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쥬라기 공원'의 흥행 수입은 현대자동차 150만대 수출액과 맞먹는다." 

한 일간지 기사에 실린 이 표현은 10년도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수출 주력 품목이었던 자동차에 비해 당시까지만 해도 단순한 오락거리에 불과했던 영화 산업의 가능성을 절묘한 비유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적절한 비유는 언론 환경이 크게 변화한 현재까지도 좋은 기사쓰기의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그러나 좋은 표현을 찾기 위한 노력은 때로는 일부 자극적인 표현만을 쫓는 언론의 행태와 맞물려 '쓰레기 만두' 파동과 같은 큰 사회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는 근래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최근 거의 모든 언론이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는 '폭탄'이라는 단어 역시 자극적인 선택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폭탄’, 막연한 두려움을 확대재생산

본래 이 말은 일부 언론이 정부의 부동산 세율 조정에 따라 보유세와 거래세가 크게 올라갈 것이라는 우려를 기사화하면서 '세금폭탄'이라는 표현으로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것은 '폭탄'이란 단어에 숨어있는 '과장'이다. 이 말은 세금이 크게 올라 부담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을 확대재생산할 뿐 그 대상과 방법 등 일체의 논의를 의미없게 만들어 버린다. 세금 폭탄의 목표(?)가 상위 2%이든 상위 20%이든, 즉 내가 속하든 얼마나 속하든 상관없는 것이다.

이후 이 말은 '많다'라는 의미의 거의 모든 단어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유가 급등은 '유가폭탄'이 됐고 CD 금리 변동은 '이자폭탄'으로 둔갑했으며, EU가 MS에 부과한 벌금은 '벌금폭탄'이 됐다. 심지어 태풍과 장마전선에 따른 폭우 관련 뉴스들은 어김없이 '물폭탄'이란 제목으로 뽑혔다.

폭탄이 막연한 두려움에 기대 논리적인 판단을 흐리게 했다면, 요 근래 IT 업계에서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는 '2.0'이라는 단어는 차별화의 함정으로 읽을 수 있다. 최근 인터넷 관련 주요 기사들을 보면 웹2.0, 카페2.0, 검색2.0 등 새로운 서비스가 선보일 때마다 어김없이 '2.0'이 따라붙는다. 전문적인 기술 개념인 서비스지향아키텍처(SOA)에도 2.0을 붙인 신조어가 선을 보였다. 이쯤되면 2.0 신드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 신드롬의 핵심은 '새로움'으로 포장하는 이미지다. 기존의 서비스와 제품이 버전 1.0 버전이라면 이번 것은 '기존과 좀 다르다'는 항변이다.

2.0 신드롬, 논의는 없고 이미지만 있다

반면 2.0이란 단어가 IT 업계 전방위로 확산돼 마케팅 용어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에 비해 그 기술 자체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평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예를 들어 널리 알려진 대로 '웹 2.0'이란 기술서적 전문 출판사인 오라일리 미디어의 대표 팀 오라일리에 의해 처음으로 주창됐다. 여러 가지 정의가 난무하고 있지만 관계지향적인 특성, 인간중심의 참여와 공유 등이 핵심적인 가치로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키워드와 링크, 태그를 통해 사용자들이 스스로 정보와 네트워크를 창조하는 웹2.0의 개념은 사실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싸이월드와 네이버 지식인, 블로그 등 기존 국내 IT 환경은 이러한 개념을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활발하게 서비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IT 담론이 세계 IT 패러다임을 주도하지 못하기 때문에 용어를 선점하지 못했을 뿐이지 개념이나 실제 서비스 수준은 우리가 가장 앞서있다고 말한다.

2.0이란 단어에 '새로움', '차별화'를 강조하기 위한 마케팅 거품이 끼어든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드는 대목도 바로 여기다. 무차별적으로 2.0이 붙기 시작하면 마치 '폭탄'의 그것처럼 웹 '2.0'의 정확한 대상이나 개념은 의미가 없어진다. 사용자들에게 기존의 것과 다르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최우선이 되고, 기존의 SOA와 조금 다르다면(혹은 달라야 한다면) 그 순간 SOA 2.0이 되는 것이다.

언론과 업계에서 이러한 새로운 용어를 만드는 것은 이슈를 선점하고 새로운 시장을 여는 데 있다. 지난 한달 사이만 해도 어도비의 플렉스2와 플레시 플레이어 9, 썬의 쿨 쓰레드 시스템, 파란과 야후의 새로운 서비스 등이 웹 2.0을 표방하거나 이를 지원한다는 내용을 핵심 마케팅 포인트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은 각종 세미나와 컨퍼런스, 서적 시장으로 확대된다. 지난 해부터 웹 2.0을 내세운 세미나가 연이어 열리고 있고 지난 해 출간된 <웹 2.0 시대의 기회, 시맨틱 웹>은 현재까지도 주요 서점의 컴퓨터 부문 상위에 랭크돼 있다. 특히 RTE를 비롯해, 웹 2.0과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출판과 세미나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주요 여론조사기관과 출판 미디어 업체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은 신조어와 시장의 관계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극적인 신조어를 찾는 악순환

본질적으로 '폭탄'과 '2.0', '쓰레기'는 사용자들의 이성적인 판단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 낡은 개념과 서비스를 새로운 이름으로 포장해 재출시하거나, 경쟁사와 차별화되지 않는 개념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 발표해 온 IT 업계의 관행은 이처럼 자극적인 마케팅 용어들의 범람과 홍수 속에서 이뤄진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혼란은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맞춰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이 아직 미숙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난 10여년 사이 국내 IT 인프라는 놀라운 속도로 발전해 왔다. 특히 인적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기술이 발달하고 이러한 네트워크 내부에서 새로운 정보를 생산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블로그와 포털, 미니홈피를 통해 이슈가 전파되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채널이 다양해지는 반면 이런 채널을 이용해 어떻게 대중과 의사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언론과 업계의 고민이 미숙했던 것은 아닐까. 대중 눈높이에 맞는 참신한 비유를 찾는 대신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 올라갈 수 있는 자극적인 표현을 찾는데만 골몰했던 것은 아닐까.

언론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폭탄'이나 '쓰레기' 같은 비유를 통해 막연한 불안과 불신을 키우고 있고 2.0을 비롯한 신조어를 무분별하게 남발하면서 역설적으로 의미있는 패러다임에 대한 유통기한을 스스로 단축하고 있다. 끊임없이 원색적인 비유와 새로운 마케팅 신조어를 쏟아내지 않고서는 이슈와 시장을 선도할 수 없다는 언론과 업계의 조급함이 '폭탄'과 '2.0', '쓰레기' 등을 되풀이해 생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말초적인 창조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주요 포털 사이트의 뉴스 댓글에는 그 끝이 어떤 것인가를 엿볼 수 있는 단초가 숨어있다. 바로 '기자스럽다'라는 비아냥과 업계 뉴스에 대한 노골적인 불신이 그것이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