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경량화가 핵심인 수소차.(사진=효성첨단소재.)
▲ 경량화가 핵심인 수소차.(사진=효성첨단소재.)

효성첨단소재의 부채비율이 얼마인지 아시나요. 올 1분기 무려 480%를 기록했습니다. 갑자기 재무상태가 나빠진 것은 아니고요. 애초 탄생 때부터 빚이 많았습니다. 2018년 효성그룹이 지주사로 전환과 함께 4개 사업회사를 인적분할할 때 많은 빚을 물려 받았죠. 오히려 지난해 말과 비교해서는 개선되었습니다.

이처럼 효성첨단소재의 재무구조가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시장에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보니 엄청난 리스크로 인식되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 효성첨단소재 주요 재무지표 추이.(출처=효성첨단소재 사업보고서.)
▲ 효성첨단소재 주요 재무지표 추이.(출처=효성첨단소재 사업보고서.)

그럼에도 500%에 가까운 부채비율은 쉽게 넘어갈 만한 지표는 아닌 것도 사실인데요. 해외 자회사들이 보유한 부채가 재무부담을 가중시키는 주요 요인입니다.

효성첨단소재의 사업보고서 및 분기보고서를 보면 총 6개의 주요 종속기업의 요약 재무제표가 공개돼 있습니다. 부채, 자본, 자산과 함께 매출, 당기손익 등 대략적인 회사 경영상태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올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이 6개 회사가 보유한 부채의 합계만 총 1조4000억원에 달합니다. 별도 기준 부채총계가 2조10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해외 자회사들의 부채가 회사 전체 부채 상당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효성첨단소재 주요 종속기업 요약 재무제표.(출처=효성첨단소재 사업보고서.)
▲ 효성첨단소재 주요 종속기업 요약 재무제표.(출처=효성첨단소재 사업보고서.)

6개 회사 중에서도 유독 재무상태가 좋지 않은 2개 회사가 눈에 띄는데요. 하나는 중국 칭다오 스틸코드 제조법인(Hyosung Steel Cord Qingdao)으로 완전 자본잠식에 빠진 상태입니다. 자본총계는 이미 마이너스(-) 110억원인 데 반해 부채는 1100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올 1분기 효성첨단소재가 호실적을 거둔 가운데서도 6억원의 순손실을 냈습니다.

스틸코드는 얇은 와이어 여러 개를 합쳐놓은 것으로 타이어가 충격을 잘 흡수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소재입니다. 효성이 시장 확장을 위해 지난 2003년 중국에 공장 설립을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중국 내 업체들의 저가 공세 및 공급과잉으로 실적이 좋지가 않습니다.

또 다른 회사는 바로 GST(Global Safety Textiles) 글로벌입니다. 효성이 2011년 인수한 회사로 에어백 원단 및 쿠션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독일에 본사를 두고 있고 미국, 루마니아, 멕시코, 홍콩, 남아공, 폴란드, 중국 등 세계 각지에 생산거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올 1분기 GST 글로벌의 자본총계는 140억원에 불과한 반면 부채는 무려 4200억원에 달합니다. 게다가 올 1분기 8억원의 손실을 내 지난해에 이어 적자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부채가 많다 보니 효성첨단소재가 이자로 내는 비용도 상당합니다. 금융이익에서 금융비용을 뺀 순금융비용은 2019년 600억원이나 발생했습니다. 이듬해인 2020년에는 470억원으로 규모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수준입니다.

이처럼 부채 규모가 워낙 커서 단기간 내 줄이는 것은 어려워 보이는데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채보다는 회사 실적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특히나 앞으로 탄소섬유 생산 등에 꾸준히 투자가 이뤄질 것을 감안하면 회사는 부채감소보다는 실적개선과 먹거리 개발에 더 주력하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위축되며 실적이 대폭 악화되며 우려가 많았습니다. 자동차 타이어 보강재가 주력 사업인데 세계적으로 차량 판매량이 줄어든 영향이었죠. 매출액은 2조4000억원으로 전년 3조1000억원 대비 7000억원이나 감소했고요. 영업이익은 340억원으로 전년 1600억원에서 절반 이하로 축소됐습니다. 순금융비용이 470억원이었으니 이자 낼 돈도 못 벌었던 셈입니다.

▲ 효성첨단소재 실적 추이.(출처=효성첨단소재 사업보고서.)
▲ 효성첨단소재 실적 추이.(출처=효성첨단소재 사업보고서.)

그런데 올 1분기 대폭 개선된 실적을 내놓으며 반전 분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1분기 만에 84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지난해 전체 실적을 상회했습니다. 지주사 분할 이후 최대 실적인데요. 경기가 회복하며 타이어 수요가 살아난 것이 주효했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투자를 벌이는 탄소섬유는 앞으로 양호한 실적이 예상되고 있죠. 탄소섬유는 철보다 4배 가볍고 10배 단단한 소재로 항공기 부품과 낚시대, 골프채 뿐 아니라 수소 저장탱크용으로도 각광받고 있습니다.

아라미드 사업의 전망 또한 좋습니다. 5G 시대가 열리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죠. 빠른 속도로 데이터를 전송하기 위해서는 광섬유를 활용해 케이블을 만들어야 하는데, 광섬유는 내구성이 좋지 않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광섬유 주변에서 이 단점을 보완해주는 소재가 바로 아라미드입니다.

증권업계에서는 이러한 호재들을 근거로 올해 효성첨단소재가 최대 실적을 낼 것으로 예상하기도 하는데요. 올해 영업이익이 무려 3400억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치를 내놓기도 합니다. 지난해 영업이익 340억원보다 10배나 많은 수준이죠.

효성첨단소재는 부채가 많더라도 미래를 위해 꾸준히 투자를 벌인다는 전략인데요. 과연 이 전략이 잘 통할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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