상장의 핵심은 바로 공모가입니다. 상장 흥행 여부에 따라 미래사업 투자를 위한 재원 규모가 결정되기 때문이죠. 상장이 대박을 친다면 LG에너지솔루션과 LG화학 두 회사 모두 넉넉한 투자금을 확보할 수 있지만, 반대로 흥행에 실패한다면 사업 추진에 부담이 생길 수도 있죠.

물론 상장을 추진하며 흥행을 원하지 않는 회사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좀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합니다. LG화학은 지난해 말 LG에너지솔루션을 물적분할 방식으로 분사시켰는데요. 배터리 사업 미래에 투자한 주주들은 이에 대해 크게 반발했습니다. 이미 언론에서 많이 보도된 것처럼 인적분할을 할 경우에는 기존 LG화학 주주들이 LG에너지솔루션 지분을 직접 취득하게 되지만, 물적분할의 경우 LG에너지솔루션이 LG화학에 종속되어 간접투자 형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당시 물적분할이 발표됐을 당시 LG화학 주가는 폭락했었죠. 분사 계획이 발표된 이후 하루 만에 주가가 6% 포인트 하락하는 등 시장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LG화학은 주주들을 달래기 위해 두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하나는 앞으로 3년간 주당 최소 1만원의 배당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었구요. 또 다른 하나는 LG에너지솔루션 상장 후에도 지분율 70~80%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두 가지 약속이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먼저 LG에너지솔루션의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SK이노베이션과의 배터리 분쟁에서 승리하며 유동성 활용에는 다소 여유가 생겼습니다. 2조원의 합의금 규모에는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못 받아낼 수도 있었던 돈 2조원이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 LG에너지솔루션 투자 계획.(출처=2021년 분기보고서.)
▲ LG에너지솔루션 투자 계획.(출처=2021년 분기보고서.)

LG에너지솔루션의 1분기 보고서를 보면 2025년까지 앞으로 4년 동안 계획된 투자만 6조5500억원입니다. 폴란드, 중국, 미국 등 세계 곳곳에 배터리 생산능력을 확대하기 위한 투자입니다. 여기에 지난 4월 미국에 5조원을 투자해 배터리 공장 2곳 이상을 짓겠다고까지 했으니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갈 예정이죠. 단순 합계만 11조5500억원입니다. 추가 투자가 이뤄진다면 금액은 더욱 늘어나겠죠.

LG에너지솔루션은 올 1분기 3400억원의 수익을 냈지만 아직 수익성이 확실히 안정화 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지난해 4분기만 하더라도 4400억원의 손실을 냈습니다. 이는 곧 완벽하게 독립할 만한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뜻과도 같은데요. 충분한 외부 투자금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 LG에너지솔루션 실적 내역.(출처=LG화학 IR자료.)
▲ LG에너지솔루션 실적 내역.(출처=LG화학 IR자료.)

LG에너지솔루션이 이번 상장을 통해 10조원의 자금을 조달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데요. 예정된 투자 규모를 보면 이 돈은 LG에너지솔루션에게 꼭 필요한 돈입니다 10조원 미만으로 돈이 걷힐 경우 자금 상황이 빡빡해질 수도 있습니다.

LG화학이 LG에너지솔루션 지분 구주매출을 하지 않고 80%의 지분을 유지한다고 가정해봅시다. LG에너지솔루션의 발행주식 수 총 2억주인데요. 5000만주의 신주를 발행할 경우 1주당 20만원은 받아야 10조원의 자금을 끌어 모을 수가 있습니다. 이 경우 시가총액은 50조원으로 계산됩니다.

LG화학이 LG에너지솔루션 보유 지분율을 70%까지 낮춘다고 가정하면 LG에너지솔루션은 자금조달에 좀 더 여유가 생기겠죠. 마찬가지로 LG화학이 구주를 그대로 보유한다면 8600만주의 신주를 발행할 수 있고, 이에 따라 공모가가 좀 낮더라도 10조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는 더 용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아주 단순한 계산일 뿐이고 실제로는 복잡한 계산이 적용되고 수요예측 등 다양한 변수들도 반영됩니다. 게다가 LG화학이 구주매출을 할 지 안 할지 여부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LG화학이라고 돈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LG화학이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을 물적분할하며 주주들에게 1주당 1만원 배당을 약속했죠. 우선주를 포함하면 LG화학이 연간 배당으로만 지출해야 하는 금액이 7500억원으로 추산됩니다. 이를 3년간 유지한다고 하니 총 2조2500억원 정도가 필요한 셈이죠.

또 최근에는 배터리 소재 사업에 투자해 밸류체인 강화에 나서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2021년 1분기 컨퍼런스 콜 질의응답에서 “소재 시장 규모가 매우 크고 성장 초기단계라 사업 진출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JV나 M&A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이후 중국의 동박기업인 ‘더푸’에 400억원 투자를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상장이 흥행한다면 LG화학도 LG에너지솔루션에 대한 높은 지분율을 유지하면서도 일부 지분 매각을 통해 현금을 챙길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분할 당시 LG에너지솔루션에게 현금을 왕창 몰아줬던 점을 감안하면 현금을 다시 챙겨야 할 이유도 있어 보이구요.

반대로 LG에너지솔루션이 예상보다 높은 평가를 받지 못 할 경우 일정 지분을 유지하기로 약속한 LG화학은 구주매출을 실시할 여유가 없어지겠죠.

이는 LG화학에 투자한 주주들에게는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 때 100만원을 넘어섰던 LG화학 주가는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다 최근 80만원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외국계 증권사가 LG에너지솔루션의 상장에 따른 지주사 할인을 적용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발단이 됐습니다.

쉽게 말하면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은 서로 다른 회사라는 점을 지적한 것인데요.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한 뒤에 이 같은 현상이 가속화돼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지분 관계와는 상관없이 시장에서 두 회사의 가치는 완전 별개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LG화학 투자자들은 LG에너지솔루션의 사업이 아니라 LG화학 사업에 더욱 주목할 수밖에 없겠죠.

LG화학이 배터리 소재 사업에 투자하며 밸류체인을 강화하겠다는 것도 이 간극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상장 후 두 회사의 주가가 어떻게 움직일지 지켜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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